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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월드리포트] "황제는 필요 없다" 다급해진 중국…'우루무치' 표지판까지 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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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그저 하얀 종이일 뿐입니다"…백지 시위도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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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 방역정책에 대한 항의로 시작된 중국 내 집회가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처음엔 "코로나 검사 대신 자유를" 같은 구호가 나왔지만 이제는 "중국에 황제는 필요 없다"며 공산당과 시진핑 주석의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로 바뀌고 있습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최대 규모의 정치적 소요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추모 장소에서 저항의 상징이 된 상하이 '우루무치 거리'



지난 24일 10명이 숨진 신장 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 고층 아파트 화재사건이 부른 후폭풍이 중국 전역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봉쇄형 방역 정책 탓에 화재진압이 늦어졌다는 의혹이 일었는데, 우루무치 당국이 한밤중에 긴급 해명 회견을 하면서 오히려 희생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듯한 발언을 내놔 분노를 더 키웠습니다.

지난 26일 밤 중국 제1의 대도시라는 상하이의 '우루무치 거리'에서 희생자 추모집회가 시작됐습니다. 사람들은 '우루무치 거리'라고 표기된 도로 표지판을 중심으로 모여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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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켜지며 조화가 모였고, 추도의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수백 명으로 불어난 군중들 사이에선 "코로나 검사 대신 자유를,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같은 구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이 출동해 통제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집회가 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공산당 물러나라 시진핑 물러나라"는 구호까지 나온 겁니다.

그동안 중국 곳곳에서 봉쇄에 항의하는 주민 시위가 이어져 왔지만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까지 등장한 건 처음 있는 일입니다. 더구나 공개된 장소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런 구호를 외쳤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현재 중국에선 방역정책 위반 만으로도 구류 처분을 받을 수 있는데 이런 반정부 구호를 외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상하이 시위는 다음날인 27일 새벽까지도 이어졌습니다. 같은 날 베이징에 있는 유명 대학인 칭화대와 베이징대에서도 학생집회가 열리는 등 청두와 우한, 광저우, 난징 등 주요 대도시로 집회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상하이 당국, '우루무치 거리' 도로 표지판까지 철거



민심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당국이 어제 한밤 중에 상하이의 '우루무치 거리' 표지판을 떼어내 들고 가더니 멀리 떨어진 장소에 버린 사실이 시민들에 의해 알려졌습니다. '우루무치 거리'가 추모의 장소이자 저항의 상징이 된 만큼 도로 표지판도 불편하게 느껴졌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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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민들은 "이제 도로 표지판 마저 두려운 모양"이라면서 오히려 조소를 보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루무치 거리' 도로 표지판 이미지가 SNS에 확산되고 있습니다. 도로 표지판 그림을 인쇄해 집회 현장에 붙이거나 들고 나오는 사람들도 목격됐습니다.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도로 표지판마저 떼어내 버린 당국의 대응이 오히려 이 도로 표지판을 항의의 상징으로 만든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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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화대 학생집회에 등장한 '프리드만 방정식'



베이징 소재 유명 대학인 칭화대 학생들의 항의집회에는 '프리드만 방정식'이 등장했습니다. 여러 학생들이 손에 들고 있는 하얀 종이에 방정식 기호가 인쇄돼 있는 모습이 주목을 끌었고 궁금증을 낳았습니다. 구 소련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알렉산드르 프리드만은 팽창 우주론의 수학적 모델인 '프리드만 방정식'을 발표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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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칭화대 학생들이 이 방정식을 손에 들었는지, 본인들이 밝힌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여러 가지 추측을 낳고 있습니다. 설득력이 있다고 평가받는 해석 중 하나는 '발음' 입니다. 프리드만(Friedmann)의 발음이 'Free的 man'과 유사해 자유에 대한 요구를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는 해석입니다. 또 다른 해석은 프리드만의 방정식이 우주 팽창과 관련된 공식인 만큼, 현재 중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시위가 더욱 퍼져나갈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는 겁니다. 어떤 해석이 정확한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명문 칭화대 학생들답게 시위도 똑똑하게 해 재밌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칭화대 학생들이 프리드만 방정식을 들고 시위에 나선 이유에는 검열과 처벌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겁니다. 방역정책에 대한 반대나 항의, 정권에 대한 비판이 들어간 문구를 들었다가는 공안당국에 적발돼 강한 처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저 하얀 종이일 뿐입니다"



검열과 처벌을 피하기 위해 중국인들의 찾아낸 시위 방식이 바로 '백지 시위' 입니다. 아예 아무런 글씨도 없는 하얀 종이만을 들고 항의 표시에 나선 겁니다. 백지를 든 시민들의 모습은 상하이는 물론 베이징, 청두, 쓰촨, 광저우 등 중국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습니다. '백지 운동', '백지 혁명'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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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학 게시판에는 '이것은 그냥 백지 한 장입니다'는 글을 인쇄해 붙인 학생도 나왔습니다. 이 종이에는 "나는 말한다, 말하려 한다, 말하고 있다"는 문구도 있지만 정작 무엇을 말하려는지 그 내용은 비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그 무엇도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현재 상황을 역설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에 종신제와 황제는 필요 없다"…급해진 공안당국



중국 공안당국은 아무런 말없이 그저 하얀 종이를 든 시민들마저 연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생 가방 속에서 아무것도 적지 않은 하얀 종이 여러 장이 나오자 학교 당국이 압수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금지하고 연행하는 명확하고 구체적인 법적 근거는 없지만 '다른 사람들을 충돌질 하려 했다'는 이유로 백지 시위마저 막고 나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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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시민들도 막고, 현장에 있던 영국 BBC 특파원에게도 수갑을 채워 연행했습니다. 상하이의 '우루무치 거리' 표지판을 그냥 떼어내 버린 것처럼 그 어떤 불만의 표출 가능성도 차단하겠다는 공안 당국의 의지가 읽힙니다.

하지만 공안당국이 그만큼 당황하고 다급해졌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로도 볼 수 있습니다. 작은 의사 표현마저 검열과 처벌의 대상이 되자, 시위 현장에선 '언론자유, 표현의 자유, 민주화' 구호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더 나아가 서부 쓰촨성 대도시 청두에선 "중국에 종신제는 필요 없다. 중국에 황제는 필요 없다"라고 외치는 영상까지 공개됐습니다.

국가주석 직위 3연임 제한을 없애고 시진핑 주석이 종신 집권할 수도 있는 길을 열어 놓은 현 정권에 대한 직접적이고도 강렬한 비판입니다.

SNS 통제 한다지만 시위대는 모두 알고 있었다



세계 언론이 중국 내 시위 확산을 긴급 타전하며 주요 뉴스로 다루는 것과는 반대로 중국 내 매체에서는 단 한 줄도 관련 보도가 없습니다. 중국 내 SNS에 올라온 시위 영상들도 속속 삭제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정부 비판적인 집회나 시위 영상이 중국 내에서 삭제되는 것은 매우 일상적인 일입니다. "봉쇄 대신 밥을, 코로나 검사 대신 자유를" 같은 구호가 내걸렸던 베이징 현수막 사건과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고 외쳤던 충칭 용사 사건 등 얼마 전 벌어진 일들의 영상은 모두 삭제됐고 중국 내 매체에서는 정말 단 한 줄도 기사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베이징 현수막 사건과 충칭 용사 사건에서 등장했던 구호와 똑같은 문구를 시위 현장의 군중들이 입 모아 외치고 있습니다. 그동안 과거 사건 영상이 삭제되고 기사화 조차 되지 않았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다 보고 듣고, 또 생각하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확산되고 있는 시위 상황도 SNS 통제를 뚫고 많은 중국 국민들에게 전달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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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일보를 비롯한 중국 주요 관영매체는 오늘(28일)도 시위 관련 기사를 전혀 내놓지 않았지만 사설 형식을 통해 '정밀 방역'을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봉쇄정책으로 인한 일상생활의 불편을 해소해주는 것으로 다수 대중의 불만을 누그러트리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미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민주화 요구까지 번진 시위 확산까지 막을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정영태 기자(jyta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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