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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문재인·김정은의 외침 “이제 전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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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의 1991~2021] _42

김정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가볍게 넘었다. “저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문재인 대통령의 물음에, 김 위원장이 기다렸다는 듯 “그럼, 지금 넘어가볼까요”라고 화답했다. 남북 정상은 서로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을 가볍게 넘나들었다. 1948년 남과 북에 두 ‘분단정부’가 세워진 이래 70년간 단 한번도 없던 동반 월경·왕복이다.



한겨레

2018년 4월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도중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보다리에 마련된 고동색 나무의자에 앉아 30분 남짓 ‘공개 밀담’을 나눴다. 그 나무의자 바로 뒤로 1953년 7월27일 정전 이후 온갖 풍상을 견디느라 녹이 슨 101번째 군사분계선 표지물이 무심히 서 있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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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이른 봄, 3차 남북 정상회담과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서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쟁 위기의 벼랑 끝에서 얻어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다. 11년 만의 남북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치르려면 “잃어버린 11년”간 켜켜이 쌓인 남북 사이 오해와 적대감을 눅여야 했다. 첫 북미 정상회담을 현실화하는 디딤돌도 놓아야 했다. 한국전쟁 정전 이래 가장 난해한, 그러나 희망에 찬 묘수풀이가 절실했다.

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한테서 “5월 말 이전에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자, 김 위원장이 가속 페달을 밟았다. 남북·북미 정상회담 합의 뒤 김 위원장의 첫 전략적 선택은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회담(2018년 3월25~28일 베이징)이었다. 2012년 김 위원장 집권 이후 첫 나라 밖 나들이다. 탈냉전기 고립무원 처지에 빠진 북한의 유일무이한 후견국 노릇을 해온 중국과 관계를 재확인하는 뒷배 다지기다. 2000년 사상 첫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추진에 앞서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처음으로 베이징으로 찾아가 북중 정상회담(2000년 5월3~7일)을 한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행보를 닮았다.

김정은-시진핑 회담이 중요하지만 새롭지 않다면, 2018년 4월2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 7기 3차 전원회의는 세계를 놀라게 할 만큼 파격적이었다. 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당의 (경제·핵) 병진노선이 위대한 승리로 결속”됐다며 “사회주의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것이 당의 (새로운) 전략적 노선”이라고 선언했다. 김 위원장은 진지함을 강조하려는 듯 “4월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 중지”와 “북부핵시험장 폐기”를 약속했다. 조건이 달리지 않은 선제 신뢰구축 조처다. ‘트럼프의 약속’을 현실로 바꿔 북미 관계 정상화를 이루려는 김 위원장의 간절함이 밴 승부수였다. 나라 안팎의 많은 이가 이 회의를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을 공식화해 현대 중국의 분수령을 이룬 중국공산당 ‘11기3중전회’(1978년 11월18~22일)에 비유했다.

김 위원장이 ‘핵’에서 ‘경제’로 국가발전전략 중심축을 바꾸겠다고 공개 선언한 2018년 4월20일,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과 국무위원장실 사이에 설치된 남북 정상 핫라인(직통전화) 첫 연결 통화가 이뤄졌다.

2018년 4월27일 오전 9시30분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폭 50㎝, 높이 5㎝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섰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반갑게 악수했다. 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가볍게 넘었다. “저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문 대통령의 물음에, 김 위원장이 기다렸다는 듯 “그럼, 지금 넘어가볼까요”라고 화답했다. 남북 정상은 서로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을 가볍게 넘나들었다. 1948년 남과 북에 두 ‘분단정부’가 세워진 이래 70년간 단 한번도 없던 동반 월경·왕복이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오전 10시15분부터 판문점 남쪽 구역 ‘평화의집’에서 회담했다. 회담에 앞서 김 위원장은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건네준 펜으로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력사의 출발점에서. 김정은 2018.4.27”이라고 방명록에 적었다. “평화의 시대”라는 구절에 정상회담에 임하는 김 위원장의 바람과 전략이 담겨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김 위원장은 “너무나 쉽게 넘어온 역사적인 이 자리까지 11년이 넘었는데, 잃어버린 11년이 아깝지 않게”라고 다짐하듯 말했다.

김 위원장은 오전 회담을 마치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쪽으로 돌아갔다. 두 정상은 따로 점심을 먹고 오후 4시27분 기념식수를 하려고 남쪽 군사분계선 근처 ‘소떼길’에서 다시 만났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8년 6월16일 500마리 ‘통일소’와 함께 방북할 때 지난 길이라 소떼길이다. 문 대통령은 백두산 흙을, 김 위원장은 한라산 흙을 삽에 퍼서 미리 심어놓은 1953년생 반송에 세차례 뿌렸다. 문 대통령은 대동강 물을, 김 위원장은 한강 물을 나무에 뿌렸다. 합토합수(合土合水)로 남과 북의 평화·공동번영의 바람을 담았다. ‘대결과 긴장’의 땅 군사분계선에 ‘평화와 번영’의 염원을 담은 소나무를 함께 심어, 군사분계선이 갈라놓은 백두대간의 식생을 복원하는 등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다시 잇”는 새 시작을 알리고자 마련한 행사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 새긴 반송 표지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기념식수 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공개 밀담’을 나눴다. 두 정상은 판문점 자유의집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 오후 4시39분 연한 청색을 입힌 ‘도보다리’에 다다랐고, 오후 4시42분 문 대통령의 권유로 고동색 나무의자에 앉아 30분 남짓 회담했다. 그 나무의자 바로 뒤로 1953년 7월27일 정전 이후 온갖 풍상을 견디느라 녹이 슨 101번째 군사분계선 표지물이 무심히 서 있었다. 문 대통령이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뭔가를 설명했고, 김 위원장이 이따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정상은 자주 함께 웃었다. 이 모든 모습이 텔레비전 생중계로 한국은 물론 세계에 송신됐다. 두 정상의 말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데 새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혹시 모를 관련국의 도청을 차단하려는 ‘계산된 잡음’이다. 그날 이후 고유명사로 굳은 “도보다리 산책” “도보다리 회담”이다. 도보다리는 정전협정 직후 중립국감독위원회가 습지 위에 만들었고, 유엔사는 ‘풋 브리지’(Foot Bridge)라 불렀다.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이후 도보다리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관광객이 가장 좋아하는 기념촬영 장소로 자리잡았다.

두 정상은 도보다리 공개 밀담 뒤 20분 남짓 오후 회담을 하고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서명했다. 6·15와 10·4에 이은 세번째 남북 정상 선언이다. 그러곤 평화의집 광장에서 “한반도에 더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한다는 가슴 벅찬 선언과 함께 ‘평화→번영→통일’의 경로를 분명히 한 ‘4·27 판문점선언’을 공동 발표했다. 1·2차 정상회담 땐 없던 진화한 발표 형식이다. 두 정상은 ‘4·27 판문점선언’ 1조에서 “남북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경의·동해선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 등)을 이룩하겠다고 약속했다. 2조에서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적대행위 전면 중지, 비무장지대 평화지대화,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 평화수역화 등)을 다짐했다. 3조에선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적극 협력”(단계적 군축 실현, 종전선언과 3~4자 (정상)회담 추진, 완전한 비핵화와 핵 없는 한반도 실현 등)을 약속했다.

공동 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이제 우리는 결코 뒤돌아 가지 않을 것”이라고 결연하게 외쳤고, 김 위원장은 “이 합의가 역대 합의서처럼 시작만 뗀 불미스러운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 두 사람이 무릎을 마주하고 긴밀히 협력해 반드시 좋은 결실이 맺어지도록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확언했다.

해 질 무렵 김 위원장의 동반자인 리설주 여사가 평화의집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후 6시30분부터 3시간 동안 4·27 판문점 회담의 성과를 자축하는 공연과 만찬이 이어졌다. 문 대통령의 권유로 평양냉면을 준비해온 김 위원장은 “대통령께서 멀리 온, 아…멀다고 하면 안되갔구나. 맛있게 드시면 좋겠다”고 해 만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날 이후 평양냉면과 “아…멀다고 하면 안되갔구나”는 남쪽 젊은이들 사이에 ‘힙함’을 상징하는 징표로 한동안 인기를 끌었다.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 몇몇은 눈물을 훔쳤고, 어떤 이들은 남북을 오간 평양소주잔을 거푸 들이붓고 대취했다. 밤 9시28분 김정숙 여사와 리설주 여사가 작별 포옹을 마치자 김 위원장을 태운 차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쪽으로 돌아갔다. 지금은 쓰린 마음으로 되돌아볼 수밖에 없는 2018년 4월27일 12시간에 걸친 평화 드라마, “하나의 봄”(환송 공연 이름)이 그렇게 저물었다.

한겨레

이제훈 |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1993년 한겨레에 들어와 1998년부터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사업의 시작과 중단, 다섯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여섯차례의 북한 핵실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3세 승계’, 두차례 북·미 정상회담, 사상 첫 남·북·미 정상회동 등을 현장에서 취재·보도해왔다. 반전·반핵·평화의 한반도와 남북 8천만 시민·인민의 평화로운 일상을 꿈꾼다.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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