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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룹’ 속 빨간 슈룹, 파란 슈룹, 찢어진 슈룹들 [김재동의 나무와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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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엄마라 해서, 어른이라 해서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 부모는 앞서 걷는 이가 아니라, 먼저 가본 길을 알려주는 이다.”

tvN 토일드라마 ‘슈룹’의 중전 임화령(김혜수 분)의 대사다. 제목 ‘슈룹’은 우산의 고어다. 비바람을 막아준다는 의미에서 부모 역할을 은유한다.

드라마 속엔 여러 부모 군상이 나온다. 임화령과 이호(최원영 분)내외를 비롯, 대비(김해숙 분), 영의정 황원형(김의성 분), 황숙원(옥자연 분), 태소용(김가은 분), 고귀인(우정원 분), 병판 윤수광(장현성 분), 폐비 윤씨(서이숙 분)와 토지선생 유상욱(권해효 분)까지 모두가 부모다.

우산도 빨간 우산, 파란 우산, 찢어진 우산이 있듯 이들 부모들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는 ‘내 자식을 위해서’다.

과연 그런가? “자식 일 앞에선 이기적인 엄마일 뿐”이란 임화령의 고백처럼 ‘자식을 위한다’는 그 이기심이 남을 해치고, 그 끝에 결국 제 자식까지 해친다면 과연 그것을 슈룹과 같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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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 먼저 보자. 서자인 제 아들 금성군을 보위에 올리고자 의관 조국영과 공모해 적통 태인세자를 죽인다. 그 모습을 우연찮게 금성군 이호가 목격했고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는다.

이호의 아버지인 선왕은 어떤가? “입안에 발반이 있고 목은 심하게 부었으며 가슴의 상처는 음독으로 심하게 괴로워했다는 증거로 법물에 반응하지 않는 독이 쓰였다”는 당시 어의 유상욱의 진언에 “확실하지 않은 것은 아닌 것이다. 방금 이 자리서 있었던 일은 기록치 말라. 세자의 사인은 혈허궐이다”고 단언하며 곧바로 금성군을 만난 후 그를 세자로 택현했다.

황원형은 또 어떤가? 의성군(강찬희 분)이 “세자가 될 수 없다면 왕이 되겠다”며 패륜적인 역심을 드러냈을 때 황원형은 아연실색했다. 그 길로 황숙원을 찾아 “자식이 잘못된 길을 가면 그걸 바로잡아주는 것이 부모”라고 꾸짖는다.

하지만 이어진 “치욕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습니다. 의성군은 주상의 친자가 아닙니다. 대비께서 눈치를 챘습니다.”는 딸의 고백 연타에 기어코 역당인 영원대군 이익현(김재범)·유상욱(권해효 분)의 손을 잡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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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세자를 잃고 폐비로 전락한 후 영원대군 하나만을 지켜온 윤씨 왕후도 보자. “이익현 그 자가 우리 세자를 죽였습니다. 당신 아들이 내 아들을 독살한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라 물어오는 임화령에게 “몰랐습니다. 하지만 알았다해도 난 막지 않았을 것입니다.”고 단언한다.

“아니요. 막았어야죠.”라는 화령의 추궁에는 “대비가 시작한 일입니다. 근데 왜 내가 그것을 끝내야 합니까?”라고 맞선다.

유상욱은 어떤가? 아마도 황원형의 살인멸구 기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듯한 그는 자신의 아들 승선을 영원대군 대역으로 집어넣고 영원대군을 빼돌린다. “애비와 자식의 연은 여기까지다. 승선아 중전마마 잘 모시거라”하고는 매몰차게 돌아선다.

아들이 원치않는 방법으로 아들을 보위에 올린 어머니, 왕권의 실추를 막기 위해 자식의 죽음을 덮어버린 아버지, 제 인생 복수에 불사르는 아들을 지켜만 보는 어머니, 제 명분, 혹은 제 복수심에 사지가 될 지 모를 곳으로 아들을 보내버린 아버지들이다. 도대체 어느 경우가 ‘자식을 위해서’란 명분에 합당한가.

특히 대비는 비록 세자의 죽음과는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또 다른 손자인 성남대군(문상민 분)의 살해를 교사하기도 했었다. 단지 중전의 권력을 뺏어오기 위해서 슈룹이 되기는커녕 제 살을 꺾어 손자를 찌르려는 패륜을 저지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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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군으로 칭송받는 이호는 어떤가. 태인세자의 죽음을 조사하겠다는 화령에게 “태인세자가 살해됐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내가 보위에 오른 것이 역모라는 말입니다. 정말 세자가 살해당한 것이라면 다른 방법으로 알아보겠습니다.”고 발을 뺀다.

이후 화령도 주목한 가장사초의 존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당시 사관 박종훈의 아들인 박경우(김승수 분)를 불러 사초유무를 묻는다. 그리고 ‘없다’는 대답을 듣고서야 자신이 훼손하고 오래 간직해온 승정원 일기를 불사른다.

아마도 승정원일기를 훼손한 것은 어머니인 대비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즉시 소각하지 않은 것은 양심의 만류때문이었을 것이며, 뒤늦게 소각한 것은 태인세자의 죽음에 관한 마지막 단서를 없앰으로써 자신과, 자식들과, 왕실을 지키려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세자 선발에 나선 성균관 유생들을 향한 임화령의 일갈이 오버랩된다. “무지한 자가 신념을 갖는 것도 무서운 일이지만 신념을 가져야 할 자가 양심을 저버리는 무지한 짓을 하는 건 더 무서운 일입니다.”

마치 ‘자식을 위한다’는 미망에 가려 양심을 저버리는 무지한 부모들에겐 그 화가 자식에게 미칠 수 있음을 깨우치는 말로 들린다.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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