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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경제 강국 꿈꾸는 北…‘롤모델’로 삼은 베트남이 고속성장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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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베트남에 부는 韓 열풍(상)

동아일보

베트남 하노이시에 우뚝 솟아 있는 하노이 롯데센터. 하노이시에서 세 번째로 높은 건물이다. 두 번째로 높은 경남 하노이 랜드마크 타워 역시 한국 기업이 건설했다. 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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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27일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공식일정을 시작하기 전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베트남은 지구상에서 번영하는 흔하지 않은 나라로 북한이 비핵화하면 베트남처럼 될 것이며, 그것도 매우 빠르게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베트남 찬사는 시차를 두고 연이어 이어졌다.

“베트남이 짧은 기간에 이룬 것을 본다면 김정은 위원장도 아주 빠른 시간에 북한을 경제 강국으로 만들 수 있다.”

그 말을 접했을 때 기자는 머리를 갸우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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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


“개혁개방한지 30년 넘었는데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에서 130위권인 2000달러 남짓에 불과한 베트남이 북한의 롤모델이라고?”

하지만 이달 초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KPF 디플로마 베트남 전문가’ 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하노이와 호치민을 방문한 뒤 기자의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사회주의 베트남이 긴 잠에서 깨어나고 있구나. 그것도 다름 아닌 수십 년 전 총부리를 맞대고 싸웠던 대한민국이 베트남 번영의 가장 중요한 동반자가 되고 있구나.”

이제 김정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대한민국이 1억 인구의 베트남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잘 지켜보길 바란다.”

베트남은 1986년 ‘도이머이 정책’을 발표했지만 오랜 기간 발전이 정체돼 있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도이머이 정책 이듬해인 1987년 베트남 국민소득은 367억 달러였는데, 15년 뒤인 2002년 국민소득은 그보다도 더 떨어진 350억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근 10여년 동안 베트남의 국민소득은 3배 이상 급성장했다. 2009년 1060억 달러를 기록하더니 지난해 3626억 달러에 이르렀다.

1인당 국내총생산도 더불어 비약적으로 도약했다. 2010년 1690달러였지만 2021년 3716달러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러한 성장은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베트남 통계청에 따르면 1988년부터 2021년 말까지 외국 기업의 누적투자액을 집계한 결과 한국(747억 달러)이 일본(644억 달러)과 싱가포르(643.6억 달러)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집계에 잡히지 않는 투자까지 포함하면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투자 금액은 90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현재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9000여개에 이른다. 베트남 호치민 공항에서 나오면 길 건너 건물에서 한국 효성과 LG 광고판이 크게 보인다. 시내로 차를 타고 달리면 곳곳에 한국 기업 광고들이 붙어있다. 베트남에서 한국 기업이 차지하는 위상을 엿볼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 전쟁이 확대되면서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2022년은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 30주년을 맞은 해이다. 지난달 중순 박진 외교부 장관은 베트남을 방문해 양국간 기존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합의했다.

베트남이 최고 수준의 대외 협력 관계인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는 중국, 러시아, 인도 등 3개국 뿐이다. 그만큼 한국은 베트남에 중요한 경제협력 대상이 됐다.

양국이 경제와 문화 등에서 끈끈한 국가로 연결되는 것은 수치로도 확인이 된다. 베트남 관세청에 따르면 2021년 베트남 수입액에서 한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두 번째로 많다. 베트남은 한국에서 중국(1099억 달러) 다음으로 많은 562억 달러어치를 수입했는데 이는 3위인 일본(226억 달러)에 비해서도 두 배 이상 많은 액수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베트남은 세계에서 3번째의 수출시장이다. 2021년 베트남 수출액은 567억 달러로 중국(1369억 달러)과 미국(959억 달러)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베트남이 한국에 있어 일본(301억 달러)보다 더 중요한 교역국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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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한국 의류봉제업체에서 현지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양국간의 무역 규모는 최근 10년 동안 4배 이상 급성장했다. 베트남과의 교역은 한국에 엄청난 무역흑자를 가져다주고 있다. 1965년부터 2021년까지 한국은 일본과의 무역에서 누적 무역적자 6939억 달러를 기록했지만, 베트남과는 1992년부터 2021년까지 3102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베트남에 투자하는 한국 기업 중 선두주자는 단연 삼성그룹이다. 2008년부터 올해 말까지 삼성그룹의 베트남 누적 투자액은 215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올해 말까지 삼성의 1, 2차 베트남 협력업체 수는 250개에 이르고 이중 1차 협력업체만 52개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도 삼성전자는 50개 베트남기업의 생산역량 향상을 위해 스마트공장 전환 및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LG그룹도 베트남에 5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은 올해 9월 베트남을 방문해 2030년까지 호치민시에 대형 복합 단지를 조성하고 일자리 500만 개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만약 현실화되면 재계 순위 5위의 한국 기업이 인구 1억 명의 베트남 경제를 쥐락펴락하게 된다.

이렇게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 고속성장의 기관차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서 북한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같은 사회주의 체제를 표방하고 있고, 과거 적으로 싸운 베트남은 한국의 경제적 투자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데 북한은 거꾸로 한국을 핵과 미사일로 위협하면서 점점 경제가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고 있다.

인구 2000만 명에 불과하고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 안팎인 북한은 한국이 마음만 먹으면 10년 안에 국민소득을 몇 배로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북한은 말도 같고, 교육 수준도 높으며, 지리적으로도 붙어있다.

그러나 북한과 베트남의 근본적인 차이는 핵무기 보유 여부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이에 따른 유엔의 대북제재로 현재는 어떤 기업도 북한에 진출할 수가 없다. 또 한국 기업의 진출로 북한이 부유하게 되면 김정은은 체제 유지를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권력 세습과 핵무기가 북한을 어떻게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지를 베트남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노이·호치민=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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