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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기름대란 노리는 화물연대… 일부 주유소 “값 인상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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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서울 금천구 A주유소. 매일 기름값을 써 붙이는 안내판에 이날은 휘발유 가격 대신 ‘품절’ 표시가 붙어있었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기름을 제때 공급받지 못해 휘발유가 모두 바닥난 것이다. 품절 표시를 미처 보지 못하고 들어오는 차량은 직원들이 양해를 구하며 되돌려보내야 했다. 한 직원은 “어제 오후 3시부터 휘발유가 다 떨어졌다”고 말했다.

인근에 있는 B주유소 역시 재고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직원은 “탱크 용량이 4만리터(ℓ)인데, 지금 1만5000ℓ 정도 남았다”며 “평상시엔 2만ℓ 이상 재고를 확보해야 해 지금 수준이면 진작에 발주를 넣었어야 하는데, 파업으로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정도면 짧으면 이틀, 길어야 3일까지만 주유소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비즈

서울 금천구의 한 주유소에 '휘발유 품절' 안내문이 붙어있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기름을 제때 공급받지 못하면서 재고 부족에 시달리는 주유소들이 늘어나고 있다./정재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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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파업으로 재고 부족에 시달리는 주유소가 늘면서 ‘기름 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S-Oil)·현대오일뱅크 등 4대 정유사에서 기름을 실어나르는 유조차(탱크로리) 기사 중 80%가 화물연대 소속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 파업까지만 해도 가입률은 10%에 불과했는데, 화물연대의 파업 핵심 요구사항인 안전운임제 적용 품목 확대에 유조차도 포함되면서 가입률이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한국주유소협회는 지난 25일부터 전국 자영주유소를 대상으로 화물연대 파업에 따른 피해 신고를 진행한 결과, 현재까지 40건가량 접수됐다고 밝혔다. 피해 기준은 현재 보유 중인 재고량이 20% 미만으로 떨어진 경우나 주문한 물량의 배송지연이 발생한 경우 등이다. 협회 관계자는 “사전에 재고 확보를 요청해둔 덕분에 아직까진 피해 접수 건수가 많지 않지만, 파업이 길어질수록 기름을 제때 공급받지 못하는 주유소가 속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유소들은 조만간 재고가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서울 금천구 C주유소 관계자는 “휘발유, 경유 각각 3만ℓ 탱크 2개씩 총 4개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미 탱크 2개는 재고가 절반 이하”라며 “하루에 평균 4000~5000ℓ씩 나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주일 뒤엔 바닥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파업 직전에 탱크를 가득 채워놨지만, 파업 이후 한 번도 기름을 공급받지 못해 장기화될 경우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유사들도 물류망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전날 현대오일뱅크는 각 주유소에 “화물연대 총파업에 따라 다수의 수송 차량이 화물연대 가입 및 수송을 거부하는 중”이라며 “수송 여건에 따라 원활한 석유제품 수송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음을 양지해달라”고 공지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유조차들을 확보하려 하고 있지만 노조 조합원들의 눈치 때문에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파업으로 기름값도 오를 전망이다. 가격이 저렴한 주유소일수록 소비자가 몰려 재고 회전이 빠른데, 제때 기름을 공급받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재고 관리를 위해서라도 가격을 조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주유업계 관계자는 “최저가 정책을 유지하는 주유소의 경우 빠르면 2~3일마다 재고를 채워줘야 한다”며 “지금은 주문이 100% 소화가 안되는 상황이라 주변 주유소와 가격을 맞춰서 재고를 조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도 춘천의 D주유소 대표 역시 “정유사에서 경유는 일부 풀릴 수 있지만 휘발유는 배송이 꽉 막혔다는 안내를 받았다”며 “이럴 때 싸게 팔아서 탱크를 비우고 문을 닫는 바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일부 주유소들은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C주유소 관계자는 “기름이 아예 바닥나기 전에 가격을 올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10~20% 정도 인상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B주유소 관계자 역시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화물연대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기름값이 영향을 받을 여지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윤정 기자(fact@chosunbiz.com);정재훤 기자(hw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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