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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트리거] "다이아 반지 끼고 때려"…전두환 정권 '입양 사업'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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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최/미국 입양인 : 어디서 학대가 이뤄졌냐고요? 어디에서든요. 손이든, 주먹이든, 가까이 있는 어떤 걸로도 때렸습니다.]

[루이스/덴마크 입양인 : 40년 동안 저는 거짓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거짓이었어요. 입양 절차를 위해 만들어진 거짓말이었습니다.]

[피터 뮐러/덴마크 입양인단체 대표 : 이건 복수를 위한 싸움이 아닙니다. 이건 자신의 진짜 정체성에 관한 진실을 찾는 일입니다. 나는 내가 몇 살인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앵커]

성희영, 김인애, 장목화 이들은 80년대에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입니다. 당시,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열 명도 넘는 아이들이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40여 년 만에 돌아왔는데, 충격적인 증언들이 쏟아졌습니다. 무차별적인 해외 입양 과정에서 인권 침해가 있었다면서 우리 정부의 공식 조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20일) 트리거는 정말 국가의 책임이 없는지 쫓아가봤습니다.

이호진 기자입니다.

[기자]

< '지옥'으로 보내진 아이들 >

[시몬 최/1975년 미국 입양 : 나는 매우 작은 아이였습니다, 그녀는 나를 매우 강하게, 쓰러질 정도로 때렸어요. 코피가 날 정도로도 때렸고, 다이아몬드 반지를 낀 상태에서 때리기도 했어요. (나에게) 너는 못생겼어, 너의 엄마는 몸을 파는 사람이었어 (라고 하기도 했어요.) (양모는 처음엔 입양 심사에서 떨어졌지만) 미국의 사설 입양기관이 추천서를 써줬고, 그뒤 홀트는 나를 입양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앙카 방데르베겐/1988년 벨기에 입양 : 그녀는 나를 싫어하기 시작했고, 그건 신체적 학대로 이어졌습니다. 논리적인 이유는 없었어요. 양모는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었습니다.]

[노혜련/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현지에서 적격 검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더라고요. 그래서 입양을 해서는 안 될 사람들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들도 많아요.]

< 조작된 서류로 '버려진' 아이들 >

[에바 틴드/1975년 덴마크 입양 : 내 (영어) 서류 상으로 나는 고아원에 있었습니다. 나는 공원에서 발견돼, 고아원으로 보내졌다고 돼 있었습니다.]

한국 입양기관에서 발견한 자신의 서류는 달랐습니다.

형편이 어려웠던 부모가 입양기관에 직접 맡겼고, 고아원엔 입소한 적도 없었던 겁니다.

[루이스 광/1976년 덴마크 입양 : 나는 고아원에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부산에 가지도 않았습니다. 이건 모두 입양 절차를 위한 거짓말이었습니다.]

입양국에 들어간 서류는 대부분 '버려진 아이'로 조작돼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모 동의로 아이를 입양 보낼 수 있었는데, 입양국은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아예 '버려진 아이'로 만들었던 겁니다.

<군사정권 '외화벌이' 해외입양>

무차별 해외 입양이 본격화된 건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입니다.

1981년 2월 2일 전두환 씨와 미국 레이건 대통령 정상회담이 열립니다.

[고 전두환 씨 : 각하께서 본인 내외를 백악관에 초청하신 것은 본인은 물론 우리 국가의 영광입니다.]

보름여 뒤 국무회의엔 '대외비' 보고가 올라옵니다.

1985년에 종료될 해외입양을 민간 자율에 맡겨, 제한없이 연장하겠다는 겁니다.

여기엔 우방국의 지속적인 요청이 있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신필식/여성학 박사 (해외입양 연구자) : 당시 보사부 장관인 천명기 장관이 (지시 없이) 임의로 정책을 추진하거나 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아주 어렵지 않았을까.]

다섯달 뒤 국내 최대 입양기관인 홀트엔 신군부 인사 수십 명이 들어왔습니다.

[홀트 전 관계자 : 별만 4개가 왔어요. 아무튼 온 사람들이 보니까 다 중앙정보부에…]

이들이 장악한 입양기관에선 아이들에게 '가짜 호적'을 만들어주고, 정부는 해외 입양을 허가해 줬습니다.

아이들이 입양을 기다리며 머물던 보육시설에서도 학대는 비일비재했습니다.

성적 학대가 반복됐지만,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습니다.

[앙카 방데르베겐 : (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 최소 세 차례 이상 일어났습니다. 어쩌면 나 스스로 그에 대한 기억을 막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980년대 입양아를 가장 많이 보낸 홀트 회장을 맡았던 김씨는 신군부 세력이 주축이었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출신입니다.

[김모 씨/전 홀트 회장 : 자기들이 하는 이야기지. 갈 때는, 우리나라 사람이 애 내보내고 보내고 할 때 그렇게 안 돼. 밥 잘 먹으니까 찾아오고 그렇겠지]

80년대 입양아동 수는 한 해 8천여 명까지 치솟았습니다.

[전 홀트 관계자 : (입양아동 수가 항아리처럼) 불룩한 게 그게 000 회장 시절이에요. 10년.]

(화면출처 :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 유튜브)

(VJ : 장지훈·김민재·최준호 / 영상그래픽 : 김정은 / 인턴기자 : 나한아)

이호진 기자 , 원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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