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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재생에너지 늘면 원전은 줄어야…윤 정부, 원전 늘리기는 시대착오”[논설위원의 단도직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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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

경향신문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가 지난 10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출범시키며 ‘원자력발전과 신재생에너지의 조화로운 활용’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는데,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가 늘며 원전의 출력감발 빈도가 증가해 정상적 원전 가동이 어려워지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강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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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광훈(52)은 1990년대 중반 전남 영광 원전(현 한빛 원전) 3·4호기 반대운동을 계기로 30년 가까이 원전을 반대해왔다. 안전성뿐 아니라 경제성의 관점에서도 원전을 비판한다. 2020년 영국 서식스대에서 ‘한국과 일본의 발전설비산업의 대조적 진화 과정’을 주제로 과학기술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각계 전문가와 시민사회, 산업계, 정치권 등이 소속과 당적, 분야, 이해관계를 초월해 2018년 결성한 에너지전환 분야 오픈 플랫폼인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을 맡고 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는 제로섬 관계
재생에너지 증가는 막을 수 없고
나머지 발전기는 작고 유연해져야

윤석열 정부는 최근 공개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을 통해 지난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약속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후퇴시켰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30.2%까지 올리겠다고 한 약속을 21.6%로 줄였다. 대신 원자력발전 비중을 23.9%에서 32.4%로 높이겠다고 했다. LNG를 포함한 화석연료 비중이 1.5% 늘어난 것도 문제이지만, 원전과 재생에너지 비율을 역전시킨 것이 더 심각하다.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를 늘리고 원전 비중을 줄여가고 있는데 한국은 거꾸로 가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지난 24일 인터뷰에서 국내 원전업계가 재생에너지와 원전 사이에 제로섬 관계가 있다는 점을 최근에야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재생에너지 죽이기에 나선 것으로 설명했다. 석 전문위원은 그러한 시도가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RE100으로 대표되는 세계 무역장벽의 등장, 분산형 재생에너지원 증가로 원전이 설 자리가 점점 더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원전은 오랫동안 지적돼온 위험성 문제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전력망 운용에도 이롭지 않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 석 전문위원은 철저히 시장경제 관점에서 윤석열 정부의 원전 늘리기 정책을 비판했다.

윤 대통령 원전 중심 세계관 빠져
우리만 다른 길로 가서는 안 돼

■ 대통령의 원전 중심 세계관

- 이태원 참사로 안전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됐는데, ‘원전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 사고는 버려야 한다’(윤 대통령 2022년 6월 원전 부품업체 방문 발언)는 지도자의 인식은 괜찮을까.

“원자력 안전규제를 법제화한 취지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 같다. 2011년 설치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준사법기관으로 있는데 대통령이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전규제기관으로서 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검찰에 수사나 기소를 하지 말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 왜 그런 발언이 나왔다고 보나.

“원전 중심 세계관을 갖고 대통령까지 당선되다 보니 나온 발언 같다. 주로 원자력계 인사들과 교류하며 원자력 위주의 세계관이 강하게 주입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정부에서 월성 1호기 수명연장 관련 검찰 수사를 계기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졌고, 선거에서도 도움이 되니까 거기서 동기부여를 너무 많이 받은 게 아닌가 싶다. 그러한 세계관은 도처에서 확인된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주요 경제정책이 원전 수출이었다. 외교정책도 일본의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허용을 통해 한·일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식이었다.”

- 원전은 무엇이 가장 위험한가.

“제일 위험한 것은 고준위 핵폐기물인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다. 사용후 핵연료는 원전 부지 내에 굉장히 밀집된 형태로 저장돼 있어 사고나 외부 공격에 취약하다. 밀집돼 있으면 핵연료에서 나오는 중성자가 옆에 있는 핵연료를 때리고 연쇄 핵반응을 일으켜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한반도처럼 전쟁이 종료되지 않은 지역에서 원전을 운용한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게 확인됐다.”

합참은 ‘탐지된 바 없다’고 했지만 북한이 전략순항미사일 2발을 지난 2일 울산 앞바다에 떨어뜨렸다고 발표했을 때 가장 긴장한 사람들은 반경 30㎞ 안에 가동 중 원전 12기와 건설 중 원전 2기가 있는 울산 주민들이었다.

-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용후 핵연료를 땅속 깊이 파묻는 영구처분장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스웨덴, 핀란드 말고는 어느 나라도 사용후 핵연료 영구처분장을 짓지 못했다. 인구밀도가 높은 한국의 여건을 감안하면 과연 금세기 안에 처분장을 확보해 운영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탈원전’으로 부를 수 있나.

“탈원전의 어원은 2011년 모든 원전을 10여년 내 폐쇄하기로 한 독일 메르켈 정부에서 비롯됐다. 문재인 정부에 그 용어를 쓴 것은 턱없는 과장이다. 문재인 정부가 한 일이라곤 박근혜 정부에서 내린 고리 1호기 폐쇄 결정을 이행하고 또 다른 노후 원전인 월성 1호기에 대한 법원의 수명연장 취소 판결을 그대로 수용한 것뿐이다. 신규 원전인 신고리 5·6호기도 스스로 가부를 판단한 게 아니라, 약식 공론조사에 맡겼고 결과적으로 건설을 허용했다.”

-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탈원전 탓에 한전 적자가 최대에 달했다’(2022년 4월13일)고 했는데.

“한전 상황을 보면 전기 원가를 kWh(킬로와트시)당 평균 180원으로 해야 적자를 면할 수 있다. 지금은 kWh당 120원이 안 된다. 전기요금을 50%는 인상해야 적자 해소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원전 1~2기 더 돌린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가령 신한울 1·2호기를 안전규제를 다 무시하고 빨리 건설했다고 치자. 1년에 원전 2기로 발전할 수 있는 양은 국내 전체 발전량의 3%에 불과하다. 당시 외쳤던 ‘탈원전 탓’과 지금 겪는 미증유의 에너지 위기는 괴리가 너무 크기 때문에 윤 대통령조차 더 이상 그런 정치적 공방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을 것이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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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비중 늘려서 탄소중립 전략
무역장벽과 기술적인 문제로 무모
대형원전들은 좌초자산 될 수도

■ 원전 늘려 탄소중립 이루겠다는 정부

- 정부는 재생에너지보다 원전 비중을 늘려 탄소중립 목표를 실현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런 전략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세계 무역장벽, 기술적 문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RE100이라는 글로벌 기업들의 세계 표준이 만들어지며 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무역장벽이 생겼다. 애플, BMW 등 글로벌 기업들이 100%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만 이용해 제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대만 TSMC처럼 삼성, SK도 국내에서 재생에너지를 100% 조달하거나 그게 안 되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해야 할 판이다. 무역장벽을 생각해서라도 에너지전환을 가속화해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더 늦추려 하니, 경제를 최우선시하는 대통령이 맞는지 의문이다.”

RE100 캠페인을 주도하는 영국의 비영리단체 클라이밋그룹은 한국 정부의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 공개 이튿날인 지난 25일 윤 대통령에게 한국의 목표 후퇴에 항의하는 서한을 보냈다. 마이크 피어스 RE100 대표는 “한국 정부가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 목표를 30%에서 21.6%로 감축한 것은 엄청난 후퇴”라며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긴급하고 단호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경제적 잠재력을 저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기술적 문제는 무엇인가.

“원전이나 재생에너지 모두 실시간 발전량을 조절하기 어려운 경직성 발전원이라는 점에서 비롯된 제로섬 관계 때문이다. 경직성 전원인 원전은 그동안 심야요금할인제 등 다양한 요금제를 도입하거나 양수, 수력, 가스 발전 등 실시간 발전량이 조절되는 유연성 발전원으로 보완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보완 자원은 제한돼 있어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경직성을 모두 감당할 수 없다. 재생에너지가 도입된 뒤로는 각국이 연료비가 가장 싼 재생에너지를 기저전력으로 놓은 뒤 원전, 가스발전 등의 순서로 전기 공급을 하는데, 뒤에 오는 발전기들은 실시간으로 유연하게 조절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원전은 속성상 그게 어렵다. 특히 원전은 대용량 발전기이기 때문에 불시정지를 하게 되면 전력계통이 크게 출렁이면서 정전이 올 수도 있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 재생에너지 비율이 늘어나는 것에 맞춰 기존 원전의 출력을 줄여서 운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도 이 점을 인식해 2020년 5월 어린이날 연휴 때 처음으로 1.4GW(기기와트)급 대형원전인 신고리 3·4호기의 출력을 20% 줄여서 운전한 바 있다.”

- 윤석열 정부 임기 내 가동하겠다고 한 신규 원전 4기(신한울 1·2호기, 신고리 5·6호기) 모두 1.4GW급 대형원전인데.

“윤석열 정부가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을 30%대에서 20%대로 낮춘다 해도 대형원전들은 좌초자산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연휴뿐만 아니라 주말마다 출력감발 운전을 해야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엄청난 비용 손실이 생긴다. 건설비가 많이 들어간 원전 1기를 가동하지 못하면 하루 10억~16억원 정도 손실이 난다. 그게 2기가 아니라 6기로 늘어난다고 생각해보라.”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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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때와는 상황이 너무 달라져
원전 수출 신화도 이젠 물 건너가

■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제로섬 관계

- 대형원전이 생기면 전력부족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는 통념에 배치되는 것 같다.

“기술적인 이해가 쉽지 않아 생기는 오해이다. 간단히 말해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는 것을 아무도 막을 수가 없고, 재생에너지가 늘어나게 되면 나머지 발전기들은 안정적 전력망 운용을 위해 작고 유연한 발전기들이 들어올 수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며 원전의 출력감발 빈도와 강도가 증가해 정상적인 원전 가동이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만 다르게 갈 수 있는 재주가 없다.”

석 전문위원은 ‘기술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에너지전환포럼 젊은 활동가들이 만든 ‘재생에너지 늘리면서 원전도 지으면 안 되나요’ 동영상(youtu.be/Iqo3xAZL0BU)을 강추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제로섬 관계를 쉽게 설명한 이 영상에 대해 그는 “앞으로 수십년간 상식이 될 내용으로 전 국민이 봐야 할 영상”이라고 말했다.

- 대형원전이 문제라면 작게 만들면 어떤가.

“원전은 작아질수록 경제성이 떨어진다. 안전비용은 대형이나 소형이나 큰 차이가 없다. 크거나 작거나 핵분열은 일어나고 사고 안전 대책은 그대로 유지된다. 따라서 안전비용은 그대로인데, 발전소 용량만 줄어드니 ㎾당 비용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원전을 대형화시킨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 원전 수출에 대한 열정은 정권이 변해도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윤석열 정부는 MB의 UAE 원전 수출 신화를 재현해보고 싶은 정치적 욕망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달라졌다. 그때는 원전 르네상스가 거론됐다. 유럽도, 중동도 원전을 많이 지을 것으로 기대됐고, 미국도 신규 원전을 추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가 나며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도산했다. 유럽도 신규 원전 공기가 10~15년으로 늘어나며 경제성을 맞추기 쉽지 않다. 안전기준과 노무규제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원전의 경제성은 국제노동기구(ILO)의 1919년 일 8시간, 주 48시간 노동시간 제한 협약 채택 등 노무규제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100년 늦게 주 52시간제를 도입한 한국은 그간 누렸던 가격 경쟁력을 잃었다. 이제 그런 시대는 갔다.”

2013년부터 건설된 전력설비 시장은 태양광과 풍력이 최대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해 건설된 세계 신규 발전소 용량 364GW 중 태양광, 풍력이 75%(272GW)이다. 수력, 지열, 바이오에너지까지 하면 86%가 재생에너지다. 나머지 중 대부분은 가스발전소이고 원전은 1%가 안 된다. 세계 시장이 완전히 변한 것이다.

-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어떻게 보나.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앞장서 일본에 항의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게 못하고 있다. 한국 스스로 월성 원전의 삼중수소 누출을 10년 넘게 방치해왔기 때문이다. 국내 원전의 삼중수소 누설을 방치한 채 외국의 오염수 방류 문제를 제대로 지적하기 어려워 보인다.”

- 원전에 대한 관성이 이렇게 큰 이유는.

“정치경제학적 메커니즘이다. 구산업과 신산업이 충돌하면 구산업이 훨씬 유리하다. 구산업은 국회, 정부, 출연기관, 대학, 언론까지 이미 구축한 로비 네트워크가 있다. 재생에너지 등 신산업은 그런 네트워크가 약하다. 그러다 보니 잠재력이나 시장의 추세와 상관없이 몰락하는 게 너무 자명함에도 구산업의 논리가 여전히 작동하게 된다.”

일본 이와나미문고에서 2017년 출간된 혼마 류의 책 <원전 프로파간다>는 지진이 잦은 일본에 그렇게 많은 원전이 건설될 수 있었던 배경에 ‘원자력 무라’(원전 마피아)의 광고대행사와 언론을 이용한 주도면밀한 프로파간다가 있었다는 점을 짚었다. 해당 광고대행사 관계자의 내부고발이어서 더 설득력을 얻었다. 한국이라고 많이 다를까.

경향신문

손제민 논설위원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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