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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비밀' 풀기 위해 지하 1km로 들어간 과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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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6위 지하실험실 예미랩 5일 준공식
우주방사선 피해 암흑물질·중성미자 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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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미랩 지하실험실이 이어지는 지하터널의 모습.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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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호소하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폐소공포증이나 공황장애가 있으신 분들은 출입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하갱도의 입구. 노란색 엘리베이터 철문 앞에 서자 기초과학연구원(IBS) 관계자가 경고성 공지를 시작했다. 각오를 하고 출발했다. 이윽고 엘리베이터는 그르렁 진동 소리를 내며 2분 34초 만에 지하 600m 지점에 도착했다.

그러나 여기가 끝은 아니다. 광산 갱도가 끝난 곳에서 예미랩 지하터널이 시작된다. 내리막길을 따라 782m를 더 이동한 뒤에야 최종 목적지, 지하 1,000m 지점에 다다랐다.

지하 1,000m에 높이 28m 거대 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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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성미자 검출기 등이 들어설 예미랩 인공동굴.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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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도착한 이곳은 최근 완공된 강원 정선군 예미산 지하의 '예미랩'이다. 5일 준공식을 가진 예미랩은 IBS 소속의 지하 물리 실험실. 총 면적 3,000㎡로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고심도 지하실험실이다. 특수 실험을 위해 건설한 직경 20m, 높이 28m 거대 동굴은 아직 중성미자 검출기 등 장비가 설치되기 전이었지만 거대한 위용을 뽐냈다. 공기 순환용 덕트 아래로 전동카트가 분주히 오가는 모습은 마치 영화 속 비밀기지를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 IBS는 왜 굳이 이렇게 깊은 땅속에 실험실을 설치해야만 했을까? 우주방사선을 피하기 위해서다. 우주방사선을 피하려는 이유는 바로 '우주의 비밀'인 암흑물질에 접근하기 위해서다.

인간은 점점 우주를 알아가고 있지만, 아직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물질(수소, 헬륨 등)은 우주의 4%만을 차지한다. 나머지 우주는 정체 불명의 암흑물질(23%)과 암흑에너지(73%)로 구성되어 있다. 암흑물질은 존재한다는 것은 중력을 통해 간접적으로는 알 수 있지만, 중력 아닌 방법으로는 전혀 측정되지 않는 정체 불명의 물질이다.

암흑물질의 수수께끼를 풀려면 땅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지금도 우주에선 끊임없이 방사선이 지구로 쏟아진다. 방사선이 대기와 부딪혀 비처럼 내리는 뮤온(소립자의 일종) 탓에 암흑물질의 관측이 어렵다. 물리적 상호작용을 관찰하고 매우 약한 에너지를 감지하기 위해선, 우주로부터 가장 떨어진 지하 깊은 곳에서 실험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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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험실 예미랩의 구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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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물리학의 가장 큰 질문'을 푼다


이곳 예미랩에서 과학자들은 새 물질 규명을 통해 우주의 비밀을 풀고자 한다. 예미랩 건설을 도맡은 IBS 지하실험연구단의 박상순 책임기술원은 "연구를 하는 데 더 없이 좋은 환경"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예미산이 우주방사선을 막아주고, 주변 암석에서 나오는 방사능 수치도 일본의 카미오칸데(지하 연구시설)와 비교해 약 100배 정도 낮다"며 "세계를 놀라게 할 다양한 연구가 이곳에서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미랩에서 진행될 주요 실험은 암흑물질 발견이다. IBS의 코사인(COSINE) 연구팀은 암흑물질의 주요 후보인 윔프(WIMP)를 찾고 있다.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무거운 입자(Weak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s)'라는 뜻의 윔프는 고(故) 이휘소 박사가 1977년 유고 논문에서 존재 가능성을 제시한 물질이다. 액시온(axion), 비활성 중성미자와 함께 암흑물질 후보로 거론된다.

지금까지 윔프의 존재를 포착했다고 주장한 실험은 1990년대 말 이탈리아 그랑사소 국립연구소의 실험이 유일했다. 예미랩에 둥지를 트는 코사인 연구팀은 지금까지 강원 양양군 지하실험실(지하 700m)에서 진행했던 실험의 2배 규모인 200kg급 아이오딘화나트륨 결정을 이용해 이탈리아 실험을 검증 혹은 반박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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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미랩에 위치한 아모레 '이중 베타붕괴' 실험실.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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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미랩의 또 다른 임무는 '중성미자(neutrino) 없는 이중 베타붕괴' 실험이다. 중성미자는 원자보다 작은 기본입자로, 원자핵의 양성자가 중성자로 바뀌는 베타붕괴 과정에서 전자와 함께 방출된다. IBS의 아모레(AMoRE) 연구팀은 중성미자와 그 반입자(보통의 입자와 물리적 성질은 같지만, 전하나 자기 모멘트 부호가 반대인 소립자)인 반중성미자가 다른 물질이 아니고, 회전 방향(스핀)만 다를 뿐인 같은 물질인지를 확인하려 한다. 한 원자핵 내에서 중성미자가 방출됐다가 도로 흡수되는 이중 베타붕괴를 관측한다면, 중성미자가 입자이면서 반입자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풀리기만 하면 노벨 물리학상 수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세기의 난제'를 해결하는 실험들이다. 김영덕 IBS 지하실험연구단장은 "암흑물질이나 중성미자는 현대 물리학은 물론 자연과학 전체의 가장 큰 질문 중 하나"라며 "예미랩에서의 실험을 통해 암흑물질 규명 등에 진전을 이루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정선=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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