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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동물원] ‘의붓딸’ 건드린 수컷하마…패륜인가 본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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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내티 동물원 하마가족의 홈드라마 막장 드라마 될 판

”근친만 아니면 문제없어”…동물원, 논란 불식 안간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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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만드는 과정에서 종종 사전에 성격이 규정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속보>와 <정정보도>입니다. 형식을 파괴하고 긴급하게 타전해야 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을 내보낼 때 주로 속보라고 하는데요. 한자로는 <速報>, 영어로는 breaking news라고 하지요. 그런데 발음은 같고 한자는 다른 속보(續報)도 있습니다. 앞서 보도한 한 사안에 대한 후속 보도라는 뜻이죠. 반면, 모든 기자 입장에서는 쓰고 싶지 않을 기사가 정정보도입니다. 알고보니 사실관계가 달랐고, 기사 자체 내용이 잘못된게 있어 바로잡는 내용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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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붓부녀 지간인 터커(왼쪽)와 피오나가 입맞추는 동작을 취하며 다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둘은 최근 짝짓기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시내티 동물원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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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렇게 다소 장황하게 서두에 글을 쓰는 이유는 오늘 ‘수요동물원’이 속보(速報)이자 속보(續報)이면서 한편으로는 정정보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건강하게 태어난 아기 하마와 그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 특집으로 전해드렸던 하마 가족의 이야기는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2017년 1월 이 동물원에서 75년만에 새끼 하마 ‘피오나’가 태어났습니다. 6주나 일찍 태어나 생과 사의 문턱을 넘나들던 피오나는 사육사들의 정성어린 돌봄 끝에 무럭무럭 자라났고, 지역사회의 마스코트가 됐죠. 피오나가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변화도 있었어요. 병약해진 친아빠 헨리가 결국 안락사되고, 친엄마 비비의 허전한 옆구리를 채워줄 새로운 파트너인 수컷 하마 터커가 가족의 일원이 됐습니다. 피오나의 의붓아빠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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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만에 태어나 조산의 고통을 딛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다섯살 피오나. 최근 성성숙 나이에 이르면서 의붓아비 격인 터커와 짝을 짓는 장면이 확인됐다. /신시내티 동물원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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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불꽃금슬을 과시한 비비와 터커 사이에서 올해 8월 또 다른 수컷 새끼 하마 ‘프리츠’가 태어났습니다. 사별과 새로운 만남, 다섯살 터울의 이복남매… 홈 드라마로 쓰기 딱 좋은 소재들의 이야깃거리를 가진 하마가족은 동물원 최고의 VIP로 등극했습니다. 관객들이 몰려들었고, 동물원은 이들을 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비록 귀여운 막내 자리는 이복남동생에게 물려줬지만, 피오나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습니다. 피오나가 의젓하게 동생을 돌보는 장면, 엄마와 변함없이 물질을 하는 장면, 의붓아빠 터커와도 낯가림하지 않고 친숙하게 지내는 모습은 실시간으로 소셜미디어와 방송으로 타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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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내티 동물원의 터줏대감인 암컷 비비(가운데)가 자기 배로 낳은 씨다른 남매 피오나(왼쪽)와 프리츠(오른쪽)와 즐거운 수중시간을 보내고 있다. /신시내티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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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동물원이라는 인간들의 울타리 안에서 하루하루 안온한 생활을 하던 하마 가족의 일상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피오나와 터커가 그만 불꽃튀는 암수한쌍으로 눈이 맞아버렸거든요. 그래서 긴급한 ‘속보(速報)’이고, 하마 가족의 뒷얘기를 전하는 ‘속보(續報)’입니다. 정정보도인 까닭이 있습니다. 집채만한 터커가 꼬맹이 피오나와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지킬 건 지키는 하마’라고 썼습니다. 지나친 의인화에 집중한 나머지 본능에 의해 죽고 사는 짐승이라는 점을 간과했습니다. 터커와 피오나가 흘레붙는 장면의 목격담은 이달 중순 현지 방송뉴스들이 긴급 타전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암컷 하마가 새 파트너를 만났다”(WSAZ)

“새끼가 태어난 하마우리에 새로운 변화가 일었다”(WLWT5)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피오나와 터커가 짝짓기를 해왔다”(FOX19)

하마는 코끼리·코뿔소·물소 등과 함께 대표적인 사바나의 초식괴수로 꼽힙니다. 인간은 이 풀뜯는 괴수들의 신진대사, 그중에서도 짝짓기철의 불꽃 같은 사랑의 몸짓에 매혹돼왔습니다. 그런데 하마는 거의 예외였어요. 일생의 대부분을 물속에서 지내는 까닭입니다. 실제로 하마의 짝짓기는 특별한 환경이 아닐 경우 통상 물속에서 이뤄집니다. 쉽게 보기 어렵죠. 하지만, 물속에서 자맥질하는 장면까지도 투명유리로 볼 수 있게 한 동물원에서는 예외입니다. 야생에서 수컷들은 영역과 짝짓기 권리를 놓고 목숨을 건 혈투를 벌입니다.

동물원 울타리에 사는 하마들은 그렇게 목숨을 내놓지 않고도 마음껏 본능을 발산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들에게 인간과 격리된 사생활이 보장되긴 어렵습니다.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관객들이 뻔히 지켜보는 가운데 하마가 짝을 짓는 유튜브 장면 한 번 보실까요?

돌이켜보면 올 봄부터 피오나와 터커 사이에 묘한 기운이 감지됐던 것 같습니다. 당시 비비는 뱃속에서 프리츠를 키우고 있었고, 터커와 피오나는 우리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터커가 피오나와 가볍게 스킨십을 하면서 둘이 입을 맞추는 것 같은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동물원도 이 유튜브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터커가 피오나에게 뽀뽀해달라고 졸라댄다’는 자막을 붙였죠. 그 뽀뽀가 알고보니 그 뽀뽀였던 셈이죠.

비비가 터커와의 사이에서 낳은 프리츠의 양육에 신경쓰는 동안, 터커와 피오나의 암수지정은 더욱 그윽해진 듯해요. 그리고 결국 둘 사이의 은밀한 몸동작이 노출된 것이지요. 하지만, 단란하고 화목한 하마가족 홈드라마가 본능이 지배하고 욕망에 휘둘리는 막장 드라마로 변질되지 않을까 동물원 측에서도 조금은 노심초사했던 모양입니다. 그럴 만도 한게, 우선 피오나 입장에서는 “아빠가 오빠됐네” 시추에이션이 됐습니다. 자신을 낳아준 친모와 상대방을 공유하는 모양새가 됐고요. 씨는 다르지만 한 배에서 나온 동복남매인 피오나와 프리츠와의 관계도 애매하면서도 복잡해졌습니다. 마치 지금 기준으로는 엽기적으로도 보일 수 있는 근친혼을 반복해 유전병까지 양산했던 유럽의 합스부르크 왕가가 연상될 정도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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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다르지만 한 엄마 배에서 태어난 다섯살 터울의 남매 피오나(왼쪽)과 프리츠. 최근 피오나가 프리츠의 친아빠 터커와 눈이 맞는 상황이 펼쳐졌다. /신시내티 동물원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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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제로 의붓부녀였던 두 하마 사이에서 새 생명이 잉태된다한들 가계도는 복잡해질지언정 유전적 혼란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보입니다. 둘 사이가 혈연 관계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동물원 관계자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첫마디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아니다”예요. 그러면서 “피오나와 터커 사이에 어떤 혈연이 없다”는 걸 반복해서 강조했습니다. 건강하게 자라서 성적 호르몬이 발현되면, 암컷과 수컷이 서로에게 끌리는 건 당연하다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본능에 따라 움직인 하마들을 인간의 잣대로 재단해서 ‘패륜’ 운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동물은 본능으로 모성애 부성애를 발휘합니다. 또한 본능으로 적자생존을 위해 한배에서 난 동기들끼리 피터지는 생존혈투를 벌이죠. 또한 본능에 의해 새끼를 키우는 과정에서 후손을 제거하고, 그 과정에서 동족포식이란 수단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동물의 생존 서사에 지나친 의인화를 경계해야 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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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내티 동물원의 마스코트로 사랑받아온 피오나. 이제 아기 티를 벗고 부쩍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시내티 동물원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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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6주 조산아로 태어나 동물원 스태프들을 조마조마하게 했던 피오나는 이제 성숙한 한 마리의 암컷하마가 돼 대를 이를 준비를 완전히 마쳤습니다. 터커와의 금슬이 유지돼 새끼를 가질 수도 있게 된 거죠. 그러나 동물원은 우선 하마의 추가 번식이 이뤄지지 않도록 피오나에게 산아제한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습니다. 공간이 넉넉하게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로 새 동물이 생겨나 주거환경이 열악해지는 점을 우려한 조치였죠. 피오나의 동생으로 한창 귀여움을 받고 있는 막내 수컷 하마 프리츠도 몇 년이 지나면 당당한 수컷으로 자라날 겁니다. 건강한 신체 발육은 또한 얘기치 못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겁니다. 단란한 하마가족 소식을 널리 알리며 명성을 유지해온 신시내티 동물원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것 같습니다. 하마가족의 작별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이야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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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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