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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세상읽기] 은폐된 가난, 방치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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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촌에서 오래도록 방치되어 있던 가난한 이의 죽음이 또다시 발견되었다. 집에는 연체된 고지서와 빈 쌀 포대가 있었다고 한다. 수원 세 모녀의 죽음, 탈북여성의 고독사가 발생하고 그 기억이 채 사라지기 전에 비슷한 사건이 반복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죽음이 다뤄지는 방식이나 파장은 예전 같지 않다. 반복되다 보니 둔감해진 것일까?

경향신문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번 일을 바라보며 두 가지 질문을 하게 되었다. 첫째, 배제와 고립에 관한 질문이다. 무엇이 가난한 이들을 타인과의 관계 형성과 사회 참여로부터 물러나게 만드는가?

우리 사회의 미디어와 담론에서 가난은 추상화되고 존중 없이 대상화된다. 가난한 이의 삶은 구체적인 실체로 깊이 다루어지기보다는 모금 캠페인을 위해 가공된 사진으로 자선의 대상으로 동원된다. 21세기 자본주의에서 SNS 속 사람들은 화사하고 세련된 모습을 자랑한다. 디지털 기술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보여지는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등급 매기기의 기술, 각자가 삶을 포장하여 보여주는 기술도 함께 발전하는 듯하다. 눈떠서 잠들기까지의 모든 일상에서 계급을 섬세하게 ‘구별짓고’, 등급매기는 사회에서 박탈당한 사람들은 오히려 외로움을 선택하고 뒤로 물러서게 된다. 자본주의의 매끈하게 다듬어진 표면 아래에서, 결핍되고 불안정하며 고립된 삶의 거친 결들은 은폐된다.

배제된다는 것은 참여할 기회를 잃는 것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침묵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나이 들고 건강하지 못할 때, 가난할 때 사람들은 더 뒤로 물러선다. 목소리를 잃는다는 것은 자신의 고통을 공동체가 함께 해결할 것을 요청하는 힘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문제들은 해결되지 못한 채 뒷전으로 밀린다. 대표적인 것이 수원 세 모녀 사건에서 이들이 고립과 죽음을 선택한 이유였던 채권추심의 가혹함이다. 재개발 과정에서 끊임없이 주변으로 내몰린 원주민과 세입자의 주거권 문제 역시 여전하다.

두 번째 질문은 국가의 복지정책 대응에 관한 것이다. 가난한 이의 고립된 죽음을 막는 일, 이것은 과연 복지사각지대 발굴의 문제인가? 정부는 취약가구 정보수집 양을 늘리고 집적하여 위기신호를 효과적으로 포착하려는 접근을 하고 있다. 현장 복지공무원에게는 위기가구 발굴과 위기신호가구 확인을 강하게 요구한다. 그런데 위기가구로 확인 시 실제로 얼마나 지원을 받게 되는지 살펴보면 ‘발굴’이란 접근의 타당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2020년 발굴대상자는 약 134만명에 달했다. 그러나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경우는 약 2만9000명, 위기가구 지원대상자가 된 경우는 약 2만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약 50만명에게 민간서비스 연계가 이루어졌다. 2022년 상황도 다르지 않다. 더욱이 이번 신촌 사망자는 위기가구로 ‘발굴’되어 있었다.

정부 예산안에서 소득보장을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예산은 여전히 불충분하다. 빈곤층 대상의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오히려 대폭 감축되었다. 약자 복지를 내세운 정부치고는 기대에 못 미친다. 더욱이 공공부문 축소라는 방향 때문에 가난한 이를 만나 지원을 모색하는 현장 복지공무원 증원은 요원하다. 오히려 감축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리 사회에서 가난은 간혹 죽음으로써만 그 존재를 불쑥 드러내곤 한다. 모든 죽음은 평등할 것 같지만 목소리를 잃은 빈자들의 죽음, 가난한 죽음은 지금 이곳에서 죽음조차 평등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인류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에 대한 수많은 존중의 방식을 발전시켰다.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는 누구나 최대한 정성 어린 배웅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21세기 자본주의라는 전쟁터에서 가난한 이는 패잔병이 된 채 죽음에서조차 방치되고 있다. 이것은 문명이 아니다. 야만이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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