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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경향의 눈] 윤석열, 이준석, 윤핵관, 누가 배신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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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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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선 매일 크고 작은 도원결의가 맺어지고, 그만큼의 배신행위가 발생한다. 어제의 동지가 다음날 원수가 된 풍경은 낯설지 않다. 정치연합의 붕괴, 정치인들의 결별, 탈당 등이 이런 사례들이다. 큰 배신에 가려진 작은 배신들은 더 많다. 당내 선거나 국회의원 예비 경선 때 특정 캠프에서 일했던 인사가 경쟁 캠프로 옮겨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영업비밀’을 누설하는 경우를 봤다. 형, 동생 하던 사이가 같은 지역구를 놓고 경쟁하면서 어색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못 믿을 인간들만 정치권에 모여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리지어 권력을 다투고, 이기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판의 속성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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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욱 논설위원


중요한 것은 ‘어떤 배신이냐’이다. 드물지만 명분 있는 배신은 결단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가령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며 군사정권 후예들과 3당 합당을 한 것은 당시엔 배신행위였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이후 우리 사회는 군부독재를 넘어 문민시대로 접어들었다. 외환위기를 불렀지만, 금융실명제, 하나회 숙청, 공직자 재산공개 등 김 전 대통령이 남긴 유산도 많다. 이뿐 아니다. 이부영·김부겸·김영춘 등 의원 5명이 지역구도 타파를 내세우며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합류한 것도 평가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다수 배신은 끝이 좋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가 2015년 6월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야 한다”며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인 유승민 전 의원을 찍어냈던 게 대표적이다. 박씨는 유 전 의원이 ‘국회법 개정안’을 야당과 합의해 통과시킨 것을 비판했다. 그러나 삼권분립 원칙을 어기고 여당에 왕처럼 군림했던 박씨에게 배신자 호칭이 더 걸맞았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탄핵됐지만, 박근혜 정부의 몰락은 이때 시작됐다.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가 고 정두언 전 의원을 내친 것도 명분이 없었다. 정 전 의원은 이씨의 형 이상득 의원의 2선 후퇴를 촉구했다가 이명박 정부 내내 변방을 돌았다. 합리적 성향의 정 전 의원이 밀려난 후 이씨가 더 엇나갔다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 전 의원은 이씨를 향해 “돈에 물러섬이 없으신 분”이라는 말을 남겼다. 돈에 물러섬이 없었던 이씨는 결국 뇌물죄로 구속됐고 여론이 나빠 사면도 못 받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에선 과거보다 더한 배신쇼가 벌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윤핵관들이 공동주연이다. 떠들썩한 맹세가 큰 배신을 예고하듯, 이들의 첫 술자리는 사뭇 비장했을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윤 대통령은 “나는 하늘이 낸 사람이야”라고 대선 승리를 장담했다. 1시간이면 혼자 59분을 떠들었다. 1분은 숨고르는 시간이었다. 이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비단주머니’를 준비했다고 했다. 윤핵관들은 정권 창출과 성공에 온몸을 바치겠다고 했다. 폭탄주가 돌았고, 술 오른 권성동 의원은 소주병에 꽂은 숟가락을 마이크 삼아 ‘사공의 노래’를 구성지게 불렀다.

그러나 권력을 잡자마자 이들은 서로의 등에 칼을 꽂았다. 윤 대통령은 윤핵관들을 시켜 이 전 대표를 쫓아냈다. ‘내부총질하는 당대표’ 문자메시지까지 노출됐는데도 “당무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모른 척한다. 내쳐진 이 전 대표는 이판사판으로 맞서고 있다. 윤 대통령을 향해 “대선 때 양 머리 쓰고 개고기를 팔았다”고 했고, 윤핵관들을 두고는 “정당을 경영할 능력도, 국가를 경영할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과 측근들이 국정을 감당할 실력이 없다고까지 한 것이다. 윤핵관들은 윤 대통령과 이 전 대표 사이를 이간질해 자신들의 권력욕을 채웠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들은 술 먹고 노는 것에만 선수들이었다. 상대에게 ‘컨디션’ 한 병 챙겨줄 동지애는 애초부터 없었을지 모른다.

‘누구 잘못이 더 크냐’며 서로 다투고 있지만, 국민들에게 이들은 똑같다. 틈날 때마다 공정과 상식을 말했던 윤 대통령은 반대로 가고 있다. “무식한 3류 바보들 데려다 정치해서 경제, 외교, 안보 전부 망쳐놓았다”며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지만, 이 말은 부메랑이 됐다. 보수혁신한다던 이 전 대표는 진흙탕 싸움을 주도하고 있다. 윤핵관들은 간신배 낙인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정권의 돌격대로 나섰다. 경제와 안보 환경이 날로 악화되고 있지만, 이들에게는 상황을 수습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 유능한 정부를 만들겠다는 약속은 5개월도 안 돼 빈말이 됐다. 배신의 드라마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착잡하다.

이용욱 논설위원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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