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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윤석열 정부, EU 택소노미 일부만 가져갔다…원전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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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유럽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스

주한 유럽연합 대사 인터뷰


한겨레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스 주한유럽연합대사가 9월29일 오후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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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을 대표해 한국에 파견된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스(59) 대사의 한반도 담당 경력은 10년이 넘는다. 첫 인연은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던 2000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당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한반도 담당관으로 일했다. 2005~2008년엔 유럽연합 주한 대표부 차석으로 와 남북 간의 정치·경제 협력 분야 업무를 도맡았다. 한국과 인연이 긴 만큼 민요 ‘아리랑’을 좋아하고, 남북 간 협력의 필요성을 중시한다. 카스티요 대사는 “유럽연합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적극 관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지만, 연이은 미사일 발사로 긴장 수위를 높이는 북한에 대해선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유럽연합 대표부 사무실에서 카스티요 대사를 만났다.

―북한이 최근 잇따라 탄도미사일을 쏘고 있다. 북한과 대화 재개에 대한 유럽연합의 생각은?

“유럽뿐 아니라 한반도에서도 도전적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유럽연합은 항상 (북한에 대한 한국의) 외교적 노력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 소통을 위한 채널과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나오도록 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유럽연합 외교관들이 모두 평양에서 나왔다. 유럽 외교관들이 북한으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 북한은 유엔 회원국으로서 국제법을 준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존이 어렵다.”

―러시아가 끝내 우크라이나 점령지 4개 주를 강제 합병했다.

“(지난달 23~27일 이뤄진) 주민투표는 가짜이고 불법이다. 어떤 유럽연합 국가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나라도 무력으로 (다른 나라) 영토를 합병할 수 없다. 우리는 추가 제재로 맞설 것이다. 유럽연합은 지난달 28일 새 제재(러시아 원유 가격 상한제 등이 포함된 8차 대러시아 제재안)를 발표했다.”

―유럽연합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합병 때도 제재를 했다. 하지만 러시아를 막을 수 없었다.

“당시 제재는 충분히 강력하지 않았다. 현재 제재보다 훨씬 가벼웠다. 러시아는 (유럽의) 중요한 파트너였고, 우리는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살리고 싶었다. ‘민스크 평화 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결국 협정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종잇조각이 됐다. 이런 합의를 깨버리는 나라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겠나? 지금 우리는 전례 없는 수준의, 심지어 러시아 중앙은행 등까지도 포함하는 폭넓고 무거운 제재를 아주 빠르게 부과하고 있다.”

―이번에는 2014년과 다를 거라는 얘기인가.

“물론이다. 우리가 2014년에 이렇게 했더라면 이런 상황을 마주하진 않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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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스 주한유럽연합대사가 9월29일 오후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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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이 동원령을 내린 뒤 러시아인들이 인근 나라로 탈출하고 있다. 이들을 받아줄 것인가?

“전쟁 상황에서 러시아인의 유럽 관광은 용납할 수 없다. 러시아와 비자 간소화 협정을 중단한 이유다. 하지만 (병역 거부자들의) 망명 요청은 있을 수 있다. 러시아인들이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이 하는 선전과 가짜 뉴스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깨닫게 하는 것은 중요하다.”

―최근 우크라이나가 영토 일부를 탈환하는 등 군사적 성공을 거뒀다.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상황이 몹시 어렵다. 계속 러시아에 제재를 가해야 하고, 우크라이나를 경제적·군사적·재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제재가 중요하다. 만약 푸틴이 불법 합병에서 물러선다면 전쟁이 끝날지도 모르겠다. 우크라이나는 자신들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 계속 싸울 거다.”

―유럽연합은 러시아를 강하게 규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와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손해가 될 것이라 말한다.

“러시아는 유럽의 중요하고 가까운 협력 국가였다. 하지만 푸틴이 오늘날 정치적·군사적으로 보여주는 극단적 모습은 분명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러시아가 변하지 않는 한 관계 개선은 가능하지 않다. 알다시피 유럽은 에너지 측면에서 러시아에 크게 의존해왔다. 하지만 더는 아니다. 우리는 에너지 수급처를 다변화하는 등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러시아가 다른 곳에서 시장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유럽에선 안 될 거다. 중장기적으로 러시아에 득 될 것이 없다.”

―지난 3월 유럽연합은 비상사태 대응을 위한 자체 병력인 ‘신속대응군’(Rapid Deployment Capacity) 창설에 합의했다. 향후 유럽군(European Army)을 만들 계획이 있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뒤 유럽은 스스로의 방어와 안보에 더 큰 책임을 느끼고 있다. 동시에 전쟁은 기존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간 관계를 단결시켰다.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하면서 동맹은 더욱 강화됐다. 나토의 안보뿐 아니라 유럽연합의 안보도 강화했다. 유럽연합의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나토와 함께 하는 부분은 매우 크다. 다만, 나토는 지리적으로 한계가 있다. 유럽연합이 안보를 위해 무엇인가 더 기여할 수 있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에 대해선 ‘완충지대’가 사라진다며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완충지대 효과라는 것이 최근엔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완충지대가 있던 때에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유럽군’은 언젠가 이뤄질 이상적인 것(ideal)이다. 이전에 우리는 유럽연합 기금을 군을 위해 쓰지 않았지만, 현재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데 쓰고 있다. 아주 큰 변화다. 아직 우리에게 군은 없지만 전 세계 평화를 지키고 분쟁을 피하기 위해 수행할 군사적·시민적 임무가 있다. 여러 다른 나라에서 온 군인들이 소말리아,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 보스니아 등 각지에 유럽연합기를 달고 나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다양한 군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군사 역량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예를 들어 27개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군사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재정을 한데 모아 하나의 유럽 전차를 만들면, 서로 다른 수십 개 전차를 만드는 것보다 낫다. 재정도 아낄 수 있고 보다 효과적이다.”

―미래에 ‘유럽군’을 만든다는 건가.

“유럽군 자체는 매우 고전적인 형태의 군일 수 있다. (오히려) 여러 나라가 함께 ‘연합군’(joint forces)을 형성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유럽연합 공동의 안전보장전략인) ‘전략적 나침판’(Strategic Compass for Security and Defense)을 통해 우리 앞에 놓인 위협에 대해서 공동평가하는 것이다. 현재 여기까지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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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스 주한유럽연합대사가 9월29일 오후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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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다가오는데 유럽의 에너지 요금이 치솟고 있다.

“러시아는 이미 에너지를 무기화하고 있다. 이제는 덴마크, 스웨덴 인근에 있는 가스관(노르트스트림)을 사보타주(고의로 파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몹시 어려운 겨울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겨울을 대비해) 에너지 보유분을 늘리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시민들에게 소비를 줄여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9월엔 치솟는 에너지 요금으로 인한 일반 시민, 기업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긴급 대책을 내놨다. 각 나라는 사정에 맞게 부가가치세를 깎아주거나 에너지 요금에 상한을 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에너지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 시기를 견디면 그 뒤엔 좀 나을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우리 모두를 위해 이 전쟁에서 싸우고 있다. 유럽연합 시민들도 (고통을 참으며) 세계를 위해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전쟁은 유럽의 안보가 달린 문제다.”

―탈원전에 대한 입장을 묻고 싶다. 유럽연합이 그린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넣었다. 그 뒤 윤석열 정부도 이를 근거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시켰다.

“윤 대통령이 유럽연합 결정의 일부만 가져간 것 같다.(웃음) 중요한 것은 기후 중립이라는 목표다. 유럽연합은 2050년까지 기후 중립을 선언했다. ‘유럽 그린 딜’(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 목표)이라는 법도 있다. 우리의 주 관심사는 재생에너지다. 2030년까지 전체 에너지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45%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그러려면 투자가 필요하다. 공적 자금만으로는 안 된다. ‘민간 투자’ 또한 필요하다. 그린 택소노미라는 건 탄소 중립이라는 목표 아래 민간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필요한 인센티브를 정하는 규정이다. 유럽연합의 그린 택소노미는 대부분 재생에너지에 관한 내용이다. 에너지 전환기에 필요한 원전과 가스에는 여러 엄격한 조건이 붙었고 그마저도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한국 정부는 원전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밀고 나가려 한다. 논쟁은 많지만 원전은 한계가 있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고작 4% 정도로 매우 낮다. 더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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