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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검수완박법 무효 결정, 헌법재판관 정족수는 5명인가 6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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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의 뉴스 읽기] 검수완박법 무효 판단 쟁점은

법무부, 권한쟁의로 法무효 청구

법무효 결정은 위헌과 같은 효과

권한쟁의 정족수 5명, 위헌은 6명

”5명이면 무효가능””6명 돼야” 논란

전례 없어 법 무효 가능한지도 쟁점

2차례 공개변론, 심리 더 길어질 듯

국민의힘 의원들과 법무부가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는 ‘검수완박법’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게 각각 지난 4월 29일, 6월 27일이다. 민주당이 법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위장 탈당’ 등 각종 절차 위법을 저질렀으니 법을 무효로 해달라는 것이다. 헌재는 지난 7월 12일(국민의힘 청구건)과 9월 27일(법무부 청구건) 두 차례 공개 변론을 열었다. 법안 통과 과정은 다 공개돼 오래 심리할 것도 없다. 그런데 헌재는 언제 선고할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올해를 넘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왜 그런 것일까. 이 사건엔 헌재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몇 가지 법률적 쟁점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위장 탈당’ 등 절차 위법은 명백

민주당은 지난 대선 전 ‘정권 방탄’을 위한 이 법을 통과시키려고 온갖 편법과 꼼수를 동원했다. 법사위 통과를 위해 민형배 의원을 위장 탈당시켜 안건조정위에 넣은 게 대표적이다. 안건조정위는 여야 동수로 구성되는데, 무소속으로 신분이 바뀐 민 의원이 야당 몫 위원이 되면서 안건조정위 실질적 구성이 여야 3대3에서 4대2로 바뀐 것이다. 그 뒤 안건 논의도 없이 각각 8분, 17분 만에 관련 법안을 처리했다. 최장 90일간의 숙의 기간을 보장한 국회법 취지를 어긴 것이다. 국민의힘 측이 낸 권한쟁의는 이런 절차 위법으로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침해당했으니 법률을 무효로 해달라”는 것이고, 법무부와 검사들이 청구한 것은 절차 위법과 함께 이 법이 헌법과 법률에 부여된 검사의 수사 소추권을 침해했으니 무효로 해달라는 것이다. 큰 틀에서 국민의힘은 법안 통과 과정의 절차, 법무부는 법률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서 쟁점이 되는 부분은 국민의힘과 법무부가 권한쟁의를 통해 사실상 위헌의 효과를 내는 ‘법률 무효’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권한쟁의심판은 기본적으로 국가기관 간 혹은 국가기관과 지자체 사이의 권한 다툼을 해결하는 절차다. 주로 행정 처분이 대상이 될 때가 많다. 예컨대 행안부 장관이 경기도에 개발행위 허가를 명령했을 때 경기도가 “그건 지자체 권한”이라며 심판을 청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권한을 침해당했으니 법률을 무효로 해달라는 부분까지 나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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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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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게 가능한지에 대한 정립된 이론이 없다는 데 있다. 권한쟁의를 규정한 것은 헌법재판소법 66조다. 1항은 ‘심판 대상이 된 국가기관 또는 지자체 권한의 존부 또는 범위에 관해 판단한다’고 돼 있고, 2항은 ‘헌재는 권한침해 원인이 된 처분을 취소하거나 그 무효를 확인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무효 여부에 대해선 ‘무효를 확인할 수 있다’며 헌재에 재량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행정처분 등은 무효로 할 수 있지만, 절차 하자가 있는 법률을 권한쟁의심판에서 무효로 할 수 있느냐에 대해선 확립된 판례나 이론이 없다.

헌재가 무효로 할 수 있다고 판단해도 무효 결정의 정족수 문제가 남는다. 이번 사건에서처럼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법률을 무효로 하면 사실상 위헌 결정을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기 때문이다. 법률에 대한 위헌 결정 정족수는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이다. 하지만 권한쟁의심판 정족수는 5명이다. 5명의 찬성으로 위헌의 효과를 내는 법률 무효를 결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헌재 관계자는 “이 부분도 아직 정립된 이론이 없다”고 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률 무효까지 하려면 6명 이상은 돼야 한다”고 했고,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도 같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한 전직 헌법재판관은 “법 문언대로만 보면 5명이면 가능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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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판례 “절차 하자 있지만 법은 유효”

그간 헌재가 권한쟁의심판에서 법률의 무효 여부를 심리한 적은 있지만 실제 무효까지 나아간 사례도 없다. 1997년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이 노동관계법 등을 ‘날치기’ 통과시킨 것에 반발해 야당 의원들이 제기한 권한쟁의심판에선 심의·표결권이 침해된 것을 인정했지만 “가결 선포 행위 자체는 무효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2009년 신문법과 방송법 등 이른바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 불거진 대리투표 등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고 인정했지만 법안을 무효로 하지는 않았다. 절차상 하자가 법률을 무효로 할 정도는 아니라는 취지였다.

신문법에 대해 절차상 하자를 인정한 재판관 4명도 “(무효 여부는) 헌재 판단의 영역이 아니라 국회 자율권에 맡길 일”이라거나 “경미한 하자여서 법을 무효로 할 수 없다”고 했다. 방송법의 절차상 하자를 인정한 4명의 재판관들도 비슷한 이유를 들어 법은 유효라고 했다. 여기엔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헌재가 국회 입법권에까지 관여할 경우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당시 이강국 헌재소장은 퇴임 인터뷰에서 “국민들로부터 ‘왜 오프사이드인데 골이라고 하느냐’는 질책을 들었지만 헌법상 법익인 국회의 자율성을 중요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절차 위법 심각, 다른 판단 나올 수도”

하지만 이번 사건에선 절차 위법이 심각해 이전과는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장영수 교수는 “미디어법에선 대리투표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이번엔 위장 탈당 등으로 안건조정위를 무력화해 결론에 영향을 줬기 때문에 절차 위법이 심각하다”며 “이런 법을 무효로 하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한 법을 위헌으로 하지 못하는 입법 공백 상태가 생긴다”고 했다. 이를 무효로 하지 못하면 앞으로 국회에 그런 행위를 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주는 것인데 그걸 국민이 납득하겠느냐는 것이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도 “입법 절차상 하자가 중대하고 내용 면에서 문제가 있다면 무효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절차 위법이 법을 무효로 할 정도로 심각했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헌재 구성도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 헌법재판관 9명 중 8명은 문재인 정권에서 임명됐다. 이 중 5명이 민변, 우리법연구회 출신 등 진보 성향이다. 이 때문에 검수완박법을 무효로 하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도 있다. 하지만 미디어법 사건 때 진보 성향인 송두환, 조대현 재판관은 법에 절차상 하자가 있어 무효로 해야 한다는 취지의 소수 의견을 냈다.

[검수완박법 위헌 여부, 왜 쟁점 많은 권한쟁의로 다투나]

위헌청구는 기본권 침해 전제돼야… 국힘·법무부는 기본권 주장 못해

국민의힘 의원들과 법무부는 권한쟁의심판을 통해 사실상 검수완박법의 위헌 여부를 다투고 있다. 왜 이렇게 법률적 쟁점과 논란이 많은 방식을 택한 걸까.

헌법재판소 권한은 위헌법률심판과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등 크게 다섯 가지다. 그중 법률의 위헌 여부를 다툴 수 있는 것은 위헌법률심판과 헌법소원 두 가지다. 위헌법률심판은 법원에서 재판 중인 사건에서 그 사건에 적용되는 법률이 위헌인지 아닌지가 문제가 됐을 때 법원이 직권으로 혹은 소송 당사자 신청을 받아들여 헌재에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고 청구하는 것이다.

헌법소원은 공권력 남용 등으로 국민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당했을 때 이를 구제해달라고 청구하는 것이다. 법률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려면 재판이 안 걸려 있어도 직접성 요건이 있으면 된다. 예컨대 종부세 법안이 통과돼 자기 재산권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즉 재판이 걸려 있거나 기본권 침해가 있을 때 해당 법률의 위헌 여부를 다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이나 국가기관인 법무부는 그런 기본권 침해를 주장할 수 없고 재판이 전제가 된 사건도 없기 때문에 국가기관 상호 간의 분쟁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권한쟁의심판을 통해 위헌 여부를 다투려 하는 것이다. 일종의 고육책이다. 반면 독일에는 어떤 법률이 통과됐을 때 의회의 일정 세력이 그 법률의 내용과 절차가 위헌인지 아닌지를 헌재에 묻는 제도가 있다. 이를 ‘추상적 규범 통제’라고 한다. 독일에선 이 제도가 정치적 평화를 이루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원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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