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단독] 디지털 성범죄 수사서 2차 피해···경찰 성인지감수성 한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전국 경찰서 사이버수사팀 여경 비율 29%

수사 지연·채증자료 돌려보는 등 2차 피해

"내부 교육·전담수사과 조직 등 개선 필요"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A씨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2차 피해를 경험했다. A씨는 신고 즉시 빠른 수사를 원했으나 경찰의 휴가, 교육, 연휴 등의 이유로 수사관 배정이 며칠 간 지연됐다. 수사가 미뤄지는 동안에도 불법촬영 영상이 계속 유포되고 있어 A씨는 기다리는 하루하루 초조함에 떨었다.

A씨는 수사 과정에서도 경찰을 온전히 믿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수사관이 계속 바뀐 탓에 조사 과정에 연속성이 없었고, 피해자인 자신을 가해자를 취조하듯 대한다고 느꼈다. 여성 수사관을 배정받고 싶었으나 “여성 수사관 배정은 시간이 걸린다. 남성 수사관에게 받아도 괜찮겠냐”는 말을 들어 어쩔 수 없이 그 편을 택했다. 영상 삭제를 부탁하니 경찰로부터 “아무래도 본인만큼 열심히 할 수는 없다. 삭제 요청을 본인이 하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A씨는 “믿고 의지할 사람은 수사관밖에 없는데 수사 과정 내내 불안했다”면서 “이런 경험이 일반적이진 않지만 여전히 이런 경찰관들도 존재한다”고 호소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활동을 진행하는 민간 단체 ‘프로젝트 리셋’은 “채증자료를 경찰서에 직접 넘겨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사이버 수사팀에 사건이 접수된 후 따로 상담실이나 다른 장소로 분리도 이뤄지지 않은 채 경찰들이 둘러싸고 채증자료를 전부 돌려 보는 일을 경험했다”고 알렸다. 이어 “서로 흥미를 보이며 “줘봐”, “뭔데” 이런 말도 편히 오갔다”며 “피해자가 아니라 활동가인 것을 알아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부적절한 태도라고 판단됐다”고 밝혔다.

이처럼 디지털 성범죄 수사 과정에서 2차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여경 수사관 배정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거나,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한 경찰관이 배정되거나, 경찰의 과다한 업무로 인해 경찰이 개별 사건에 열과 성을 다할 수 없는 등 현실적·제도적 한계가 존재한다.

5일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경찰서 사이버수사팀의 여경 비율은 29%다. 각 시도청 기준으로는 서울 26%, 경기남부 25%, 부산 25% 등이다. 여경 비율이 가장 높은 경북은 44%, 가장 낮은 대전은 23%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 전체 평균 여경 비율이 10% 초반인 데 비하면 여경 비율이 높은 편”이라며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조사 과정에서 여성 경찰관이 조사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서의 사이버수사팀은 △정보통신망 침해형 범죄(해킹 등) △정보통신망이용형 범죄 (정보통신망 이용한 사기 등) △불법컨텐츠 범죄(아동성착취·사이버성폭력·저작권침해 등) 크게 세 부류의 범죄를 다룬다.

경찰 사이버수사팀 여경 비율은 전체 조직 평균보다 높다. 그럼에도 피해자 중심 수사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프로젝트 리셋’은 “일부 수사관들이 섣불리 범죄의 경중을 따지려 들거나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며 “피해자 중심으로 상황을 판단하지 않고 본인 혹은 가해자를 중심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담당 수사기관 내에 피해심리에 대한 부분을 면밀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이 이행돼야 하고, 디지털 성범죄 전담 수사과를 조직하여 높은 성인지 감수성과 해당 범죄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갖춘 담당수사관만이 이를 수사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하는 방안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수사 과정 상의 문제를 무조건 경찰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리셋은 “부족한 인력과 예산에 비해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너무 많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경찰 개인을 질책할 것이 아니라 그 경찰들이 수사에 집중할 수 있게 기관과 구조가 바뀌어야 보다 근본적인 개선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의 디지털 성범죄 담당 수사관은 지난 6월 기준 109명이며 n번방 사건 이후 3년 간 증원된 인원은 10명에 불과하다.

박신원 기자 shin@sedaily.com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