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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외국선 ‘수평 소통’ 타운홀미팅, 한국선 ‘윗분’들의 훈화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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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경영자 토론 뒤 경영 반영

미 구글·애플서 주요 소통 창구

국내 일부기업 ‘인사팀 각본대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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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임직원한테 확실한 투자를 해줘라!” “타운홀미팅에 상관없는 댓글은 자제해주세요. 분위기 흐리지 말고….”

지난 14일 엘지(LG)화학 최고경영자(CEO) 신학철 부회장 등 모든 임직원이 참여한 온라인 타운홀미팅. 실시간 채팅창에 직원 ㄱ씨가 젊은 층이 많이 쓰는 화법으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형”이라 부른 것이 화근이 됐다. 엉뚱하게도 ‘△△형’이 아닌 ㄴ전무가 채팅창에 “분위기 흐리지 말라”며 공개적으로 면박을 준 것이다. ㄴ전무는 ㄱ씨에게 따로 문자메시지까지 보냈다고 한다. “CFO에게 △△형 어쩌고저쩌고 등등이 의견 제시 및 토론을 위한 것이었는지 생각해보라. 회사에 불만이면 중이 절을 떠나든가. 불만만 늘어놓으면서 선량한 다수의 구성원들을 선동하지 말고.”

ㄱ씨는 이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봤고, 공개 사과와 회사 차원의 대응을 요구하는 움직임에 동료 직원 250여명이 동참했다고 한다. ㄱ씨는 28일 <한겨레>에 “임직원간 민주적인 소통을 기대하고 작성했는데, 제 글이 분위기를 흐린다며 이렇게 공격적인 반응이 나올지 몰랐다”고 말했다. 엘지화학 쪽은 “해당 임원이 직접 가서 사과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최근 2~3년새 수평적 조직 문화, 회사 비전 공유 등을 목표로 국내 기업이 도입한 타운홀미팅이 또 다른 ‘사장님 말씀’이나 시이오 홍보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타운홀미팅은 구글·애플 등 미국 실리콘밸리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시작된 조직 내 소통 창구이다. 직원과 최고경영자가 회사 중요 사안을 자유롭게 질문·토론하고 그 결과를 경영에 반영해 직원 만족도는 물론 회사 성과를 높이는 수단으로 쓰인다. 지난해 대기업 엠제트(MZ) 세대 직원들이 성과급 및 복지 수준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자 국내 기업들도 앞다퉈 타운홀미팅을 열기 시작했다.

수직적 조직에 수평적 도구를 끼워 넣으려는 국내 기업들의 시도는 성과 못지 않게 갈등과 냉소도 낳고 있다. 국내 5대 기업에 다니는 김아무개(30)씨는 몇달 전 온라인 타운홀미팅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최고 임원과 대담하는 현장 패널 모두 전·현직 인사팀 직원인데다, 사전에 준비된 질문에 임원이 답하기 위해 피피티(PPT) 발표 자료까지 만들어온 상황이었다. 김씨는 “간담회나 타운홀미팅은 임원들이 하고 싶은 말을 일방적으로 하는 자리가 됐다. 이미 인사팀에서 짠 각본대로 진행한다. 쌍방향 소통을 기대하고 참여했지만 오히려 더 거리감만 느꼈다”고 했다. 금융사 직원인 배아무개(30)씨도 “타운홀미팅에서 대표가 내년 목표를 말하며 토론을 표방했지만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같은 급이라 덤벼볼 수 있는 최고기술경영자(CTO)나 질문하는 정도였다”고 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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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급이 느끼는 타운홀미팅의 ‘온도’는 또 다르다. 국내 5대 기업의 한 임원은 “직원들이 회장을 직접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육성을 들을 기회가 많지 않다. 우리는 혁신적 소통방식을 위해 젊은 직원들의 질문을 막거나 통제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형 타운홀미팅이 자리잡으려면 임원과 직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리더십·조직문화 코칭 전문가인 백종화 그로플 대표는 “타운홀미팅은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 대화, 일방적 정보 전달이 아닌 설득과 합의의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시이오는 어떤 방향성을 갖고 의사결정을 내리게 됐는지 설명하고, 직원들은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반대 의견까지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과정에서 내용보다는 표현·태도 문제로 소통이 어긋나기도 한다. 김호 더에이치랩 대표는 “소통의 장에서 쌍방향이라는 것은 (임원과 직원) 양쪽이 다 책임을 갖고서 소통에 임하는 것이다. 건강하지 않은 제안이나 거친 표현을 쓰는 것은 도움이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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