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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소리 스토킹’ 엇갈린 판결 논란, 판사가 설명해 드립니다 [The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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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이브: The 5] 전화벨소리는 스토킹인가 아닌가

한겨레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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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시간이 없지 관심이 없냐!’ 현생에 치여 바쁜, 뉴스 볼 시간도 없는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뉴스가 알려주지 않은 뉴스, 보면 볼수록 궁금한 뉴스를 5개 질문에 담았습니다. The 5가 묻고 전문가가 답합니다. ▶▶주간 뉴스레터 휘클리 구독신청 검색창에 ‘휘클리’를 쳐보세요.

누군가가 끈질기게 걸어오는 전화로 불안했던 적 있으신가요? 듣기만 해도 공포스러운 전화 벨소리가 스토킹 범죄가 아니라는 판결들이 연이어 나와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전화가 집요하게 여러차례 걸려와도 받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단 건데요. 앞선 판결과 달리 같은 행동을 스토킹이라고 본 첫 판결도 나오면서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스토킹처벌법에 뭔가 문제가 있는지, 판사들의 판단은 왜 다른 건지, 현직에서 일하는 판사에게 물었습니다.

[The 1] 최근 일련 무죄 판결들 어떻게 보셨나요. 무죄 판결은 어떻게 나온 건가요?

판사A: 받지 않은 전화의 벨소리와 부재중 전화 표시가 스토킹처벌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었어요. 스토킹처벌법은 스토킹행위를 “우편·전화·팩스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물건이나 글·말·부호·음향·그림·영상·화상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2조1항)라고 규정해요. 2021년 시행된 스토킹처벌법에 나오는 이 조항은 기존에 있던 정보통신망법 조항과 비슷해요.

이미 해당 문구에 관해선 대법원이 2005년에 판단을 내렸어요. 당시 대법원은 전화기 벨소리는 ‘전화기 자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법에서 금지한 ‘정보통신망을 통해 상대방에게 도달한 음향’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 기준을 세웠습니다. 최근 무죄 판결은 이 대법원 판례를 따른 것이구요.

저는 이런 무죄 판결들이 나오는 게 이해가 돼요. 물론 사람들에겐 입법 취지에 맞지 않아 보일 거란 생각은 들었어요. 무죄 판결을 내린 판사들도 ‘내 판결이 입법 취지에 맞다. 수신차단만 됐으면 부재중 전화가 50통이 아니라 500통 걸려왔어도 스토킹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판사가 입법 취지를 고려한다며 법조문 문구와 대법원 판결을 벗어나서 해석하긴 어려워요. 다른 판결이 가능할 수는 있는데, 무죄 판결 또한 합리적이긴 하다는 거죠.

[The 2] 정보통신망법과 스토킹처벌법의 입법 취지 자체가 다른데 다르게 판결해야 하지 않냐는 지적이 있더라고요.

판사A: 물론 입법 취지가 다르긴 해요. 과거 만들어진 정보통신망법은 전화를 걸어서 욕설을 한다거나, 음란한 말을 한다거나, 불법 채권 추심을 하는 걸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그런데 2021년 시행된 스토킹처벌법은 계속 집요하게 전화를 걸어오거나, 미행해서 집을 찾아오거나 하는 스토킹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을 새로 만든 거죠.

입법 취지가 다르니 똑같은 문구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판사가 입법 취지에 따라서 같은 문장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고 하면, 자의적 처벌이 가능해져요. 당장 법을 지켜야 하는 시민들은 자기가 하는 이 행동이 죄가 되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는 거예요. 특히나 형사처벌은 시민에게 가장 불리한 공적 처분이기 때문에, 우리 법체계가 판사들이 법률에 정해지지 않은 형벌은 내릴 수 없도록 형사법의 대원칙에 묶어두는 거죠.

[The 3] 그럼 결국 스토킹처벌법에 허점이 있다는 거네요?

판사A: 예, 지금 문제가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입법 과정에서 제대로 검토하지 않아서 법에 미비한 부분이 생겼기 때문이에요. 사전 입법 조사 과정이 부실했던 거죠. 2005년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로 이 부분에서 입법 공백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는데, 2021년에 제정된 스토킹처벌법에서도 보완되지 않았죠. 제대로 됐다면 스토킹처벌법을 만들 때 ‘전화를 거는 행위 등 기타 이에 준하는 끊임없는 접촉 시도’도 처벌 대상으로 넣을 수 있다는 식의 문구가 들어갔어야 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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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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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4] 올해 나온 판결 중에선 무죄 판단이 많았는데, 유죄 판단도 나왔어요.

판사A: 인천지방법원 형사18단독 김동희 판사의 11월16일 판결은 전화 벨소리나 남겨진 전화번호를 스토킹처벌법에서 새롭게 규정한 ‘전화’를 이용한 행위라고 본 거죠. ‘정보통신망’을 통한 스토킹이냐 아니냐를 판단했던 2005년 대법원 판례와는 다른 새로운 영역의 행위라는 거에요. 그렇다면 대법원의 판례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어요. 하급심에서 같은 행위에 대해 엇갈린 판결이 나오니 앞으로 대법원이 정리를 해야죠. 대법원이 전화 벨소리나 남겨진 전화번호를 김동희 판사처럼 ‘전화’를 통한 것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죄 판결처럼 ‘정보통신망’과 관련된 것으로 볼 것인지 판단할 것 같아요.

[The 5] 현장에서 판사들이 보는 스토킹처벌법의 문제점이 있을까요?

판사A: 스토킹처벌법이 많이 부실해요. 제가 스토킹처벌법에서 조만간 이슈가 되겠다고 느끼는 부분은 이 법이 어떤 목적에 따라 처벌을 하는 법이 아니라, 행위를 처벌한다는 점이에요. 우리가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피치 못하게 집요하게 연락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죠. 부당하게 임금을 못 받은 노동자가 고용주에게 지속해서 연락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유튜버들이 방송을 위해서 누군가를 쫓아다니는 행위는 어떨까요. 이런 경우들도 일단은 스토킹처벌법의 구성 요건에는 다 인정이 되니 처벌하는 게 맞을까요? 이는 앞으로 많은 판례가 쌓이면서 구체적인 내용이 형성되어야 하는 부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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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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