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8 (목)

[단독]‘억’ 소리 나는 경찰의 시민 상대 손해배상소송···30건 청구내역 살펴보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회원 등이 2019년 6월2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손해배상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찰이 집회·시위나 노동쟁의 현장에서 손해를 입었다며 집회 주최측이나 노조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건수가 2006년 이후 30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16억원이 넘는 배상금을 청구한 2009년 쌍용차 점거 농성을 비롯해 등 1억원이 넘는 돈을 배상해달라고 한 사건도 5건에 달했다.

파업 노동자를 옥죄는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 남발을 막기 위한 ‘노란봉투법’ 입법 움직임은 상당 정도로 구체화된 상태인데, 집회·시위를 관리하는 경찰의 ‘봉쇄적 손배소’에 대해서도 제도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이 2006년부터 2022년까지 집회·시위나 노동분쟁 현장에서 발생한 손해에 대해 경찰이 손배소 소송을 제기한 사건은 총 30건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5건·2007년 9건, 이명박 정부였던 2008년 1건·2009년 3건·2010년 2건·2011년 3건,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2건·2015년 3건·2016년 1건·2017년 1건이 집계됐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이후 집회 등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례는 없었다.

경찰이 제기한 손배소 사건은 대부분 시민사회단체의 대규모 집회나 사측과 분쟁을 겪고 있는 노조의 집회에 집중됐다. 노조 집회 및 노동자 대회(19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4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민중총궐기, 용산철거민 추모집회 등이 소송 대상이었다. 보수단체의 집회가 청구 원인이 된 사건은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 1건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청구액이 억 단위인 사례는 2007년 광우병 촛불집회 5억1709만원, 2009년 화물연대 대전집회 4억9292만원, 2009년 쌍용차 점거 농성 16억6900만원, 2011년 유성기업 집회 1억1572만원,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 3억8667만원 등 5건이었다.

경향신문

집회시위 및 노동분쟁 현장 대응 관련 경찰청 손배 청구액 상위 5개 사건. 용혜인 의원실 제공자료 재가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찰청 등에 따르면 쌍용차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액은 경찰 헬기·기중기 등 고가 장비의 피해에 대한 수리비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경찰은 장비 수리에 실제 필요한 비용에 더해 수리 기간 장비 운영을 하지 못해 입은 손실 5억7000만원도 추가해 청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경찰은 경찰관·의경 부상자 치료비 등도 청구액에 포함했지만 상고심에선 이 금액이 빠졌다. 청구액이 두 번째로 큰 광우병 촛불집회 건은 원고 패소 판결로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쌍용차 손배소 사건을 대리하는 서범진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쌍용차 사태에 있어 헬기 및 기중기 투입이 국가폭력 행위였다는 국가인권위원회와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판단이 있었다”면서 “그럼에도 고가 장비의 수리비 청구를 고집하는 것은 가해자가 흉기 손상을 이유로 피해자에게 배상해달라는 요구와 다를 바가 없다”고 했다.

확정 판결이 나오지 않은 쌍용차 사례를 제외한 29건을 기준으로 경찰의 손배 청구액 대비 실제 배상액은 20%로 집계됐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4일 발표한 파업 노조·노조원에 대한 기업·국가·제3자의 손배소 현황에 따르면 2009년부터 올해 8월까지 73건의 소송에서 판결이 끝난 인용 사건 49건의 청구액 인용률은 58.4%이었다. 경찰의 집회 등에 대한 손배소의 청구액 인용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셈인데, 이는 그만큼 청구액이 과다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손배 청구액 대비 인용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사건별 사유가 다 다르기 때문에 한데 묶어 과잉 청구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2018년부터 경찰의 직접적인 손배소 제기는 없는 상태지만 과거 제기한 소송에 대한 법원 조정에 경찰이 소극적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랑희 경찰개혁네트워크 활동가는 “경찰개혁위원회가 2018년 5월 손배소 남발을 자제하라는 권고를 내놓으면서 손배 청구가 새롭게 등장하지는 않았다”면서도 “쌍용차 사례에서 보이는 모습 등을 비춰보면 경찰의 집회·시위에 대한 손배 청구는 정치·사회적 환경에 따라 언제든 다시 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용혜인 의원은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 행사 과정에서 일어난 손해에 대해 형사 대응과 별개로 손배소 등 민사로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 백래시의 소음에서 ‘반 걸음’ 여성들의 이야기 공간
▶ ‘눈에 띄는 경제’와 함께 경제 상식을 레벨 업 해보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