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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데이터 허브로 떠오르는 룩셈부르크, 내년에 정식 주한 대사관 개설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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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장 조세프 마리 왕세자, 수교 60주년 맞아 방한

“룩셈부르크가 한국전쟁에 파병했던 병력은 85명으로, 당시 참전국 중 총인구 대비 파병 비율이 가장 높았습니다. 이후로도 양국은 전쟁 피해, 경제 발전에 따른 성장통을 겪으며 서로에게 든든한 우방국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제주도 1.5배 정도의 면적(2590㎢)에 인구는 65만명. 하지만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13만6000달러(약 1억8200만원·지난해 기준)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프랑스와 독일, 벨기에에 둘러싸인 유럽 중앙부에 위치한 강소국 룩셈부르크 이야기다. 이 나라를 이끄는 앙리 대공(大公) 아들이자, 차기 대공 계승 1순위 기욤 장 조세프 마리(41) 왕세자가 프란츠 파이요 경제부 장관 등 87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경제 사절단을 이끌고 방한했다. 그는 28일 본지 단독 인터뷰에서 “전쟁 폐허를 딛고 경제, 문화 강국으로 도약한 한국과 수교 60주년을 맞이해 기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기욤 장 조세프 마리(41) 룩셈부르크 왕세자가 28일 서울 종로구에서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있다./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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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3월 16일 수교한 양국의 역사는 한국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1~53년 85명 규모 룩셈부르크 육군 1개 소대가 두 차례에 걸쳐 한국을 찾았다. 유엔군 소속으로 전투병을 보낸 16국 중 총인구 대비 파병 비율이 가장 높았다. 당시 룩셈부르크 인구는 20만명에 불과했다. 기욤 왕세자는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룩셈부르크가 독일군에 함락된 것을 언급하며 “(한국전쟁에 투입된) 85명은 모두 자원자로, 이들은 ‘민주주의 국가가 전쟁에 무너지는 모습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헌신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생존한 참전 용사는 7명으로, 모두 90세 이상인 데다 절반 이상은 해외에 있어 한국을 찾기 어렵다”면서도 “모두 한국에 오길 바라고 있고, 발전한 한국 소식에 감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쟁 이후 철강 산업으로 경제 부흥 발판을 마련한 룩셈부르크는 1970년대 금융 산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유럽 강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특징을 강점으로 활용, 자본 이동 규제와 세금 환경을 글로벌 기준으로 세우면서 각국 자본이 오가는 ‘유럽의 금융 허브’로 발돋움했다. 기욤 왕세자는 “유럽 시장 접근성이 좋다는 지리적 특징 말고도 EU에서 다국적 인구가 가장 많다는 점, 500개 이상 스타트업 커뮤니티가 형성될 정도로 친기업 정책들을 갖췄다는 점 등 비즈니스 입지가 좋다”며 “떠오르는 ‘데이터 허브’로서 기업들에 수준 높은 사이버 보안을 제공하고, 미래를 위해 우주 산업과 순환경제에도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이런 특징을 고려해 적극 진출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기욤 왕세자는 2001년 3월 개항한 인천공항을 찾은 첫 해외 귀빈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스무 살이었던 그에게도 한국 방문은 왕세자 취임 이후 처음 맡았던 해외 임무였다고 한다. 기욤 왕세자는 “어린 나이에 긴장하고 어리둥절한 시간이었지만, 한국의 환대가 아직 기억난다”며 “그때의 감사함으로 한국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룩셈부르크의 대(對)한국 업무는 대사관이 아닌 주한 대표부가 맡고 있다. 기욤 왕세자는 “지금까지의 우방 역사를 기억하고, 앞으로 경제 협력국으로 관계를 더 증진하자는 차원에서 이르면 내년 주한 룩셈부르크 대사관을 개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교 60주년뿐 아닌 70, 80주년을 바라보고자 한다. 여러 위기가 있겠지만, 같은 민주주의 국가로서 한국과 함께 극복해나가고 싶다”고 전했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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