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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사설] 석 달 만에 끝나는 이준석 사태가 與에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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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지난 9월 28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헌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 사건 심문을 마친 뒤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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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낸 비상대책위원회 직무 정지 및 당헌 개정 무효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에 따라 정진석 비대위 체제가 효력을 인정받고 이 전 대표는 당헌에 따라 대표직을 자동 상실했다. 지난 7월 당 윤리위의 이 전 대표 징계 처분 이후 이어진 여당 내분 사태가 석 달 만에야 정리 수순에 들어갔다.

국민의힘은 대선과 지방선거를 연달아 이기고도 오히려 집안싸움에 빠졌다. 국민 지지를 바탕으로 강력한 국정 정상화와 개혁에 매진해야 할 집권 초기를 이해할 수 없는 내분으로 허송세월했다. 내분은 초유의 지도부 실종 사태로까지 악화됐다. 새 정부 출범 두 달 만에 여당 대표가 징계를 받고 밀려나고 그 대표가 당을 상대로 법정 공방까지 벌인 것은 우리 정당사에 없던 일이다. 이 전 대표와 친윤계 핵심들이 막말을 주고받으며 싸우는 것이 일상이 됐다. 국민은 혀를 찼다.

‘내부 총질이나 하는 당 대표’라는 대통령 문자 메시지가 공개돼 불에 기름을 부었다. 이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을 “양두구육” “신군부”라고 직접 공격했고, 친윤계엔 “눈이 돌아간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자신이 몸담았던 당을 향해서도 “불태워 버려야 한다”고 했다. 신선한 청년 정치에 대한 기대가 환멸로 바뀌었다. 이 와중에 원내대표를 비롯한 친윤 핵심들은 각종 실책과 말실수, 구설에 휘말려 물러났다. 경제·안보 위기 속에 집권 여당이 몇 달 동안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 채 막장 싸움만 벌이니 국민들이 이런 정부에 등을 돌린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정진석 비대위는 조속히 내부 혼란을 수습하고 국정을 뒷받침하는 책임 있는 여당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경제 위기 쓰나미가 닥치면서 국민들은 지금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북한의 잇단 핵·미사일 도발과 우크라이나전 확전으로 인해 안보 위기도 고조되고 있다. 국회를 장악한 야당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 정부의 정책 거의 전부에 시비를 걸며 흠집 내는 일밖에 하지 않고 있다. 최악의 발목 잡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당이라도 민심을 살피고 야당을 설득해 주도적으로 국정을 추진하지 않으면 위기를 넘어설 수 없다.

이준석 사태는 정치에서 인내와 절제, 타협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일깨워준다. 정치엔 완승, 완패가 없다. 상대를 없애버릴 수 없고, 설사 그런다고 해도 그 역풍은 반드시 불어오게 돼 있다. 어쩐 일인지 선거에 연승한 집권 여당 안에서 이 정치의 기본이 실종되면서 대통령이 취임 몇 달 만에 ‘레임덕’이 아닌 ‘취임덕’에 빠졌다는 개탄까지 나왔다.

국민의힘이 초반의 실패를 만회할 시간은 있다. 문제는 이들이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느냐이다. 그것은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알고 반성하느냐에 달렸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오만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위기가 찾아오게 될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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