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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베이징 백지시위에…中, 하다하다 월드컵 중계 '관중석'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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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7일 베이징 대사관 단지 인근 량마허 강변에서 시민들이 백지를 들고 11·24 우루무치 화재 참사에서 숨진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이날 시위는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베이징 가두에서 벌어진 첫번째 대규모 시위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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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베이징 대사관 단지 인근 량마허 강변에서 11·24 우루무치 화재 참사에서 숨진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위 도중 한 남성이 확성기를 들고 연설하고 있다. 이날 시위는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베이징 가두에서 벌어진 첫번째 대규모 시위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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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베이징 대사관 단지 인근 량마허 강변에 공안차량이 도열해 있다. 전날 이곳에서 열린 11·24 우루무치 화재 참사 추모집회를 수습하고 있다. 신경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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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베이징 대사관 단지 인근 량마허 강변에 시민들이 촛불을 켜고 백지를 든 채 11·24 우루무치 화재 참사에서 숨진 희생자를 추모하는 대중 집회를 열자 공안 차량이 대거 출동했다. 이날 시위는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베이징 가두에서 벌어진 첫번째 대규모 시위다. 시위가 벌어진 차오양구의 최고 책임자도 현장을 찾았다고 관계자가 전했다. 신경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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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베이징 대사관 단지 인근 량마허 강변에 시민들이 촛불을 켜고 백지를 든 채 11·24 우루무치 화재 참사에서 숨진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이날 시위는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베이징 가두에서 벌어진 첫번째 대규모 시위다. 신경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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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베이징 대사관 단지 인근 량마허 강변에 시민들이 촛불을 켜고 백지를 든 채 11·24 우루무치 화재 참사에서 숨진 희생자를 추모하는 대중 집회를 열고 있다. 이날 시위는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베이징 가두에서 벌어진 첫번째 대규모 시위다. 신경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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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월드컵 경기의 중국 방영 버전과 FIFA 공식 버전. 관중석 영상이 중국 방영 버전에서는 벤치 영상으로 대체됐다. 트위터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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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절반과 헤어졌네, 탁주 한 사발이 여흥을 남기니 오늘 밤은 춥지 않구나(知交半零落 一瓢濁酒盡餘歡 今宵別夢寒)”

27일 오후 9시30분쯤 중국 베이징의 외국 대사관 단지를 흐르는 하천 량마허(亮馬河)에 시민 200여명이 한데 모여 번안곡 ‘송별(送別)’을 큰 소리로 불렀다. 구시대와 이별하려는 시위대의 소망을 담았다. 규모가 크진 않아도, 베이징 가두에서 열린 대중 집회는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운동 이후 33년만에 처음이다.

기자가 목격한 이날 시위는 지난 24일 신장(新疆) 우루무치 아파트 화재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 집회로 시작됐다. 중국 당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진화가 늦어지면서 탈출하지 못한 주민 10명이 숨진 참사다. 추모집회는 곧 제로 코로나 방역을 규탄하는 반정부 구호로 번졌다.

“부야오허쏸, 야오쯔유(不要核酸要自由, 핵산검사는 싫다, 자유를 달라)”

“옌룬쯔유, 신원쯔유(言論自由, 新聞自由, 언론 자유, 뉴스의 자유)”

이어 지난달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국가 지도자들이 불렀던 인터내셔널가 합창이 이어졌다.

“최후의 투쟁이다. 내일이 올 때까지 단결하자. 잉터나슝나이얼(英特納雄耐爾, 인터내셔널의 중국식 표기), 반드시 실현될 것이다.”

시위 현장을 가까이 취재하기 위해 하천을 건넜다. 경찰이 시위대가 모인 둑방길 진입을 양쪽에서 모두 막았다. 주변 아파트 단지에서도 시민들이 삼삼오오 몰려나왔다. 다시 하천 남쪽으로 돌아왔다. 체포를 피하면서 항의를 표시하기 위해 백지(A4 용지)를 든 시민이 늘어났다. 구호도 격렬해졌다. 공안 차량도 늘어났다. 같은 현장을 취재한 CNN 특파원 셀리나 왕은 베이징의 가두 시위에 “현실적이지 않은 밤(Surreal night)”이라고 묘사했다.

밤 11시쯤 시위대는 두 갈래로 나눠 이동을 시작했다. 한 무리는 미국 대사관과 멀지 않은 옌사(燕沙) 쇼핑센터 옆 간선도로를 건넜다. 고가를 지나던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시위에 공감을 표시했다. 일부 운전자는 내려 시위대를 휴대폰에 담았다. 시위대는 경찰과 큰 충돌 없이 자정을 넘긴 28일 오전 2시30분쯤 차오양(朝陽) 공원 부근에서 최종 해산했다.

백지혁명(#A4Revolution)으로 불리는 ‘제로코로나’ 방역 반대 시위가 중국 대도시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백지혁명은 시위대가 체포를 피하기 위해 백지로 반(反)정부 의지를 표시한다고 해서 붙은 명칭이다. 11·24 우루무치 화재 희생자 추모가 도화선이 됐다.

27일 하루에만 베이징 량마허와 칭화대·베이징대, 상하이 우루무치로, 청두(成都) 왕핑제(望平街), 우한(武漢) 한정제(漢正街)와 중산다다오(中山大道), 광저우(廣州) 주하이(珠海)광장, 닝보(寧波) 공정학원, 칭다오(靑島) 영화학원, 란저우(蘭州) 등 10여개 도시에서 동시다발 시위가 벌어졌다고 홍콩 명보가 28일 보도했다. 칭화·베이징대 등 50개 이상의 대학 교정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전국으로 번진 이번 시위는 동일한 구호가 특징이다. “핵산검사는 필요 없다. 자유가 필요하다” “우리는 중국 청년이다. 외부 세력이 아니다” “하나의 목소리만 허락한다면 유일하게 존재하는 목소리는 거짓말이다” “우리는 생존자다. 방관자가 아니다.” 홍콩 독립 인터넷 매체 이니티움미디어(端傳媒)는 이날 전국 시위 구호를 이렇게 정리했다.

전 세계 중화권에서도 연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트위터 계정 ‘중국항의(@china_protest)’에 따르면 지난 24시간 동안 런던, 리버풀, 노팅엄, 멜버른, 필라델피아, 토론토, 리스본, 프랑크푸르트, 도쿄, 타이베이 등에서도 추모시위가 벌어졌다. 서울에서는 오는 30일 홍대 어울마당로에서 촛불시위가 열릴 예정이다.

이번 시위는 우루무치 화재와 함께 카타르 월드컵이 촉매제가 됐다. 홍콩 명보는 “3년 동안 고위층이 조금도 변함없이 제로코로나를 강조하자 기층 간부의 이행 능력은 갈수록 과장됐다. 이러한 억압된 분위기가 이미 여론의 ‘질적 변화’를 유발했다”며 “월드컵 개막 며칠 만에 중국인이 ‘제로코로나’에 의문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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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국은 대응에 나섰다. 해외 트위터에는 중국에서 방영되는 월드컵 중계가 FIFA 공식 화면과 달리 관중석 장면을 벤치 장면으로 대체한 영상을 방영한다는 비교 화면까지 올라왔다. 상하이 공안 당국은 시위가 벌어진 ‘우루무치중로(中路)’ 표지판을 철거하는 등 수세적인 대응에 나섰다.

시위를 취재하는 외신 기자에 대한 탄압도 벌어졌다. 27일 상하이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영국 BBC 기자가 경찰에 연행됐다. BBC 방송은 27일(현지시간) 대변인 성명을 내고 “BBC 소속 에드 로런스 기자가 중국 상하이에서 취재 도중 수갑에 채워진 채 끌려갔다”며 “로런스 기자에 대한 대우가 극히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중국의 외신 기자 탄압은 지난해 여름 정저우(鄭州) 대홍수 당시에도 벌어졌다. 당시에는 현장을 취재하던 독일 도이체벨레 베이징 특파원의 동선이 웨이보에 공개되면서 취재를 방해받았다.

시위가 확산되면서 방역 정책 운용의 변화가 감지된다. 인민일보는 28일 1면에 “과학과 정확, 방역 업무의 효율을 제고하라”는 사설을 통해 지난 11일 나온 방역 완화 20개 조치를 조목조목 강조하면서 ‘제로코로나(動態淸零)’라는 용어를 본문에 넣지 않았다. 방역을 다룬 인민일보의 사설에서 제로코로나가 빠진 것은 지난 14일자 칼럼 이후 2주만에 처음이다. 제로코로나의 유연한 적용을 암시한다는 평가가 일각에서 제기된다. 실제로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28일 국가위생건강위원회와 질병통제예방센터가 각 지방 정부에 코로나19 방역 상황을 감독하기 위한 실무단을 파견했다고 보도했다. 지방정부의 잘못된 방역 정책을 점검해 바로잡을 것이라고 신문은 설명했다.

중국 전문가들 사이에선 반정부 민주화 운동이 전 중국에 번졌던 1989년과 조심스레 비교하는 시각이 나온다. 하남석 서울시립대 교수는 “우루무치 아파트 화재 참사가 중국 중산층을 하나의 구호 아래 모이도록 각성시킨 계기가 됐다”며 “다만, 구심점이 없는 현재 시위를 당국이 무력 진압할 가능성은 작다. 저강도 탄압으로 확산을 막으면서 방역 정책 조절로 시위대 요구를 갈라치기 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1989년 천안문 학생 시위에 참여했던 미국의 문화학자 우쭤라이(吳祚來)는 27일 “젊은이들이 이미 각성해 항쟁 모드에 들어갔다”며 “40년 개혁의 은혜와 원한은 사라지고 투쟁이 시작됐다. 당이 인민과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이 당과 투쟁을 시작, 자웅 겨루기에 들어갔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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