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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이 실패한 이유... 그가 외면한 진실 [소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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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코리아] 산업화·민주화 대신할 새로운 세계관 없이 감정풀이 그쳐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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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6월 11일 국민의힘 이준석 신임 당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제1차 전당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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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은 그야말로 '이준석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서울 시장 재보궐 선거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주가를 올린 이준석은 얼마 안 가 30대 최초로 제1야당의 당대표라는 위치에 올라섰다.

그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청년 정치인이라는 정체성과 이미지를 통해 이제는 보수 정당이 더 진취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고, 청년층은 전통적으로 진보 진영을 지지한다는 통념에 균열을 냈다. 한편으로 그는 여전히 자신을 못마땅히 여기는 국민의힘 내부에서 투쟁하고, 진보 진영과 설전을 벌이면서 좋든 싫든 2022년 대통령 선거의 핵심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정권이 교체되어 윤석열 정부가 탄생했다.

하지만 '이준석의 시간'은 정권이 바뀌었다고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제 여당이 된 국민의힘 내부에서 이준석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공세가 이어졌다. 이준석 대표의 거취와 향방을 놓고 이어지는 갈등은 국민의힘 지지층 내부에서 세대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이준석의 당대표 당선과 그가 보여준 이후 행보는 한국 사회에서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를 세대교체의 상징으로서 추켜세우는 이들도 있었으며, 반대로 기성세대에 유난히 공격적인 이준석의 성향과 그에 열광하는 청년 남성층을 보면서 격화되는 세대 갈등을 우려하는 이들도 있었다. 좌파 진영에서는 그가 내세우는 '능력주의'나 '공정' 담론이 퇴행적이며, 한국이 처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줄 대안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논의만 무성한 가운데 이준석 인물 자체의 위상이 위기를 맞이하게 되면서, 작년과 올해를 달궜던 이준석 논쟁은 별다른 진전이나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잊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준석 신드롬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질 한 편의 해프닝이었을까, 아니면 시대적 전환을 상징하는 중요한 이정표였을까?

온라인 엔터테인먼트의 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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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2월 4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이준석 당대표와 갈등을 봉합하고 부산에서 공개 거리 인사에 나섰다. 젊은 세대를 공략하겠다며 부산 도심의 번화가를 찾은 것이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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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준석 현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더 넓은 시야를 갖추는 일이다. 많은 논자가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세대 적체 문제 및 세대 갈등을 중심에 놓고 30대 당대표 이준석의 중요성을 이야기했고, 그의 전투적인 성향을 새로운 문법의 등장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하지만 현상 자체로만 보면 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세대교체는 원래 격렬한 갈등을 그 특징으로 하며, 인류 역사에서 늘 있어 온 일이었다. 시대가 바뀌어 사회적 열망이 달라졌으나 여전히 과거의 세계관에 입각하여 행동하는 이들을 투쟁을 통해 몰아내는 것이 세대교체의 요체다. 교체를 요구하는 이들은 본래 전투적이고 공격적일 수밖에 없고, 현 체제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그럴수록 더욱 큰 지지를 보내기 마련이다.

'MZ세대'와 '꼰대'처럼 2022년의 맥락에서나 쓰이는 말들이 무성하지만, 5.16쿠데타를 일으키고 그 시대의 기성세대를 몰아냈던 30대의 김종필이 MZ세대였을 리는 없고, 비슷한 나이에 러시아 제국을 무너뜨렸던 볼셰비키 혁명가들이 러시아 제국의 귀족들을 보고 '꼰대'라고 했을 리도 없다. 그저 그들은 새로운 시대를 먼저 읽고 과거에 허우적대는 이들을 공격하여 권력을 급진적으로 쟁취한 이들인 것이다.

따라서 이준석 현상을 논할 때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이준석이 누구인지가 아니라 왜 사람들이 그런 공격적인 행보에 환호를 보낼 정도로 현 체제를 불신하고 있는지다. 여기서 답은 명확하다. 한국의 주요 양당이 내건 세계관, 즉 안보와 경제 성장을 중점에 두는 '산업화 세계관'과 분배 정의와 평등을 추구하는 '민주화 세계관' 어느 것도 사람들이 느끼는 불만을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탄핵과 2018년 소득주도성장의 실패와 2019년 조국 사태는 양측의 서사와 관점이 세계의 실제 모습을 설명해주기에는 너무 괴리가 있다는 게 드러난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렇게 '서사의 공백'이 발생한 상황이라면 일단은 기존의 세계관이 아닌 그 어떤 것이라도 한 번 탄력만 받는다면 빠르게 영향력을 획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준석 현상은 세대교체의 일반론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례 가운데 하나 정도의 의미만 있는 것일까? 과거와 구체적 양상이 다를 뿐이지 기본적인 구도는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드러나는 양상의 차이는 분명히 구분되며, 사실 이 양상의 차이야말로 사람들이 이준석에 열광하거나 경계심을 품었던 주된 이유였다.

그가 정치적 의견을 표출하고 지지를 얻는 방식은 현대 한국의 청년 남성층의 불만을 아주 빠른 속도감으로 대리 해소해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본질적으로 이준석 현상은 작금의 청년 세대의 일상을 지배하는 주요 활동, 온라인 엔터테인먼트의 연장선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화를 통한 불평등의 확대, 개인의 노력으로 격차를 좁히고 성취감을 얻기 어려워진 저성장 국면,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확산으로 겪게 된 여러 심리적 위기로 인해 청년층은 다양한 방식의 대리만족 활동에 뛰어들게 되었다. 게임, 스포츠, 대중문화가 대표적인 영역이었고, 각 주제를 담은 온라인 커뮤니티는 유사한 관심사를 공유하는 이들끼리의 공동체가 되었다.

기존 세계관 폐기처분한 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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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6월 1일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들이 서울 중구 MBN 스튜디오에서 열린 당 대표 후보 토론회에 앞서 방송 준비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준석, 주호영, 조경태, 홍문표, 나경원 후보.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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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기성세대가 포착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자신들만의 서사를 만들어 나갔고, 기존의 사회적 관념이 변화한 세상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온라인 공간에서 어떤 식으로 집단 간 투쟁을 이끌어야 하는지 방법론을 학습했다. 요컨대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위한 훈련장이 된 온라인에서 시작된 흐름이 정치적 영역으로 옮겨붙은 것이 이준석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준석은 당대표 선거 토론회에 나왔을 때 마치 인터넷 방송의 방송인과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인터넷 방송은 팬덤 정체성의 형성과 그에 입각한 집단행동과 투쟁이 작동하는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 영역이다.

토론회 시청자들은 이준석이 나경원, 주호영 등 기성 정치인에게 '한 방 먹였을 때' 채팅창에 번개와 같은 채팅을 쏟아내면서 집단적 쾌감을 경험했고, 인상적인 하이라이트를 자발적으로 편집하여 밈으로 만들고 커뮤니티에 확산시켰다.

이같은 확산 과정 또한 인터넷 방송의 문법과 완전히 일치한다. 익숙한 방법론을 정치라는 새로운 영역에 적용하며 많은 청년 남성층은 이준석이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해주는 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준석을 지지하는 자신들의 그룹, 즉 팬덤 또한 자신의 중요한 정체성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이준석이 기성 정치권에서 별다른 기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력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런 팬덤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팬덤이 순식간에 형성되어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요인은, 대중문화 영역에서 이미 청년층이 집단행동을 훈련하면서 역량을 축적해왔기 때문이다. 그 힘을 정치로 투사할 수 있는 통로만 열어주면 되었던 것이고, 이준석은 그 통로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 이후에 이준석 현상은 빠르게 동력을 상실했다. 핵심적인 문제는 양당의 산업화와 민주화 세계관이 시효를 다한 상황에서 이준석이나 그 지지층이 새롭고 대안적인 세계관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는 많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이슈에 대응하고 당장의 감정을 푸는 수준에 그쳤다.

새로운 세계관과 그에 입각한 일관된 대안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단순히 기존의 세계관을 폐기처분하고 세대교체를 이루자는 그의 구호는 추가적인 동력을 만들 수 없었다. 오히려 자신들을 향한 이준석의 적대적 태도를 인식한 기성 정치인들의 반감만을 샀을 따름이다.

이러한 반감은 성상납 논란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갈등으로 이어졌다. 정권이 교체된 상황에서 안티테제로는 동력을 만들어내기가 점차 어려워졌고, 자연스럽게 이준석의 정치적 패배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의 지지층에서도 이준석에게 새로운 문제의식을 만들어낼 자원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대선 같은 거대한 정치적 변곡점이 사라진 시점에서는 확장성을 가질 수도 없었다.

따라서 이준석, 혹은 '이준석 이후'를 꿈꾸는 다른 누군가가 있다면, 현재 한국, 나아가 세계가 거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음을 먼저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산업화나 민주화는 20세기 중후반의 시대적 맥락에서 등장한 세계관이었다. 2022년에도 그 세계관이 계속 문제없이 작동한다면 그게 신기한 일일 것이다. 이준석을 향한 열렬한 지지는 이제 더는 산업화나 민주화가 아니라, 지금의 시대에 맞는 지금의 서사와 대안을 갖고 오라는 강력한 요청이었다.

기성 정치인들 시대변화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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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28일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헌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 사건 심문을 마친 뒤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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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남성층이 이 움직임의 중심이 되었던 이유는, 그들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된 좌우 세계관의 정치적 파산을 통해 깊은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준석은 그들의 강한 감정적 힘을 그들에게 익숙한 온라인 엔터테인먼트의 문법을 통해 풀어줄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정치인이었다.

물론 그는 앞서 이야기하였듯 새로운 시대를 위한 종합적 서사와 세계관을 지닌 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선 국면에서 세대교체에 걸맞은 이미지라도 만들어낸 정치인은 이준석 단 하나였다.

이 사실은 한국 정치의 다른 나머지 행위자들의 상황은 더욱 볼 것이 없다는 의미기도 하다. 대체로 그들은 현재 사회적으로 어떤 불만들이 공유되고 있는지 관심 자체가 없으며, 사회의 실제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다. 자신들이 성장해왔던 어제가 오늘도 그대로 반복될 것이며, 오늘의 모습이 내일에도 똑같이 펼쳐질 것을 막연히 생각하면서 행동할 따름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점의 변화나 대안을 얘기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 된다. 시대의 변화에 촉각을 기울이는 것을 쓸데없는 일이라 치부했던 시간이 누적되자 현재의 사회적 갈등과 불만은 그 어느 때보다 커져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대안은 단순한 염증이나 분노의 감정만으로 도출되지 않는다. 지금의 시대는 어떤 시대인지, 사람들을 갈라놓는 갈등의 전선은 어디에 그어져 있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만 하고, 공격할 대상과 협력할 대상을 지정해야 하며, 새로운 목표와 비전을 통해 무엇을 건설할 것인지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기성 정치인들이 실패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산업화나 민주화를 미완의 과제로 여기며 그에 따라 그것들이 '새롭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이준석과 그 지지층의 실패는 기존 세계관의 부정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지 못한 데 있다. 따라서 핵심은 세계관이다.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따라서 분명한 것은 이 질문을 회피하는 정치적 행위자들은 누구나 더욱 심화될 위기에 대응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 스스로가 그에 따른 혼란을 지금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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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명묵 / 작가 ⓒ 임명묵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임명묵은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석사 과정 학생입니다. 서아시아 현대사를 공부하고 있지만 동시에 21세기 이후의 사회 및 문화 변동과 새로운 청년 문화에 많은 관심을 두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 'K를 생각한다'가 있습니다.

임명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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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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