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우주 비밀' 땅속에서 찾는다…강원도 지하 1km 시설 정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지난달 29일 강원도 정선군 예미산 지하에 조성된 연구단지 예미랩에서 연구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현재 텅 비어 있는 이 공간에는 조만간 연구시설이 설치될 예정이다. [사진 제공 = I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쿵…'

굉음과 함께 진동이 느껴졌다. 인근 한덕철광에서 철광석 채굴을 위해 터뜨린 다이너마이트의 영향이다. 안전모를 쓴 작업자들은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쁘게 움직였다. 천장에 매달린 조명에서 나오는 빛이 반사되며 약간은 후덥지근한 굴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이곳은 지난달 29일, 강원도 정선의 지하 1000m, 암흑물질과 중성미자 연구를 통해 우주의 비밀을 밝힐 기초과학연구원(IBS) 예미랩이다.

우주의 비밀을 땅 속에서 찾는다, 역설적으로도 들리지만 이유가 있다. 이곳에서 진행되는 연구는 크게 두 가지다. 그 중 하나가 암흑물질탐색 연구, 코사인(COSINE) 프로젝트다.

광활하다는 말로도 표현이 부족한 우주에서, 인류가 알고 있는 물질이 에너지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은 4%에 불과하다. 암흑물질은 전체의 약 26% 수준을 차지하고, 나머지 70%는 암흑에너지다. 액시온과 비활성 중성미자 등과 함께 윔프가 암흑물질 하나로 꼽힌다.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무거운 입자'라는 의미의 이 윔프가 바로 예미랩에서 찾으려고 하는 물질이다.

매일경제

김영덕 IBS 지하실험연구단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을 합친 것보다 5배의 질량이 더 있어야 별들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다"라며 "암흑물질의 존재를 증명하는 거부할 수 없는 실험 결과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암흑물질의 정체는) 현대 물리학을 넘어 자연과학 전체의 가장 큰 질문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암흑물질은 지상에서는 검출이 어렵다. 암흑물질이 내는 신호는 아주 미약하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내려오는 우주방사선이 잡음을 일으켜 검출기를 설치해도 암흑물질이 내는 신호를 포착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지하는 상황이 다르다. 암석과 흙 등이 '천연 보호막' 역할을 한다. 지표면 대비 우주방사선을 100만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비교적 잡음의 영향 없이 암흑물질이 내는 신호를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

지하로 내려와도 여전히 방해꾼이 많다. 먼지가 혼란을 줄 수 있는 것은 물론, 암석조차도 방사능을 방출해 잡음을 일으킬 수 있다. 다행히 예미랩이 있는 예미산은 화강암 등에 비해 훨씬 방사능을 덜 내뿜는 석회암 산이다. 연구팀은 먼지가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굴 표면에 칠한 페인트를 구할 때도 방사능을 거의 내뿜지 않는 제품을 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연구시설의 핵심인 검출기는 더욱 삼엄하게 둘러싸여 있었다. 취재진도 차폐체 문 밖에서 검출기를 둘러싼 폴리에틸렌의 모습까지만 확인할 수 있었다. 거대한 차폐체 안에 중성자를 차단하는 폴리에틸렌을 한 겹 더 만든다. 이어 물이 채워진 물탱크가 있고, 검출기는 그 안에 위치해 있다. 검출기가 있는 곳의 온도는 영하 272.99도. 모든 에너지 흐름이 0이 되는 '절대영도' 보다 불과 0.01도 높다.

검출기는 아이오딘화나트륨 결정을 다수 만들어 200kg 규모로 구성된다. 이 검출기에 암흑물질이 충돌하게 되면 미세한 신호가 기록된다. 박강순 IBS 지하실험연구단 책임기술원은 "숨소리만 내도 검출기에 신호가 잡힐 정도"라고 밝혔다. 이어 "한 번 문을 닫고 검출기를 가동하기 시작하면 웬만한 일이 있어서는 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핵심 과제는 중성미자 미방출 이중베타붕괴 연구(AMoRE)다. 중성미자는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물질의 최소 단위 입자 중 하나다. 현재까지는 전자·타우·뮤온 중성미자 세 가지만 발견됐다. 예미랩에서 진행되는 실험은 중성미자의 질량을 확인하고, 암흑물질의 후보기도 한 '비활성 중성미자'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진행된다. 중성미자와 물리적 성질이 같지만 전하가 다른 '반(反) 중성미자'가 존재 여부도 주요 실험 목적 중 하나다.

김 단장은 "중성미자는 우주 초기에 많이 생성됐는데,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 에너지가 많이 약한 상태"라며 "중성미자가 우주 초기에 한 역할은 중성미자와 반중성미자가 같은 입자인지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우주의 기원을 밝히는데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지하에 구축된 실험실에서 활발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15년에는 노벨물리학상도 일본의 지하실험시설인 '슈퍼 가미오칸데'에서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가지타 타카아키 교수에게 돌아갔다.

예미랩의 규모는 전 세계 지하실험시설 가운데 6번째 다. 길게 길을 뚫고, 각 실험에 필요한 공간만을 길과 연결한 개미굴 형태로 만들어져 보다 효율적으로 공간을 활용했다는 게 IBS측 설명이다. 기상청과 지질연, 국가수리과학연구소 등 기관도 예미랩에 공간을 확보하고 관측·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오태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은 5일 준공식에 참석해 "거대 연구시설은 세계적 연구성과 창출에 필수적"이라며 "앞으로도 정부는 기초과학 역량을 높이기 위해 거대 연구시설에 대한 투자지원을 지속적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도영 IBS 원장은 "단 한건의 안전사고 없이 예미랩이 잘 구축돼 기쁘다"며 "다양한 국가과학기술 분야 성과 창출에 기여하겠다"고 전했다.

[정선 = 정희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