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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값 1억 내려도 미분양 쌓여…5조 PF보증 앞당겨 건설사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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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전국에 미분양 아파트가 급증하면서 건설사들의 자금 경색이 우려되자 정부는 내년 1월부터 5조원 규모의 미분양 주택 PF 보증 상품을 도입하기로 했다. 사진은 최근 미분양 아파트가 증가하고 있는 대구시 전경. 【연합뉴스】


미분양 아파트 물량 증가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뇌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지방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할인 판매'에 나선 분양단지가 등장하자 건설 업계 자금 경색을 막아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방지한다는 게 정부의 구상으로 풀이된다.

28일 찾은 서울의 한 미분양 아파트 주택전시관에는 1~2명의 방문객만 이곳을 찾았을 뿐 대체로 한산한 모습이었다. 상담을 받은 방문객은 사업장이 제공하는 각종 혜택에 관심을 보이기는 했지만 내 집 마련을 위한 결정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였다.

이 단지의 경우 중도금 무이자, 이자 후불제, 발코니 확장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이곳을 찾은 방문객 김 모씨는 "각종 혜택을 따지면 현재 분양가보다 1억원가량 저렴한 조건이지만 금리 인상,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한 집값 하락 등을 감안하면 나중에 집을 사는 게 더 나아 보인다"고 말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1순위에서 '완판'돼도 결국 미분양이 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건설사 입장에서는 미분양 물량을 떠안아 발생하는 금융비용을 감당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미분양 물량을 파는 게 낫다"고 밝혔다.

매일경제

미분양 물량 증가로 인한 건설사들 부담이 커지면서 정부도 부동산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연내에 부동산 규제 추가 완화 방침을 밝혔다.

우선 정부는 부동산 PF 보증을 당초 내년 2월에서 같은 해 1월로 한 달 앞당겨 시행하기로 했다. 정부는 5조원 규모 미분양 PF 보증 상품을 신설해 준공 전 미분양 사업장도 PF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인허가 후 분양을 준비 중인 부동산 PF 사업 보증 규모를 5조원 확대하고, 보증이 제공되는 대출 금리 한도를 폐지하는 등 보증 대상 요건도 완화하기로 했다. 추 부총리는 "정상 PF나 부동산 사업장에 대해서는 원활한 자금 공급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또 정부는 등록임대사업자 제도 개편을 통해 임대 공급을 안정시킨다는 방침을 밝혔다.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구조안전성 비중을 낮추는 방향으로 개편해 정비사업을 통한 주택 공급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정부의 '속도전'은 미분양 물량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국토교통부 '9월 주택통계 발표'에 따르면 전국 미분양 주택은 4만1604채로 전월 3만2722채 대비 27.1% 증가했다. 지난해 말 1만7710채와 비교하면 두 배 넘게 미분양 물량이 증가했다.

서울 역시 지난 9월 미분양 주택이 709가구로 지난 7월 592가구 이후 2개월 연속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 미분양 주택은 지난 6월 719가구에서 7월 592가구로 감소 추세를 보이는 듯했지만 금리 인상, 부동산 시장 침체 등으로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면서 미분양 주택이 다시 증가 추세로 돌아섰다. 여기에 대구 미분양 주택이 1만채(1만539채)를 넘는 등 지방 역시 미분양 물량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무주택 수요자든 기업이든 가장 중요한 건 시장의 불확실성이 제거돼야 하는 것"이라며 "금리 인상 상한선이 어느 정도인지를 예상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만큼 개인이나 기업 모두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지방에서는 '계약조건 안심보장제'를 꺼내든 단지도 등장했다.

이날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경남 거제시 아주동에 공급되는 '거제 한신더휴'(547가구), 경북 구미시의 '구미 해모로 리버시티'(756가구) 등은 안심보장제를 통해 수요자 모시기에 나섰다. 계약조건 안심보장제는 분양 과정에서 할인 분양 등 계약 조건 변경이 발생하면 기존 계약자에게도 가격 할인을 소급적용하는 방식이다.

미분양 물량이 늘어나는 수도권에서는 할인 분양에 나선 단지가 나오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에 들어서는 주거형 오피스텔 '운정 푸르지오 파크라인'은 현재 최초 분양가 대비 2억원가량 낮은 가격에 공급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에서는 칸타빌 수유팰리스(강북구), 천왕역 모아엘가 트레뷰(구로구) 등 소규모 단지들이 할인 분양을 통해 수요자 찾기를 진행하고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서울 5곳 정도에서도 할인 분양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 침체와 금리 부담 탓에 서울에서는 당첨자들이 분양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낸 단지도 나왔다. 도시형생활주택인 '신길 AK 푸르지오' 수분양자들은 최근 시행사·시공사에 분양계약 해지를 요구했다. 이들은 기존 계약자 분양가 인하, 중도금대출 무이자 또는 대출 이자 지원, 계약률 공개 등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계약 해지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분양 시장 침체 해소를 위해서는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이사는 "청약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분양가가 저렴한 주택을 대거 공급해야 하는데 서울은 택지 문제로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결국 대출 관련 규제를 풀 수밖에 없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완화나 중도금대출 범위 확대 등의 방안이 있지만 수요자들은 높은 금리 부담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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