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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사설] 이번엔 신촌서 모녀 사망, 보완했다는 복지망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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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다세대주택에서 60대 어머니와 30대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집 앞에는 5개월 밀린 전기요금 등 공과금 미납 고지서가 쌓여 있었다. 경찰은 생활고를 겪던 모녀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했다. 모녀는 보건복지부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 대상으로 분류됐지만 거주지가 주민등록상 주소지와 달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자체가 소재를 파악하지 못해 장기간 방치되다 숨졌던 지난 8월 ‘수원 세 모녀 사건’과 유사한 일이 재발한 것이다.

복지부는 이번 사건이 보도되기 하루 전인 지난 24일 ‘복지 사각지대 발굴 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수원 세 모녀 비극이 발생한 지 3개월 후 재발 방지책을 내놓은 것이다. 현행 34종인 사각지대 위기가구 관련 정보를 44종으로 늘리고, 현장조사를 통해 연락 두절된 위기가구의 소재를 신속히 파악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법 개정 등 후속 조치가 필요한 장기 대책이 다수였다. 그런데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 발표하는 그 시간에 비극이 재발한 것이다. 더구나 복지부의 보도 자료 제목이 ‘촘촘한 위기가구 발굴로 약자복지를 더욱 강화하겠습니다’였다. 탁상공론을 내놓는 것조차 굼뜨니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정부가 이런 식의 대책을 되풀이하는 한 비극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복지부가 2016년부터 올해 7월까지 복지 사각지대에 처한 대상자 446만여명을 발굴했지만, 이 중 58%에 달하는 260만여명이 정부의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특히 연락 두절로 인해 정부 조사가 종결된 사례가 3만2906건이었는데, 신촌의 모녀도 여기에 포함됐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런 공백을 서둘러 막아야 한다. 위기가구를 추적하고 보살피는 복지 전담 인력을 확충하는 한편 빈곤층을 지원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 도움이 필요한 취약계층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후 수원에서 유사한 비극이 벌어지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재발 방지 대책을 주문했다. 윤석열 정부는 “약자 복지”를 강조하면서도 내년 복지예산을 4.1% 늘리는 데 그쳤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7%대 증가율에 못 미친다. 진정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고자 한다면 ‘촘촘한 복지’니 ‘약자 복지’니 하는 말장난을 멈추고 복지 재원 투입을 과감히 늘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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