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인터뷰] 세계 5위 거머쥔 호주 와인의 힘... “20년 보관 쯤은 거뜬한 숙성 잠재력”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비즈

아콜레이드 와인 코리아가 24일 글로벌 빈티지 릴리즈 프로그램(Global Vintage Release Program·GVRP) 2022에서 선보인 호주 프리미엄 와인. /아영FBC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호주 와인은 억울하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칠레보다 생산량이 많은데, 국내에서 인지도는 칠레에 한참 못 미친다. 지난해(1~10월) 한국무역협회 자료를 보면 호주 와인 수입 물량(2800만달러)은 칠레(7400만달러)는 물론 스페인(3500만달러)에도 뒤처졌다.

그렇다고 미국 와인만큼 몸값이 높지도 않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체 와인 수입 물량 가운데 미국이 차지한 비중은 11%, 전체 와인 수입 금액 가운데 미국이 차지한 비중은 18%로 나타났다.

반면 호주산 와인은 물량 가운데 6.2%, 금액 가운데 5.1%를 기록했다. 물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보다 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는 의미는 그만큼 저렴한 와인을 잔뜩 들여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부 구대륙(old world) 와인 맹신론자들은 호주 와인이 ‘단순하고 직설적’이라고 비판한다. 구대륙은 ‘와인 종주국’ 프랑스를 포함한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권 와인 생산국가를 말한다.

맹목적으로 이들 국가 와인을 추종하는 일부 소비자들은 ‘유럽에서 와인 문화가 시작했고, 그만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는 점을 들어 호주, 칠레, 미국 등 소위 신대륙(new world) 와인들을 폄하한다.

신대륙 와인을 독립된 개체로 보기 보다, ‘이 정도면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 단위 와인 정도 수준이네요’ 같은 비교 대상으로 삼는다. 해외 와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들을 겨냥한 ‘구대륙 속물(OWS·old world snob)’이라는 단어까지 생겼다.

호주 와인은 이 구대륙 와인 속물들 입방아에 오르는 단골 소재다. 우리나라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호주 와인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편의점에서 파는 대중적인 와인’, ‘고깃집에서 맥주잔에 따라 마셔도 괜찮은 와인’ 같은 굴레를 좀처럼 벗지 못했다.

국내 편의점 와인 대표주자 ‘옐로우테일’이 미국 시장에서도 단일 브랜드 기준 최다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호주 와인업계는 이 고정관념을 넘어서기 위해 매년 전 세계에서 다양한 행사를 벌이고 있다.

1836년 설립된 호주 최대 규모 와인 기업 아콜레이드(Accolade Wines)는 올해 우리나라에서 하디스(Hardys), 하우스 오브 아라스(House of Arras) 같은 호주산 프리미엄 와인을 선보이는 행사를 열었다.

지난 24일 서울 청담동에서 만난 크레이그 스탠스버로우(Craig Stansborough) 아콜레이드 프리미엄 와인메이커는 “이 자리에 놓인 하디스와 아라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품질이 좋다고 우리가 주장하는 와인이 아니라, 전 세계가 가장 품질이 좋다고 인정한 와인”이라고 말했다.

아라스 스파클링 와인 가운데 하나인 ‘이제이 카 레이트 디스고지드(E.J. Carr Late Disgorged) 2004′는 2020년 영국 유명 와인매체 디캔터가 ‘올해 최고 스파클링 와인’으로 꼽았다.

루이비통으로 대표되는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이 소유한 프랑스 샴페인 브랜드 ‘크룩(Krug)’마저 넘어선 결과다.

조선비즈

그래픽=손민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스탠스버로우는 “호주 전역에서 기른 포도를 와인 한 병에 담기 위해 3000~4000km 떨어진 지역에서도 포도를 키우고, 이 포도로 만든 와인 원액을 다시 수천킬로 떨어진 양조장까지 실어 나르는 수고를 반복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방식은 호주만큼 국토가 크지 않고, 원산지 별로 재배 규정이 엄격하게 정해진 유럽에서는 좀처럼 시도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그는 이날 본인이 만든 호주산 와인들을 선보이며 그간 호주 와인에 씌워진 주된 편견에 대해 담담하지만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반박했다.

① 호주 와인은 저렴한 맛에 마신다?

아니다.

1990년대 호주는 영국 시장에 값싼 벌크와인을 대거 팔았다. 벌크와인이란 병에 담기지 않은 채 팔리는 와인을 말한다. 오래 전 우리나라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퍼다 팔던 방식과 비슷하다.

벌크 와인이라고 품질이 항상 나쁘진 않다. 하지만 벌크와인은 원산지 통제 등 품질 좋은 와인을 얻기 위한 까다로운 규제와 거리가 멀어 품질이 일정하지 않다. 어디서 온 지 알 수 없는 포도를 몽땅 섞어 만들기도 한다. 호주 와인이 저렴하다는 인식은 여기서 시작했다.

세계 최대 와인 관련 애플리케이션(앱) 비비노에 따르면 전 세계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와인 평균 가격은 1병당 15.6달러(약 2만1000원)이다. 보통 이 2배인 32달러(약 4만3000원)를 넘어서면 ‘프리미엄 와인’이라고 취급한다.

이날 스탠스버로우가 소개한 와인들은 전 세계 시장에서 최소 30달러, 최대 80달러 선에 팔린다. 주세와 기타 비용을 감안한 국내 판매 비용은 5만~15만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저렴하다’는 보편적 기준과는 거리가 먼 금액이다.

② 호주 와인은 진득한 레드 와인 뿐이다?

아니다.

호주에서는 2000년대 초반까지 시라즈(shiraz)라는 품종으로 끈적하다 싶을 정도로 진하고 강건한 와인을 만드는 방식이 널리 인기를 끌었다.

호주 최대 와인 생산지역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일대의 여름 기온이 포도가 완전히 익기 좋을 만큼 높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 널리 자란 포도 묘목 수령이 70년을 훌쩍 넘은 고목(古木·old vine)인 것도 농축미가 돋보이는 열매를 맺는 데 한몫을 했다.

과일 잼을 머금은 듯 달큰하고 묵직한 시라즈 품종 와인은 여전히 호주 와인의 상징 같은 존재다.

‘호주 와인의 바이블’로 여겨지는 랭턴 등급 분류표를 보면 펜폴즈 그란지(Penfolds Grange)나, 헨쉬키 힐 오브 그레이스(Henschke’s Hill of Grace) 같은 내로라하는 와인들이 최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이들은 모두 바로사 밸리(Barossa Valley)라는 지중해성 기후의 더운 지역에서 만든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이후 이런 고전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려는 호주 생산자들의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최근 전 세계 와인업계가 주목하는 호주 와인들은 대체로 태즈매니아, 야라밸리, 펨버튼 처럼 바로사 밸리보다 훨씬 서늘한 지역에서 나온다. 이 지역에서 키운 시라즈로 와인을 만들면, 같은 품종으로 빚었어도 훨씬 우아해 지는 경향이 있다.

실제 이날 마신 스파클링 와인을 만든 포도는 호주에서도 최남단에 속하는 태즈매니아 섬에서 재배했다. 화이트 와인을 만든 샤르도네 품종 포도 가운데 일부는 바로사 밸리에서 2500km 떨어진 마가렛 리버에서 키웠다.

호주는 국토 면적이 7억7000만헥타르에 달한다. 우리나라보다 77배 더 넓다. 사막처럼 광활한 초원 뿐 아니라 해안 지역이나 냉대 기후, 깊은 계곡에 자리잡은 포도밭이 즐비하다. 호주와인협회에 따르면 토양, 지형, 기후가 다른 65개 지역에 자리 잡은 와이너리가 총 2500여개에 달한다.

그 덕에 와인 양조자들은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 포도를 이용해 개성 있는 와인을 만들 수 있다. 최근에는 모멘토 모리, 제이시스 오운(JC’s own)처럼 인위적인 첨가물을 넣지 않는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도 호주 와인업계 전면에 등장했다. 상대적으로 느슨한 통제를 기반으로 다양성을 추구할 만한 와인 실험의 장인 셈이다.

③ 호주 와인은 오래 두고 마실 수 없다?

아니다.

이 선입견 역시 ‘호주 와인은 저렴한 와인이 대부분’이라는 명제와 이어져 있다.

와인을 잘 숙성해서 오래 두고 마시려면 질 좋은 포도로 만든 프리미엄 와인이어야 한다. 호주와인협회는 “산도(acidity)가 높고,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서늘한 기후에서 자란 포도로 만든 와인이 숙성 잠재력이 높은 편”이라고 밝혔다.

저렴한 호주 와인은 오래 보관해도 맛이나 향에 있어 딱히 긍정적인 변화를 보이기 어렵다. 숙성한 호주 와인이 아쉬움을 남겼다면 해당 와인의 가격이나 질(質), 보관 상태를 먼저 확인해보는 편이 낫다.

스탠스버로우는 이날 소개한 와인들의 시음적기를 화이트 와인은 약 10년 후, 레드 와인은 약 20년 후로 꼽았다. 시음적기란 와인을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마실 수 있는 시기를 말한다. 시음적기가 2030년이라면 앞으로 8년이 지날 무렵을 전후해 와인이 가장 맛있게 익는다는 뜻이다.

시음적기는 와인에 담긴 숙성 잠재력(aging potential)을 기반으로 한다. 이 때문에 품종이나 지역 별로 뚜렷하게 시음적기가 정해져 있지는 않다.

다만 호주와인협회는 가장 대중적인 화이트 와인 품종 샤르도네는 프리미엄 와인에 한해 5년 이상, 가장 유명한 레드 와인 품종 카베르네 쇼비뇽은 프리미엄 와인에 한해 수십년 이상 보관이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오미경 아콜레이드 와인 한국본부장은 “프랑스 와인을 셀러에 오랫동안 보관하면서 마시던 소비자들도 호주 와인이 가진 잠재력에 대해서는 의심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서 바로 마시는 호주 와인 뿐 아니라, 사놓고 수십년을 숙성할 수 있는 호주 프리미엄 와인이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유진우 기자(ojo@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