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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5-0 노력하는 게 상대 존중”…이정효의 1부 공격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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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한 인터뷰┃부임 첫해 승격 이정효 광주FC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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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효 광주FC 감독. 광주F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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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처음 월드컵 16강에 올랐을 때, 거스 히딩크 감독은 “나는 아직 배고프다”고 말했다. 환희에 빠진 이들에게 충격을 선사한 말이었다. 20년이 흐른 지금. 4강 신화를 일궜던 광주에서 같은 갈망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이가 있다. 그 역시 히딩크처럼 아웃사이더였고, 누구도 성공을 예상하지 못한 이단아였다. 지난달 30일 광주에서 <한겨레>는 부임 첫해 K리그2 우승과 1부리그 승격을 일군 광주FC 이정효(47) 감독을 만났다.

누구도 예상 못한 압도적 우승


올 시즌 광주FC는 압도적이다. 4일 현재 승점 82. 2013년 출범한 K리그2 역사상 최다 승점이다. 목표로 했던 승점 90 고지는 놓쳤지만, 최대 승점 88까지 가능하다. 만약 성공하면, 2018년 전북 현대가 K리그1에서 썼던 승점 86을 넘어 1·2부 통틀어 최다 승점 우승팀이 된다.

이런 팀이라면, 시즌 전부터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올 시즌 광주의 돌풍을 예상한 이는 없었다. 강등 아픔, 떠나간 주요 선수들, 리그 중하위 수준 인건비. 거기에 지휘봉을 잡은 건 프로팀 감독 경험이 전무한 초보 사령탑이었다. 미디어데이에 모인 다른 10개 구단 사령탑 중 광주를 우승 후보로 꼽은 이는 ‘0명’이었다.

이정효 감독은 “지금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국가대표 출신도 아닌데다 프로팀 감독이 처음이었던 그는 이름값 대신 “꼭 실력으로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이 감독은 선수들에게 자신이 오랜 기간 꿈꾸고 준비했던 공격 축구를 주문했고, 이를 위해 강도 높은 훈련을 이어갔다. 20∼30분짜리 전술 미팅이 수없이 열렸다. 선수들은 이 감독이 원하는 축구를 될 때까지 시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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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2 11개 구단 사령탑이 2월15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K리그2 2022 개막 미디어데이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11개 구단 사령탑은 자기 구단을 제외한 팀 가운데 우승후보를 꼽았는데, 직전 시즌 1부리그에서 활약했던 광주FC는 다른 6개 구단이 골고루 표를 나눠 갖는 상황에서 단 1표도 받지 못했다. 이정효 감독(왼쪽 셋째)이 그날을 잊지 못하는 이유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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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 진짜 강팀 되는 길, 항상 최선 다하는 것”


사령탑은 불타올랐지만, 다른 이들도 그랬을까. 광주는 K리그가 승강제를 도입한 뒤 가장 많이 강등당한 팀이다. 그만큼 승격을 자주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쉽게 승격을 하기도 하지만, 1부에선 다시 강등 1순위가 되는 뫼비우스의 띠. 구단 전체가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구조다.

이정효 감독은 바로 그 관성을 깨부수고자 했다. 그가 원한 건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변화였다. 그는 “광주를 진짜 명문 구단으로 한 단계 끌어올리는 일”을 하고자 했다. 승격 뒤 강등을 걱정해야 하는 팀이 아니라, 상위 스플릿 진출은 물론 우승까지 노릴 수 있는 강팀으로 광주를 새롭게 정의하길 원했다.

올 시즌 광주를 이해하려면, 이 철학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우승 확정 뒤에도 승점 90을 목표로 분투했다. 4-0으로 앞서면 5-0을 만들기 위해 몰아쳤다. ‘기록에 목메는 거냐’, ‘지나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이 감독은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짜 축구고, “4-0에선 5-0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게 상대에 대한 존중”이라고 믿는다. 무엇보다 그게 “광주가 진짜 강팀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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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효 광주FC 감독이 2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2 2022 대전 하나시티즌과 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 동점골을 터뜨린 이상기와 격하게 포옹하고 있다. 광주F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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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과 함께, 더 높은 곳으로 간다


광주는 그렇게 하나가 됐다. 2일 대전에서 열린 대전 하나시티즌과 경기. 이날 1-2로 뒤지던 후반 추가 시간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린 이상기(26)는 포효하며 그대로 이 감독 품에 안겼다. 이미 우승을 확정한 팀이 아니라, 마치 이날 득점으로 우승을 결정 지은 팀처럼 그들은 기뻐했다. 더이상 광주는 그저 승격에 만족하는 팀이 아니었다.

물론 갈 길은 멀다. 이 감독과 선수들은 새 역사를 썼지만, 구단을 옥죄는 열악한 토양은 여전하다. 광주 홈구장 건설비는 다른 시민구단 축구장 예산의 20%밖에 안 되고 간판조차 없다. 독립적인 훈련장소가 없어, 중학생과 함께 훈련한다. 인터뷰 당일도 선수들은 운동장 사용시간을 10여분 넘겼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이 감독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다.

이 감독의 히든카드는 결국 팬이다. 더 높고 강한 ‘광주’를 바라는 이들이 점점 더 많이 축구장을 찾으리란 기대다. 이 감독은 “팬들을 위해, 선수들이 빛나기 위해 1부에서도 공격 축구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 팬들이 광주의 여정에 더 많이 함께할 거란 믿음 때문이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감독이지만, 그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건 이 말이었다. “우승 행사가 열리는 9일 홈경기장에 많은 팬이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이정효는 이제야 진짜 본게임을 시작할 채비를 끝냈다. 팬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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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효 광주FC 감독과 팬들. 광주F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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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 이정효 감독 프로필

- 소속 : 광주FC

- 생년월일 : 1975년 7월23일

- 선수경력 : 부산 아이파크(1999∼2009)

- 지도경력 : 아주대학교 축구부 코치(2011∼2012)

아주대학교 축구부 감독(2012∼2014)

전남 드래곤즈 코치(2015)

광주FC 수석코치(2016)

성남FC 수석코치(2018)

제주 유나이티드 수석코치(2020)

광주FC 감독(20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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