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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세상읽기] 저열한 말들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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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힘들다. 저 깊은 심경 속에 가라앉은 오니를 마구 헤집어 정신을 흙탕물처럼 뿌옇게 만드는 기분이다. 인간은 선악의 양면을 지녔으며 상황과 노력에 따라 진흙 위에 살면서도 탐스러운 연꽃을 피울 수 있는 존재이다.

경향신문

한윤정 전환연구자


그래서 선한 품성을 북돋는 좋은 사회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가 교육을 받고 시와 고전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 막말계의 대표 주자라면 북한의 김여정과 남한의 한동훈을 들어야 할 것이다. 두 사람은 남남북녀 막말배틀이라도 하나 싶을 정도로 거친 말을 쏟아낸다. 그들의 찰진 증오와 비판은 언어의 독화살로 상대를 쏘아 넘어뜨리고자 한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 독자제재 방침에 대해) “국민들은 윤석열 저 천치바보들이 들어앉아 자꾸만 위태로운 상황을 만들어가는 정권을 왜 그대로 보고만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문재인이 앉아 해먹을 때에는 적어도 서울이 우리의 과녁은 아니었다.”(김여정)

(청담동 술자리설이 거짓으로 드러나자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파도가 밀려나면 누가 바지 벗고 수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데, 이제 파도가 밀려났고 책임질 시간이다. 저에게 사과하는 게 모양 빠져서 싫으시면 국민들께라도 사과하시기 바란다.”(한동훈)

정치인으로서 상대방을 대하는 두 사람의 자질을 의심할 만한 수준이다. 두려운 개가 많이 짖는다고 했던가. 오빠 덕분에, 선배 덕분에 별다른 준비 없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 던지는 설익은 언어다.

그런데 더 듣기 힘든 것은 관록 있는 정치인 나경원의 말이다. 우아한 태도로 포장됐지만 개인의 정치적 욕망만 담겼을 뿐 시대정신과 상식에서 벗어나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겸 기후환경대사를 맡고 있는 그는 국회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저출산위 부위원장직)를 줘도 당 대표 안 나간다고 안 해서 두 개(기후대사)를 줬다는 말이 있다. 그게 아니라 사실은 두 개를 같이하라고 했는데 (임명장을) 뒤에 받은 것이다.”

인구와 기후라는 중대한 문제는 순식간에 우는 아이를 달래주는 알사탕이 됐다. 어떻게 받았든 일만 잘하면 될 터이지만 인구와 기후에 대한 인식 역시 그 자리에 걸맞지 않다.

“<나 혼자 산다>는 저출산 극복에 도움이 안 된다고 했더니, 기사가 나왔는데 MBC(프로그램)인 줄은 몰랐다. <고딩엄빠>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게 좋은 프로그램이다. 저출산 정책은 좀 그런 쪽으로 가야 된다.”

인구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세계 인구는 1950년 25억명에서 최근 80억명까지 늘었으며 2086년 104억명으로 정점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다. 현재 인구로도 지구 용량에 비해 과부하 상태(세계 평균 1.75배, 한국 4배)여서 늘리는 게 최선은 아니다. 국내적으로는 경제구조 변동, 지방소멸 등 문제가 있으나 관계인구(다양한 방식으로 지역과 관계를 맺고 교류하는 인구), 귀농·귀촌 등 다양한 해법이 나오고 있다. 더구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출생률을 좌지우지할 만큼 젊은 세대는 어리석지 않다. 청소년의 인권과 미래가 달린 ‘고딩엄빠’를 저출생 극복의 맥락에 동원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기후대사 나경원의 인식 역시 석연치 않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에 조금 사고를 치고 퇴임했다. 별다른 계산, 계획도 없이 2030년까지 무조건 2018년 대비 탄소 40%를 감축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가신 것이다. 다행히 우리 (윤석열) 대통령이 국제사회에서 한 약속이니 지키겠다고 했다. 범정부적으로 40%를 맞추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사고 친 사람과 해결하는 사람의 구도가 유치할 뿐 아니라 팩트도 틀리다. 문재인 정부가 결정한 ‘2030년 40% 감축’은 현재 기후위기와 한국의 위상으로 볼 때 불가피한 선택이며 감원전, 신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감축계획을 세웠다. 이것을 현 정부가 친원전으로 뒤집은 것이다.

정치인들의 막말은 지지자들의 막말로 확대 재생산된다. 머리가 움직이면 꼬리가 요동치는 것과 같다. 어느 정권의 잘못이랄 것도 없이 정치적 지지층 사이의 분열, 대립, 증오가 심해져왔지만 10·29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막말로 정점을 찍는 것 아닌가 싶다.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지는 정쟁의 영역으로 남겨두자. 그렇더라도 최소한 희생자에 대한 예의는 필요하다. “왜 갔느냐”로 시작해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막말까지 한계를 훌쩍 넘는다. 피도 눈물도 없다. 정치에 의해 더러워진 입들….

한윤정 전환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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