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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차이나 톡] 中 14억 인구만큼 백지의 침묵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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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때로는 침묵보다 강력한 저항은 없다. 결사 항전을 외치며 돌을 던지고 온몸으로 맞서지 않더라도 대중의 의지가 담긴 적극적·의도적 침묵은 그 속에 더 많은 반대의 뜻을 담을 수 있다.

말을 해도 반영되지 않는 무력감, 리더의 의사소통 부재, 불복종으로 불이익이 예상되는 상황일 때 대규모 침묵은 다수의 의사를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다.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등 주요 도시에서 수많은 시민이 백지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하얀 종이에는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온라인에서 아무리 항의의 목소리를 내봐야 검열되고 삭제되는 현상이 벌어지자 등장한 시위방법이다. "중국 공산당 물러나라" "핵산(PCR)검사가 아니라 자유를 원한다"는 외침이나 방역요원과 물리적 마찰도 있지만 상당수 시민은 침묵으로 당국의 제로코로나 정책에 대항하고 있다.

저항의 들불은 지난달 13일 베이징의 한 고가도로에 내걸린 '핵산 말고 밥을 달라' '시진핑 파면' 등을 쓴 현수막이 사실상 불씨가 됐다. 곧바로 상하이에선 젊은 여성 두 명이 '원치 않는다(不要), 원한다(要)'는 글씨만 적힌 현수막으로 베이징 시위를 지지했다. 당사자들은 모두 체포됐으나 영웅으로 불렸다. 신장위구르 우루무치 화재참사와 카타르 월드컵 노마스크 관중 영상은 기름을 끼얹었다.

중국 정부는 놀란 모습이 역력하다. 베이징 등 지방정부는 임시봉쇄 24시간 원칙, 질서 있는 회복 등을 발표하며 '시민 달래기'를 시작했다. 관영매체들은 '정밀방역' 통제 완화를 강조하며 "서민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뒷수습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뿐이다. 시민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핵산검사 현장과 인터넷에선 오히려 단속과 통제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중국의 포털사이트 어디에도 시위와 관련한 영상이나 사진은 없다. 베이징 시위현장은 공안 차량의 경광등만 요란하게 번쩍인다.

한편에선 방역요원의 손에 들린 총기 모양의 물건이 포착됐다. 전투용 차량이 어디론가 이동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주거지 현관문 못질도 인터넷에 올라온다.

월드컵도 검열대상이다. 관영매체는 더 이상 '노마스크' 외국 관중의 모습을 내보내지 않는다. 상하이에선 시위에 쓰이는 A4용지 판매가 중지됐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들려온다.

침묵의 상징인 백지를 든 이유는 분명하다. 제로코로나 봉쇄에 대한 정부의 신뢰도, 방역도 무너지고 있으나 의견은 묵살되는 것에 대한 소리 없는 외침이다. 그런데도 오로지 '중국 특색'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일방적 '희생'만을 강요할 뿐이다.

중국 정부가 자랑하는 14억 거대 인구규모만큼 그들의 침묵은 무겁고 무섭다.

jjw@fnnews.com 정지우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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