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독감 3배, RSV 2배, 코로나 재확산… 美 트리플데믹 ‘아우성’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정시행의 뉴욕 드라이브]

독감만 440만명… 2100명 사망

면역력 약한 노인·유아 큰 피해

백신 없는 RSV, 2세이하에 치명적

뉴욕에 사는 주부 폴리나(36)씨는 지난주 6세 딸 아이가 40도에 달하는 고열과 기침에 시달려 응급실에서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그는 27일(현지 시각) “증상만으론 열 감기인지, 코로나인지, 인플루엔자(독감)인지, 호흡기 세포 융합 바이러스(RSV)인지 몰라 모두 검사했는데 독감이었다”며 “딸을 학교에 며칠 못 보냈는데, 생후 100일 된 동생이 감염될까 봐 딸에게 집에서도 마스크를 씌워 격리시키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유엔 직원 리언(39)씨는 “코로나에 걸려 이틀 쉬고 출근하려 했더니 이번엔 아들이 RSV에 감염돼 일주일 넘게 연차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미국이 코로나 바이러스와 독감, RSV 등 세 가지 전염병이 동시에 유행하는 트리플데믹(tripledemic)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염력 높은 변이가 계속 창궐하는 가운데 그간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 두기로 주춤했던 다른 계절성 전염병들이 면역력이 약해진 틈을 파고들면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된 것이다.

미국에선 지난 26일 기준 코로나 신규 감염자와 사망자가 2주 전에 비해 각각 14%, 5% 증가했다. 오미크론 하위 변이는 500여 종에 달해 추적조차 어려워지고, 미 전역에서 여전히 하루 평균 300명씩 코로나로 숨지는 실정이다. 반면 정부가 올가을부터 배포 중인 오미크론 특화 백신의 접종률은 ‘백신 피로감’ 탓에 기존 백신의 15% 수준에 그치고 있다. 특히 코로나 방역 조치가 모두 해제된 상태에서 9월 대면 출근과 개학, 10월 핼러윈, 11월 추수감사절 등 대면 모임과 행사가 대대적으로 재개된 것도 코로나의 빠른 확산과 변이 발생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조선일보

지난 2021년 미국 버몬트에서 한 시민이 독감 예방주사를 맞는 모습. 미 보건당국은 올해에야 말로 반드시 독감 주사를 접종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환경은 다른 호흡기 전염병의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선 통상 겨울철 독감 첫 환자가 11월쯤 발생하는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10월 초부터 보고됐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미 독감 환자는 440만명으로 작년보다 3배 많았다. 3만8000명이 입원했고, 어린이 7명을 포함해 2100명이 사망했다. 연령별 독감 환자 입원율이 ‘65세 이상’에 이어 ‘5세 이하’에서 가장 높게 나타나, 면역력이 약한 노인과 유아가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독감보다 빨리 유행하기 시작한 RSV 상황도 심각하다. 매년 미국 노인 1만4000명, 유아 300명을 사망케 하는 RSV는 1956년 처음 발견됐지만 아직까지 백신도 개발되지 않은 ‘깜깜이 감염병’이다. RSV는 코로나 방역이 지속되던 2020~2021년 잠시 주춤했지만, 올 들어 환자가 2배 이상 폭증했다. 통상 성인들은 약한 감기처럼 지나가지만 2세 이하 영아가 걸리면 중증이나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역대급 트리플데믹에 보건 현장은 아비규환이다. 미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 소아 입원 병상의 76%가 포화 상태로 조사됐다. 소아 중환자실 병상 가동률은 80%를 넘어섰다. 코네티컷주에선 소아 병동 의료진이 부족해 주 방위군이 투입됐고, 뉴욕과 LA 전역에선 유치원과 초등학교 결석 인원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중부 켄터키주에선 이달 초 소아 병동 포화 상태를 우려, 모든 초등학교에 임시 휴교령을 내렸다. 미 소아병동연합회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긴급 사태 선포와 연방 정부의 지원을 요청했다.

미 노동부는 지난달 ‘아픈 자녀 돌봄’을 이유로 결근한 직장인이 총 10만명으로 사상 최고치였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학부모가 ‘코로나 확진이 아니니 등교시켜도 괜찮겠지’란 생각에 자녀를 학교에 보내면, 교사들이 고열이나 기침 증상을 보고 즉시 귀가시키고 있다”며 “’아이가 감기만 걸려도 생업을 포기하란 말이냐’며 항의하는 학부모가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

지난 10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 오미크론 변이에 특화된 개량 백신을 맞고 있다. 미국에선 백신 피로감으로 이번 개량 백신을 맞는 사람들이 첫 1-2차 코로나 백신 접종률에 비해 15% 정도로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 UPI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뉴저지주의 대형 약국 체인 CVS에서 근무하는 30대 약사 실린씨는 기자에게 “일반 감기약과 민간요법으로 버티던 독감 및 RSV 환자들이 응급실 실려가고 있다”며 “최근에는 아목시실린(항생제)이 하루 몇 백 통씩 팔려나간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 때도 없었던 일”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쏟아지는 비를 피하려면 일단 다시 마스크를 쓰는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지난여름만 해도 ‘코로나는 끝났다’며 마스크를 벗어던졌던 뉴욕에서도 실내에서 마스크를 다시 챙겨 쓰는 사람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