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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테마진단] 北 언급 안한 尹 유엔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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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익숙하다는 것은 대개 좋은 것을 의미하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데 따른 비용과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택하게 된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 본성에 가깝기 때문에 익숙한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것을 택하는 것은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거나 심지어 더 나은 효용을 줄 수 있더라도 거부감이 생길 수 있다.

익숙함이 기득권과 합쳐지는 순간에는 더 강한 거부감이 작동한다. 이는 일상사뿐만 아니라 국가 정책에서도 비슷하다. 그래서 관례와 같이 익숙한 과거에 기준점을 두고 정책을 추진하기 때문에 합의의 산물인 정책은 대부분 점진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유엔 연설은 기존의 익숙함에서 주는 편안함을 벗어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우리가 유엔에 가입한 이후 역대 대통령들의 연설에 꼭 포함됐던 북한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까지 우리 대통령들은 유엔에서 때로는 북한 비핵화를, 때로는 북한이 원하는 종전선언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북한을 언급하지 않은 것이 익숙하지 않아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다. 북한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은 것이 잘못된 것이냐는 또 다른 문제다. 익숙하지 않다는 것과 잘못됐다는 것은 다르다.

이번 연설은 국제사회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와 그를 위한 연대를 강조함으로써 한반도의 특수성만을 강조하던 과거의 한국보다 진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과거 우리는 '밖에 나가면 ○고생' 같은 한반도 중심의 인식에 머물렀다. 되도록 국제사회 문제에 의견을 내지 않는 것이 한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생각이었다. G7처럼 국제질서를 논의하는 장에서 한반도의 특수성, 북한의 특수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국익을 위한 것으로 여겨졌다. 보편적 가치에서 벗어난 북한 주민들의 인권과 삶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하기보다는 한반도 상황과 북한 정권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국제질서를 어떻게 유지하고 강화할 것인가를 적극적으로 고민하기보다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 과정에서 어떻게 피해를 줄일 것인가 하는 소극적 고민이 중심이 되었다. 우리 내부에서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이야기하지만, 북한 주민을 포함한 그러한 혜택을 받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우리의 이익을 해치는 일인 양 대했다. 이러한 과거의 접근법은 한국이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라기보다 한국의 특수성, 북한 정권의 특수성만을 강조하는 국가로 인식되게 했다.

윤 대통령의 이번 연설은 우리 대북 정책이 북한 정권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할 문제가 아니라 자유와 인권 차원에서 북한 주민의 삶을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해야 하고, 그것은 바로 보편적 가치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북한 주민의 문제가 고통받고 있는 다른 여러 세계시민들의 문제와 다르지 않고, 우리가 북한 주민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다른 시민들의 삶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점을 알린 것이다.

지난 6월 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그런 점에서 많은 유럽 국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필자가 만난 유럽 전문가들은 드디어 한국이 걸맞은 역할을 하려 한다는 신호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번 유엔 연설도 외국 전문가들에게 그런 긍정적 인식을 주고 있다.

윤 대통령이 북한을 직접 언급했다면 아마 연설에 대한 평가는 어떤 대북 제안을 했느냐에 모아졌을 가능성이 크다. 국제사회에 대한 한국의 변화된 인식, 보편적 가치 차원의 북한 문제 접근을 강조하기 위해 오히려 북한을 언급하지 않은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 익숙함과 결별함으로써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한 신선함이 가능했던 것이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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