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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이슈 유럽연합과 나토

EU, 러시아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제재 없어 '맹탕' 논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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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의·후속조치 없어 '선언적 의미' 한계
추가 조치 마중물 의미도... 러시아, 즉각 반발
한국일보

유럽연합(EU) 의회가 러시아를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했다. 사진은 EU 의회 70주년 기념 행사가 22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EU 의회 건물에서 열리고 있는 모습. 스트라스부르그=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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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의회가 23일(현지시간) 러시아를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상대로 고의적·반복적으로 잔혹한 공격을 하고 △민간 기반시설을 파괴하며 △국제법 위반 및 인권 침해가 심각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의회 결정이 러시아에 '당장' 피해를 주는 건 아니다. EU 차원의 법적인 틀이 갖춰진 상태에서 테러 지원국 지정이 이뤄진 게 아니라서 뒤따라오는 후속 제재 조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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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에서 열린 집단안보조약기구 확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예레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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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관련법 없이 지정한 '테러 지원국'


EU 의회는 러시아를 '테러 지원국'(a state sponsor of terrorism) 또는 '테러수단을 사용하는 국가'(a state that uses means of terrorism)라고 표현했다. '테러 행위를 반복적·적극적으로 지원한 국가'라는 뜻이다. 미국도 이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미국과 달리 EU의 테러 지원국 지정은 법적 근거가 불분명하다. 미국은 관련법이 있고 이에 따라 '특정 국가 전체'를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하고 강력한 제재를 할 수도 있다. 북한, 이란, 쿠바, 시리아 등이 여기에 속한다.

EU의 경우, 2001년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를 계기로 '테러리스트 목록'을 만들고 주기적으로 갱신하고 있지만, 이는 특정 국가가 아닌 개인이나 조직을 대상으로 한다. EU 의회가 "러시아를 테러 지원국으로 인정한다"고 밝히면서 동시에 "현재로서는 '공식적으로' 테러 지원국을 지정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모순된 입장을 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② 이해관계 따라 조절된 수위


테러 지원국이 무엇인지에 대한 법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원포인트 테러 지원국' 논의를 하다 보니, 러시아와의 관계 등 국가별 이해관계에 따라 결의안 수위가 조절될 여지도 컸다. 불가리아 언론 노브이니테에 따르면, EU 내 보수정당 '유럽 보수와 개혁'(ECR)은 "러시아를 '테러 지원국'이 아닌 '테러 국가'로 지정하자"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이름도 테러리스트 명단에 넣지 못했다.

러시아의 정당들을 기존에 존재하는 EU 테러리스트 명단에 포함시키자는 대안도 거론됐지만, 이 역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 목록을 갱신하는 데도 27개 회원국 전체 동의가 필요해 타결이 쉽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③ 연계되는 후속조치 미비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해도 자동으로 연계되는 후속 제재 조치가 없다. 미국에서 테러 지원국 지정은 해당 국가에 대한 방산 수출 금지, 대외 원조 제한 등의 실질적인 제재로 이어진다. 이에 결의안에 '유럽 및 서방 국가에 동결된 러시아 국가 자산을 우크라이나 배상 자금으로 사용하도록 하자'는 내용을 넣자는 아이디어도 초안 작업 과정에서 거론됐다고 핀란드 언론 랜시 사보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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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 국기. 런던=AP·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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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의회 "그래도 중요"… 러시아 즉각 '반발'


의회도 결의안의 한계를 안다. 이에 "EU와 회원국들은 적절한 법적 틀을 마련하고, 여기에 러시아를 추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럼에도 의회는 이러한 결의안이 향후 더 강한 조치를 만드는 마중물이 된다고 보고, 의미를 두고 있다. 의회는 "유엔 등 국제기구 회원 자격 박탈, 외교 축소, 추가 제재 확정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재 조치가 없는 상징적인 결의안이지만 러시아는 즉각 반발했다. 마리아 자카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나는 EU 의회를 '멍청함의 후원자'로 지정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EU 의회 사이트는 결의안 채택 직후 사이버 공격을 받아 마비됐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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