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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임기 첫 사형집행…전국 15명 형장의 이슬로[그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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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정부 들어 처음으로 15명에 대한 사형 집행

문민정부는 우리나라 정부 중 마지막 사형 집행 정부

韓정부 수립 이래 920명 사형집행…생존 사형수 59명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994년 10월 6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에서 첫 사형 집행이 이뤄졌다. 이날 15명의 사형수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일부는 자신의 시신을 기증하기도 했으나, 끝까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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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환 등 양평 일가족 살인사건 범인들을 체포한 사실을 보도한 1990년11월13일 한겨레신문(사진=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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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사형수들은 강도살인이나 유괴 살인, 방화살인, 성폭행 등 대부분 강력범죄자였다.

당시 법무부는 “최근 ‘지존파’ 연쇄납치 살인사건, 온보현 사건 등 대형 강력사건이 잇따라 발생함에 따라 정부의 단호한 법집행 의지를 통해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모든 범죄자들에게 법의 엄정함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해 전격적으로 사형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법무부의 말처럼 1994년 대한민국은 강력범죄로 인한 불안감이 한껏 높았다. 특히 지존파는 무려 8명이나 되는 범인들이 살인조직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세계 범죄사에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운 사례였다. 사형은 잇단 강력범죄에 대한 단호한 응징 차원에서 이뤄졌다.

16차례에 걸쳐 부녀자를 성폭행한 박현룡은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범행 수법이 끔찍했다. 그의 피해자 중에는 초등학생도 있었다. 심지어 임신 3개월 임산부를 겁탈해 유산까지 시켰고 가족들 앞에서 부녀자를 욕보이기도 했다.

당시 재판 현장을 취재했던 중앙일보 기자는 박현룡 앞에 ‘인간쓰레기’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박현룡은 검사의 사형 구형에도 “재판장님, 저는 절대로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죽더라도 진실은 밝혀지겠지요”라고 혐의를 부인했다.

오태환은 주범 3명 가운데 가장 나중에 세상을 떠났다. 주범 이성준은 경찰이 쏜 총에 맞고 도주하다가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윤용필은 오태환에 앞선 1992년 12월 29일 사형이 집행됐다.

이들은 친척의 결혼식과 고희연에 가던 일가족 4명에게 금품을 뺏고 생매장해 사망케 하는 충격적인 범죄를 저질렀다. 당시 6살에 불과한 아이도 희생돼 대한민국 사회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장기와 사체 기증을 한 오태환이지만 여론에 떠밀려 과도한 형을 받았다며 끝까지 억울함을 피력했다.

최오림은 구타에 못 이겨 집을 나간 부인을 찾기 위해 처가에 침입해 등산용 도끼로 부인과 장인, 장모, 친딸을 살해했다. 전기철과 문승도는 각각 아이를 유괴해 호수에 빠뜨려 살해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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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 15명에 대한 사형집행 소식을 전하는 1994년10월7일자 경향신문(사진=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이들을 비롯해 서울구치소 10명, 대구교도소 3명, 부산구치소 2명 등 모두 15명에 대해 사형이 집행됐다.

문민정부는 이후에도 1995년 11월 2일 19명, 1997년 12월 30일 23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이후 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더이상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고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한국은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한편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1949년 살인범에 대한 첫 사형집행을 시작으로 1997년까지 모두 920명에 대해 사형집행이 이뤄졌다. 현재 한국에 생존해 있는 사형수는 모두 5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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