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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억울하다[서광원의 자연과 삶]〈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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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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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시인들은 참 대단하다. 수많은 말로도 움직이기 힘든 사람 마음을 간결한 언어로 해내니 말이다. 얼마 전 최정란 시인의 시를 읽다가 혼자 빵 터졌다.

‘가장 좋은 사과는 내일 먹겠다고/사과 상자 안에서 썩은 사과를 먼저 골라 먹는다/가장 좋은 내일은 오지 않고/어리석게도/날마다 가장 나쁜 사과를 먹는다/가장 나쁜 사과를 먹고 나면 그 다음 나쁜 사과가/가장 나쁜 사과가 된다/어리석게도/가장 나쁜 선택은 나쁜 선택을 반복한다 … 나도 안다/가장 좋은 사과를 먼저 먹기 시작해야 한다’(썩은 사과의 사람)

시야 나무랄 데 없지만 궁금해지는 부분이 있다. 다른 과일들은 대부분 가장 나쁜 걸 골라 먹으면 다음 날 좀 더 좋은 걸 먹게 되는데, 왜 사과는 그렇지 않을까? 왜 나쁜 선택을 반복하게 될까?

식물이 과일을 만드는 이유가 있다. 동물들에게 맛있는 걸(과육) 줄 테니 잘 먹고 어딘가 먼 곳에 씨앗을 배출해 달라는 일종의 ‘수고비’다. 자신들과 달리 동물들은 움직일 수 있으니 말이다. 특히 중앙아시아에서 기원한 사과는 곰이나 야생마 같은, 한 덩치 하는 동물들을 전략적 파트너로 삼은 까닭에 씨앗은 작아도 엄청 큰 과육을 만든다. 고객의 눈높이, 아니 위장에 맞춰야 고객 만족을 이룰 수 있어서다.

그럼에도 문제가 하나 있다. 백화점의 VIP 고객 수가 많지 않듯, 자연에서도 덩치 큰 고객들은 숫자가 많지 않다. 한 번 지나가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 목이 빠져라 기다려도 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방법은 하나. 모든 열매가 거의 비슷하게 익어 멀리서도 눈에 잘 띄게 하고, 고객이 귀한 걸음을 하면 어떻게든 최대한 흡입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높게 자라지 않고 ‘동시 패션’처럼 다 같이 익는다. 모든 사과가 숙성 촉진제라고 할 수 있는 에틸렌 가스를 서로 뿜어내 너나없이 같이 익게 하는 것이다.

사과를 한곳에 같이 두면 썩어 버리는 게 이 때문이다. 원래는 씨앗을 잘 퍼뜨리려고 만든 건데, 인간이 저장을 하면서 이 능력이 애물단지가 된 것이다. 그러니 이건 사과 탓이 아니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게 사과 탓이 아니듯 말이다. 그런데도 주변에 나쁜 걸 전염시키는 주범이니 빨리 제거해야 하는 비유(썩은 사과)로 쓰이는 건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남들에게 맛있는 걸 배불리 제공하면서 나도 잘되는, 아름다운 상호 공생 전략으로 세상을 풍요롭게 해왔는데 말이다.

하긴 억울한 게 이뿐인가? 어떤 사람들은 ‘심심한 사과’를 한다며 애먼 사과 그림이나 사진을 내밀기도 한다. 진심 어린 사과와는 거리가 멀고 되레 상황을 악화시키면서 말이다. 정말이지 사과가 애초에 의도한 그런 마음으로만 산다면 남 탓 할 일은 물론 심심한 사과를 할 일도 없을 텐데.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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