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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원화값 방어에 축나는 '달러곳간'…4천억弗 붕괴 경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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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환보유액 급감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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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보유액이 한 달 새 200억달러 가까이 급감했다. 지난달 달러당 원화값이 1400원 아래로 추락해 외환당국이 비상금 개념인 외환보유액을 대거 투입하면서 시장 방어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감소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3년11개월 만에 최대 규모다. 하지만 당국은 아직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며 제2의 외환위기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말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167억7000만달러로 8월 말(4364억3000만달러)보다 196억6000만달러 감소했다.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해 10월(4692억1000만달러)에 비하면 11개월 만에 524억4000만달러 줄어든 것이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3월부터 2009년 2월까지 11개월 동안 627억2000만달러 급감한 이후 두 번째로 큰 감소폭이다.

이에 대해 한은은 강달러 현상이 심화되면서 외환당국이 원화값 방어를 위해 달러를 시장에 내다판 데다 유로화·파운드화·엔화 등 당국이 보유하고 있는 다른 외화자산의 달러 환산액까지 줄면서 외환보유액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9월 외환보유액이 크게 줄어들면서 외환당국의 3분기 순매도액은 더 커질 공산이다. 외환당국은 지난 4~6월에도 154억900만달러를 순매도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9월 말 112.25로 8월보다 3.2% 올랐다.

미국의 초강도 긴축 기조가 지속돼 달러 강세가 이어지고 한미 기준금리 격차가 더 벌어진다면 4000억달러 선이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특정한 (원화값) 레벨을 지키기 위한 외환시장 개입이 지속되거나 시장이 한미 금리 역전이 이어질 수 있는 상황으로 인식한다면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한은은 외환보유액 수준과 대외건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전날 한은은 이례적으로 간부가 직접 백브리핑을 하며 우려 불식에 나섰다.

오금화 한은 국제국장은 "과거 외환보유액이 가장 큰 폭으로 줄었던 2008년(2000억달러)과 비교해 두 배가량 많고 비율로 따지면 감소폭은 훨씬 작다"며 "외환보유액 규모는 의심할 여지 없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한은에 따르면 한국은 2014년부터 순대외금융자산을 보유한 순채권국가가 됐고 경제 전체적으로 국내총생산(GDP)의 37%에 달하는 대외 자산이 있다. 외환보유액 외에도 민간이 보유한 외화자산이 많아 공적 부문에서 감당할 부분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매일경제

하지만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국제통화기금(IMF) 권고안의 최대치나 국제결제은행(BIS)이 권고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IMF 기준(2013년) 지난 2분기 적정 외환보유액 기준치는 4303억7000만달러, 최대치는 6455억5000만달러였다. 당시 적정 외환보유액을 추정했던 이부형 현경연 이사대우는 "3분기 들어 한국의 대외 거래가 2분기보다 줄어 결제에 필요한 적정 외환보유액 수준도 낮아졌을 수 있다"면서도 "9월 같은 감소세가 이어진다면 문제가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IMF는 △연간 수출액의 5% △시중 통화량(M2)의 5% △유동 외채의 30% △외국인 증권·기타 투자금 잔액의 15% 등을 합한 규모 대비 100~150% 수준을 적정 외환보유액으로 산출한다. 그런데 지난해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 비중은 98.94%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가라앉았다. 한국의 적정 외환보유액 비중은 2000년만 해도 114.27%에 달했지만 2018년 이후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미국 통화 긴축이 본격화하며 달러가 강세를 보이자 달러로 환산한 외환보유액이 줄고 원화값 급락을 방어하려는 외환당국의 자금 수요가 겹친 게 주요 원인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외환보유액 대비 줄어든 비율을 보면 그때(2008년 금융위기)와 비교도 안 되게 상대적 비율이 낮다"고 말했다. 그는 "그사이 우리 외환보유액이 많아져서 (이번 외환보유액 감소는) 4300억달러 넘는 수준에서 196억달러 줄어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전체 외환보유액이 과거에 비해 크게 늘어난 만큼 이번 외환보유액 감소에 따른 타격은 크지 않다는 의미다.

추 부총리는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과 관련해서도 "제가 접촉한 국제기구나 신용평가사, 국내외 여러 전문가 이야기를 종합하면 그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금융·외환시장에서 심리적 쏠림 현상이 나타나거나 급변동이 있을 때 시장 안정과 관련해 당국이 필요한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그는 또 내년 경제성장률이 올해보다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추 부총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고강도 금융긴축의 영향으로 선진국 경기에 대한 둔화 전망이 많아지는데 (이것이) 내년에 회복될지가 변수"라며 "금년보다 내년이 (성장률이) 좀 더 둔화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박동환 기자 / 이희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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