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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다양성 확대’ vs ‘역차별’… 美 ‘소수인종 大入 우대’ 존폐 기로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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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 흑인 여학생 가장 유리”… 한인 사회도 불만 커

인종적 균형 내세운 ‘소수자 우대 정책’

아시아계, 지원자 많고 성적 우수해도

대학 입시서 역차별 당하는 경우 많아

SFA, 하버드대 등 상대 헌법소원 제기

미국인 63% 폐기 지지·36% 유지 입장

대법 구성 보수 우위… ‘위헌’ 관측 우세

“만약 아이비리그(미국 북동부의 사립 명문대학들)에 아시아계는 100명, 흑인은 10명 지원한다고 할 때 인종적 균형을 맞춘다고 하면 아시아계에 불리할 수밖에 없는 제도죠.”

미국 연방대법원이 위헌 여부 심리에 돌입한 대학 입시에서의 소수자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은 그동안 아시아계 역차별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 상대적으로 교육열이 높은 재미 한인 커뮤니티도 우려하던 제도다. 사회 전체의 다양성 확대라는 대의(大義)와 아시아계 역차별이라는 현실적 불이익 앞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한인 사회가 제도 존폐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세계일보

미국 연방대법원이 대학입시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 : 소수자 우대정책)에 대한 위헌 심리에 돌입한 지난달 워싱턴의 대법 청사 앞에서 '다양성은 필요하다', '나의 인종의 나의 스토리'등의 피켓을 들고 제도 유지를 찬성하는 집회(10월 31일)가 열리는 가운데 '다양성이라는 이름의 차별', '입시에서 나의 인종이 손해를 줘서는 안된다'라고 주장하는 등의 피켓을 들고 제도 유지에 반대하는 시위(10월 30일)가 개최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SFA(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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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도 현 제도에 불만

그동안 대입에서 아시아계가 차별당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한인의 우려도 작지 않았다.

‘미국의 8학군’이라고 불리는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에 사는 12학년(한국 고등학교 3학년에 해당) 아들을 둔 학부모 A씨는 25일(현지시간) 통화에서 “미국 대학 입시는 저소득층 가구 학생이 유리하고, 인종으로는 흑인과 히스패닉, 성별로 하면 여성이 유리하다”며 “저소득층 가구의 흑인 여학생이 가장 유리하고, 중간 소득의 아시아계 남학생이 가장 불리하다고 말한다”고 했다. 대입을 준비하는 아들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다.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한인 학생이 많이 다니는 입시학원 원장도 “대부분의 대학 입학 원서를 보면 히스패닉이냐는 질문이 있고, 구체적으로 민족을 묻는 문항이 빠지지 않는다”며 “일정 부분 인종적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시아계 학생의 경우 학업 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나고 아이비리그 지원자가 많다”면서 “예를 들어 아시아계는 100명이 지원하고, 흑인은 10명이 지원하는데 인종적 균형을 맞춘다고 하면 아시아계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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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의 위헌 심리는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tudents for Fair Admissions·SFA)이라는 단체가 이 제도가 아시아계 미국인 지원자를 차별했다며 하버드대와 노스캐롤라이나대를 상대로 각각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비롯됐다.

SFA는 대법에 제출한 자체 분석 자료에서 인종에 따른 학업 수준 10분위별 입학률을 공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같은 학업 수준에서도 흑인의 입학률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히스패닉, 백인, 아시아인 순이었다. 특히 10분위 가운데 성적이 네 번째로 낮은 분위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의 입학률은 0.9%밖에 안 됐지만, 흑인의 경우 12.8%로 나타나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역차별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아시아계 역차별론에 반론도

이 제도가 아시아계를 일방적으로 역차별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단순히 인종적 측면이 아니라 인종 외에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고 있고, 대학에서도 각자 다양하게 입학 제도를 운용하는 만큼 대법 판결과 이후 논의 등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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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 의장과 교육위원을 지낸 문일룡 변호사는 “대학이 꼭 인종뿐 아니라 부모의 소득이나 학력, 지역, 학생 개개인의 특수 사정 등 다양한 요소를 입시에 반영하는 만큼 입시 제도에 대한 논의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법이 소수 인종 입학 우대 제도를 바로 폐기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대법에서 논의된 것처럼 언제까지 소수 인종 입시 우대 제도를 시행할 것이냐에 대한 논의는 계속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현 대입에서 백인·아시아계보다 흑인·히스패닉계가 불리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한 여론조사(10월7∼10일, 미국 성인 1238명 대상)에 따르면 좋은 대학 입시 기회에서 인종에 따른 유불리를 묻는 말에 흑인이 불리하다는 응답은 40%, 히스패닉계가 불리하다는 응답은 42%였다. 이에 비해 백인이나 아시아계가 불리하다는 응답은 각각 11%, 18%였다.

현재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애리조나, 조지아, 미시간, 네브래스카, 뉴햄프셔, 오클라호마, 워싱턴 9개 주는 공립대학 입학에서 인종을 고려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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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 여론은 제도 폐지 무게

미국 사회 전체의 여론은 대입에서 소수자 우대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는 흐름이다. WP가 보도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63%는 제도 폐기를 지지했다. 반대한다는 입장은 36%였다. 인종적으로는 역시 현 제도의 유불리에 따라 입장이 갈렸다. 제도 폐기에 대해 백인과 아시아계는 각각 66%, 65%가 지지했다. 이에 비해 흑인은 폐기 지지 47%, 폐기 반대 53%였다.

대학 내에서 학생의 인종적 다양성 확대에 대해서는 64%가 긍정적이라고 답해 일견 모순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는 대학의 인종적 다양성 확보에는 찬성하지만 입시는 부정적 차별은 물론 ‘긍정적 차별’도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3월 발표한 여론조사(3월7∼13일, 미국 성인 1만441명 조사)에 따르면 대학 입학에 가장 중요한 요인에 대한 질문에 고등학교 성적이라는 61%로 가장 높았고, 표준화한 시험 39%, 사회봉사 19%, 가족 중 첫 대학 입학자가 18%로 나타났다. 인종이 중요하다는 답변은 7%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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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우위 대법, 내년 6월 결론 낼 듯

지난달 31일 심리에 착수한 대법은 소수자 우대 정책에 따른 대입 제도에 대해 2003년과 2016년 문제가 없다고 결정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이래 대법관 구성이 보수 6명, 진보 3명으로 보수 우위로 바뀌면서 위헌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보수 성향의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 제도에 대해 “우리를 인종으로 갈라놓는 비도덕적인 처사”라고 말했다. 보수 성향이자 흑인인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도 “나는 인종이 다양한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다양성이라는 단어를 꽤 많이 들었지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이 제도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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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성향으로 최초의 흑인 여성 대법관인 커탄지 브라운 잭슨은 인종이 다양한 대입 평가 요소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맞서고 있다. 진보 성향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은 “미국의 다원주의를 신뢰한다는 건 다양성 측면에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제도를 옹호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11·8 중간선거 다음 날인 9일 대법의 위헌 결정 시 대응을 묻는 말에 “대법이 기존의 결정을 뒤집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며 뾰족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다양성 증진을 강조해온 바이든 행정부도 제도 지지 입장이 분명하지만 판결을 막을 수는 없다. 대법은 내년 6월쯤 위헌 여부 판단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수자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은 문자 그대로 보면 긍정적(affirmative) 조치(action)라는 뜻이다. 고용과 교육 등에서 성별이나 인종, 종교적 신념, 국적 등을 고려해 혜택을 주는 제도로서 긍정적 차별(positive discrimination)이라고도 불린다.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정부 유관 기관이 직원을 채용할 때 성별, 인종, 종교, 출신 국가 등에 차별 없이 ‘긍정적 조치’를 취하라는 행정명령(10925)에 서명하면서 시작됐다. 사회적 소수자 집단에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것으로 정부 기관 등이 나서 소수자에게 교육 및 훈련 기회 등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상대적으로 흑인과 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 및 사회적 소수자에게 대학 입학, 취업 등에서 적극적 혜택을 준다. 특히 대입에서는 소수 인종 출신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입학 정원의 일정 비율을 배정하는 방식의 제도가 시행된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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