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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7차 임박설' 예측도 빗나갔다…잊혀진 北 핵실험의 계절 [뉴스원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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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외교안보부장의 픽 : 북한의 7차 핵실험



2014년 4월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에 비상이 걸렸다.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의 핵실험장 갱도에 하얀색 박스가 들어갔다는 정보가 입수됐다. 북한의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경보가 울렸다. 빠르면 수일, 늦어도 일주일 안에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감행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국방부와 합참은 대책 마련에 바빠졌다.

그러나 재확인 결과 박스는 갱도를 받치는 통나무로 드러났다. 그리고 정작 4차 핵실험은 2년이 지난 2016년 1월 6일에 이뤄졌다.

중앙일보

북한군인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의 3번 갱도 앞을 지키고 있다. 북한은 2018년 5월 24일 북한이 한국ㆍ미국ㆍ중국ㆍ러시아ㆍ영국 5개국 취재진을 불러놓고 풍계리 갱도를 폭파했다. 그러나 당시 입구만 막아놨고, 북한은 이후 3, 4번 갱도 입구를 다시 내 핵실험장을 복구했다.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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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실험을 둘러싼 한ㆍ미의 정보전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이번에도 ‘핵실험의 계절’이 시나브로 지나갔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9월 28일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회의에서 10월 16일 중국 공산당 제20차 당 대회부터 이달 7일 미국 중간선거 사이 북한이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목했지만, 예측이 빗나갔다.

국정원은 지난 5월 19일에도 국회에 “북한은 핵실험 준비를 끝냈고, 타이밍만 보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면서 ‘7차 핵실험 임박설’이 시중에 떠돌기 시작했다.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김태효 1차장은 같은 달 25일 “풍계리 핵실험장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 하루 이틀 내에 핵실험이 일어날 가능성은 작지만, 그 이후 시점에선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하면서 임박설을 부채질했다.

일부 언론에서 ‘5월 20일(조 바이든 미 대통령 방한) 직전’‘5월 30일(미국의 메모리얼데이)’‘6월 10일’ 등 7차 핵실험 예정일 기사가 쏟아졌다. 이들 기사는 풍계리 갱도 안에 핵폭탄을 집어넣은 게 확인됐고, 버튼만 누르면 된다고 보도했다. 특히 가장 유력하다는 6월 10일 즈음엔 주식 시장에서 방산주가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 상황에 밝은 익명의 정부 소식통은 “한ㆍ미 정보당국은 6월 10일 핵실험이 없다고 판단했다”며 “당시 진입로가 일부 유실될 정도로 풍계리 지역에 비가 많이 내렸다. 핵폭탄을 갱도에 반입하기는커녕 풍계리로 수송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북한은 우천이나 장마를 피해 핵실험을 해왔다. 폭발 위력 등을 측정하는 각종 계측 장비가 습기에 민감하기도 하지만, 핵실험 전후 비가 내릴 경우 방사성 물질이 토양이나 지표 아래, 하천 등으로 유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실험 일정을 미리 알아내는 건 ‘미션 임파서블’이다. 폐쇄ㆍ통제 국가인 북한에서 핵실험 계획 등 최고위 정보를 빼낼 휴민트(HUMINT·인적 정보)를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찰위성이나 정찰기, 무인기로 풍계리를 살펴보지만, 이 또한 쉽진 않다. 또 다른 정부 소식통은 “미국의 정찰 자산은 북한의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TEL)를 집중적으로 쫓고, 풍계리와 같은 고정 시설은 우선순위가 좀 밀린다”고 귀띔했다.

그래도 미국은 북한 핵실험 직전 이를 파악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북한은 핵실험 직전 풍계리 갱도 안에 핵폭탄을 밀어 넣은 뒤 갱도를 틀어막는데, 미국의 정찰 자산은 갱도 봉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종합하자면 확인되지도 않았는데 정부는 설익은 북한 핵실험 오경보를 홀렸다. 왜 그랬을까.

일각에선 정부의 무책임을 탓하는 목소리가 있다. 익명을 요구하는 민간 전문가는 “정부가 핵실험 날짜를 점지했는데 별일 없이 그대로 지나가면 그냥 묻힌다. 그런데 북한이 기습적으로 핵실험을 벌이면 무능하다는 욕을 먹는다”며 “이 때문에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는 ‘인디언 기우제’와 같은 정보판단을 내리는 게 습성”이라고 지적했다.

대북 정보를 그대로 생중계해 동향을 낱낱이 살피고 있다는 메시지를 내보면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려는 의도라고 분석도 있다. 또 다른 민간 전문가는 “앞서갔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핵실험이 임박했다고 떠들면 북한도 움츠러들 것이고, 특히 뒷배인 중국이 북한을 말릴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정원 측은 “한ㆍ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언제든 7차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준비를 마친 것으로 평가해왔다”며 “다만 9월 국회 정보위에서 7차 핵실험 시기와 관련해 만약 감행한다면 해당 시기가 가능성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밝힌 것으로 확률이나 실제 가능성을 담은 의미에서 언급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국제 정세와 코로나19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이라는 취지로 답변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부가 국제 정세와 북한 상황을 미뤄 짐작해 핵실험 예상일까지 내놓는 것은 안일하다. 그동안 정보당국과 군당국은 “북한은 핵실험 준비를 완료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치적 결정에 따라 언제든 가능하다”는 입장을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이는 김 위원장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핵실험 도발이 언제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내던진 북한 핵실험 오경보는 대중의 기억 속에 잊히더라도 결국 정부 정보판단의 신뢰성을 깎아내린다. 이솝 우화 속 ‘양치기 소년’과 같은 결말을 맞지 말란 법은 없다.

이철재 외교안보부장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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