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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사설] 고교생 만화 수상작에도 ‘정치딱지’ 붙이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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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부천국제만화축제 수상작인 ‘윤석열차' 관련 질의를 받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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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가 만평 ‘윤석열차’에 금상을 수여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대해 지원 중단 등을 거론하며 논란이 커진 가운데,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5일 “순수한 예술적 감수성으로 명성을 쌓은 중고생 만화 공모전을 정치오염 공모전으로 변색시킨 만화진흥원이 문제”라고 밝혔다. ‘표현의 자유’ 억압이라는 비판이 확산되자 작품이 아니라 기관을 겨냥한 것인데, 속이 뻔히 보이는 변명이자 궤변에 불과하다.

박 장관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작품에 대해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만화영상진흥원이) 정치적 색채를 빼겠다는 조항을 삭제하고 공모해서 문제”라고 주장했다. 문체부는 전날 ‘윤석열차’ 관련 보도설명자료에서 “정치적인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정해 전시한 것은 학생의 만화 창작 욕구를 고취하려는 행사 취지에 지극히 어긋난다”며 만화영상진흥원에 엄중 경고했다고 밝혔다. 이어 추가 자료에선 만화영상진흥원이 ‘정치적 의도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작품은 결격 사항’이라는 문체부의 후원 조건을 어겼다고 했다. 문체부는 102억원의 예산이 이 기관에 지원되고 있다는 점을 ‘굳이’ 언급하면서, 지원 축소 가능성도 내비쳤다.

지난 3일 폐막한 제23회 부천국제만화축제에 전시된 ‘윤석열차’는 윤 대통령의 얼굴을 한 기차가 연기를 내뿜으며 달려가고 있고, 김건희 여사로 보이는 인물과 칼을 든 검사들이 각각 기관사석과 승객석에 앉아 있는 내용을 담았다. 박 장관의 ‘계약 파기’ 주장에는 이 만평이 정치적 의도가 있고, 등장인물인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정부가 ‘순수한 예술적 감수성’과 ‘정치 오염’을 가르고 심판하는 모습은 박근혜 정부 당시 비판적인 예술인과 예술작품을 지원 배제 형식으로 탄압했던 블랙리스트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명예훼손 언급 역시 윤 대통령과 김 여사에 대한 심기 경호 외에는 해석할 방도가 없다.

윤 대통령은 대선 기간 “코미디는 현실에 대한 풍자” “정치 풍자는 당연한 권리”라고 언급한 바 있다. 박 장관도 이날 “윤석열 정부는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 비속어 논란과 관련해 <문화방송>(MBC)을 ‘대통령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발했고, 경찰은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 윤 대통령 풍자 그림을 내건 작가를 내사 중이다. 이것이 윤석열 정부가 보장한다는 ‘표현의 자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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