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억에 ‘쓰레기 중고차’ 샀다…‘침수차 공포’ 확산, 3000대 폐차 안했다 [세상만車]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반값에 횡재했다더니 악재
확인된 침수차 1만8289대
침수차 3292대, ‘폐차’안해
딜러매입 침수차도 148대


매일경제

폭우에 침수된 BMW(왼쪽)와 벤츠 차량 [사진출처=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A씨는 출시된 지 1년 정도 된 벤츠 S클래스를 중고차 시장에서 반값 수준인 1억2500만원에 구입했다. 중고차 딜러는 무사고 차량이라 자랑했고, 중고차 성능·상태점검기록부에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 차는 1년 전 장마철에 침수됐던 사실이 드러났다.

#B씨는 성능·상태점검기록부에 침수·사고가 없다고 기재된 렉서스 차량을 5000만원에 구매했다. 얼마 뒤 엔진이 이상하다고 느낀 B씨는 공식 서비스센터에서 점검받다 침수차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화가 난 B씨는 딜러에게 항의했다. 딜러는 자신도 침수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발뺌한 뒤 잠수했다.

매일경제

물에 잠긴 차량들 [사진출처=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찰에 적발되고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침수차 피해 사례다.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매년 발생한 뒤 몰래 유통되는 침수차는 중고차 시장의 고질병이다. ‘물 먹은 차’이자 모르고 산다면 ‘물 먹는 차’로 여겨진다.

차량용 반도체 품귀로 발생한 출고대란에서 알 수 있듯이 자동차는 물과 상극인 전자전기 장치와 금속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물 먹은 차는 갑작스러운 고장으로 경제적 피해를 일으키는 것은 물론 사람 목숨까지 위협한다. 침수차는 무조건 폐차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소비자들은 잘 모르지만 폭우와 태풍이 잦아지는 가을부터 중고차 시장에서는 암묵적으로 ‘침수차 주의보’가 발령된다.

115년 만에 기록적인 물폭탄에 ‘수입차 메카’ 서울 강남이 물에 잠긴 올해에는 주의보 수준이 아니다. 침수차 ‘위기 경보’가 사실상 발령됐다.

현대차, 기아, 제네시스 등 국산차는 물론 포르쉐, 람보르기니, 페라리, 벤츠, BMW, 아우디, 테슬라 등 값비싼 수입차 포함해 2만대 가량이 침수돼서다.

모르고 사면 물 먹는 침수차


매일경제

12일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 주차장에 침수 차량이 집결해 있다. 2022.8.12 [한주형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5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8~9월 집중호우와 태풍에 침수된 차량은 1만8289대다.

국토부는 올 여름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침수차들이 불법 유통되지 못하도록 교통안전공단이 운영하는 자동차관리정보시스템에 등록해야 하는 침수 이력 차량을 확대했다.

자동차보험 자기차량손해담보(자차보험)에 가입한 차량의 경우 기존에는 보험개발원에서 전손(全損, 수리비가 피보험차량 가액을 초과하는 경우) 처리된 침수차 정보만 전송했다.

9월부터는 분손(分損, 수리비가 피보험차량 가액을 넘지 않는 경우) 처리된 침수차 정보까지 전송하도록 개선했다.

또 침수로 도로에 방치돼 지방자치단체에서 도로 안전을 위해 견인하거나 침수피해 사실확인서를 제출받은 침수차에 대해서도 소비자들이 침수 이력을 알 수 있게 됐다.

자동차관리정보시스템에 등록된 침수차 중 1만4849대는 폐차(말소등록)됐다. 중고차 매매업자에게 판매된 침수차는 148대다. 폐차하지 않고 개인이 계속 소유중인 침수차는 3292대다.

중고차 시장이나 개인 간 거래를 통해 침수차가 유통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침수차, 10배 비싸게 산다” 광고도


매일경제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진흥아파트 앞 서초대로 일대에서 전날 내린 폭우에 침수됐던 차량이 도로에 그대로 방치돼 있다. 2022. 8. 9. [박형기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침수 피해를 보상해주는 자차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보험사에 피해를 접수하지 않은 차량도 많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자차보험 가입률을 감안하면 침수차 10대 중 3대는 보험사 집계에 포함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자차보험 가입률은 72.7%다. 단순 계산으로는 올해 침수된 차량 10대 중 3대는 보험사를 통해 보상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금전적 피해를 줄이려는 일부 침수차 소유자, 이들에게 차를 산 악덕 호객꾼들이 침수 사실을 숨긴 채 판매할 수 있다.

매일경제

12일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 주차장에 침수 차량이 집결해 있다. 2022.8.12 [한주형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고차로 판매하기 어려운 ‘침수 전과’를 남기지 않기 위해 자차보험 가입자가 ‘자의든 타의든’ 보험사에 접수하는 대신 자비로 수리한 뒤 중고차로 팔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8월10일 대규모 침수차가 발생한 뒤 온라인 사이트에는 침수차를 좋은 값에 구입한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폐차 값보다 더 비싸게 사겠다며 시동이 걸리지 않는 침수차를 폐차 금액의 10배 이상 주고 매입했다는 글도 등장했다.

대량으로 발생한 침수차들을 임시 보관해둔 서울대공원 주차장 인근에는 침수차를 사겠다는 현수막까지 나붙었다.

사람 잡는 ‘선무당 침수차 구별법’ 확산


매일경제

침수된 채 방치된 수입차 [사진출처=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침수차 몰래 유통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자 피해 예방법도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정비 전문가가 아닌 일반 소비자가 실제로 활용하기 어려운 방법들이 많이 소개됐다.

일반 소비자가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안전벨트 점검, 악취 및 오물 확인 정도다.

차량이 내부까지 침수됐다면 안전벨트에 흔적이 남는 경우가 있다. 안전벨트를 끝까지 감아보면 끝부분에 흙이나 오염물질이 묻어나오기도 한다.

단, 안전벨트만으로는 침수 여부를 파악할 수 없다. 침수차를 전문적으로 속여 파는 악덕 딜러나 정비업자 대부분도 이 사실을 알고 세척 작업을 벌이기 때문이다.

안전벨트가 ‘너무’ 깨끗하다면 침수로 새 제품으로 교체했다고 의심한 뒤 제조일자로 침수차 여부를 일부 파악할 수는 있다. 그러나 새 상품이 아닌 것처럼 사용흔적을 만들면 알아채기 어렵다.

또 침수차를 팔면서 실내 악취나 금속 부위 녹 등 눈에 쉽게 보이는 침수 흔적을 놔두는 경우는 드물다. 자동차 전문가가 시간을 들여 점검하지 않는 이상 정확히 판단하기 힘들 정도로 없앤다.

매일경제

오물로 오염된 침수차 내부 [사진출처=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안전벨트, 악취, 오물로는 어쩌다 어설픈 사기꾼이 내놓는 침수차만 골라낼 수 있을 뿐이다. 오히려 악덕 딜러들은 ‘선무당 침수차 지식’을 악용한다.

악덕 딜러들은 침수차를 매입한 뒤 바로 팔지 않는다. 흔적이 있다면 두 달 정도 세척과 정비 작업을 거친다.

흔적과 바로 나타나는 침수차 증상을 없앤 뒤에는 “냄새나 오물이 없다” “시트 아래에 곰팡이나 얼룩이 없다” “안전벨트가 교체되지 않았고 말끔하다” 등의 말로 침수차가 아닌 것처럼 소비자들을 속인다.

어설프게 알려진 침수차 구별법 때문에 오히려 소비자 피해가 커질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침수차는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구매자가 다시 중고차로 내놓는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침수 흔적은 사라진다. 1~2년전 유입된 침수차는 전문가들도 흔적을 찾아내기 어렵다.

“싸고 좋은 차는 없다” 기억해야


매일경제

보험개발원 카히스토리 무료 침수 사고 조회 서비스 [사진출처=사이트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반 소비자가 침수차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우선 ‘싸고 좋은 차는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헐값이나 싼값을 미끼로 소비자들 유혹한 뒤 침수차와 같은 문제 많은 차를 강매하는 사기꾼들이 많아서다.

일반 매매업체를 통해 구입한다면 보험개발원의 자동차이력정보서비스(카히스토리)를 이용해야 한다. 카히스토리를 발급받으면 침수로 수리 또는 전손 처리됐는지 적혀 있다.

물론 한계도 있다. 자차보험으로 침수 피해를 보상받은 차량만 파악할 수 있다. 자차보험에 가입했지만 침수 피해를 자비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전과’를 남기지 않는 차들을 걸러낼 수 없다.

올 여름 침수차를 좋은 값에 매입한다고 광고를 몰린 업체들도 자차보험에 흔적이 없는 차들을 선호했다.

매일경제

자동차 365 [사진출처=사이트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카히스토리를 보조해 침수차를 좀 더 솎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정비 이력이다.

국토부가 운영하는 자동차 365 홈페이지를 통해 정비 및 검사 이력, 침수 여부, 사고 이력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침수차가 대량으로 발생한 시기에 하체, 시트, 엔진오일 등이 집중적으로 교환됐다면 침수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높다.

번호판이나 소유자를 바꾸는 침수차 세탁도 파악해야 한다.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자동차 민원 대국민 포털’ 사이트에서 자동차등록원부를 보면 차량번호와 소유자 변경 내역을 파악할 수 있다.

번호판이 교체되고, 소유자가 짧은 기간에 여러 번 바뀌었다면 침수 여부를 더욱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

매일경제

12일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 주차장에 침수 차량이 집결해 있다. 2022.8.12 [한주형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매매업체에서 중고차를 구입할 때는 계약서 특약사항에 “판매업체가 알려주지 않은 사고(침수 포함) 사실이 나중에라도 밝혀지면 배상한다”는 내용을 넣어둬야 한다. 특약사항이 없을 때보다 문제를 조금이나마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비용이 들더라도 진단 및 보상 체계를 갖춘 중고차 기업, 수입차 브랜드나 캐피탈사가 운영하는 인증 중고차 매장에서 구입하면 된다.

중고차 구매 동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정비 전문가가 출장비나 점검비를 받고 소비자와 같이 가서 차를 살펴봐준다.

비용은 차종에 따라 달라진다. 고가 수입차나 스포츠카가 아니라면 한대당 10만~20만원 수준이다. 비싸다면 비싸고 싸다면 싼 비용이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