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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스타트업 리포트] '표절 없는 AI작곡가 등장' AI 작곡시대 연 허원길 포자랩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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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개발한 작곡용 AI, 영화 드라마 게임음악 등 3,500곡 작곡
어려서 피아노 배워 직접 작곡 "누구나 작곡하는 세상 만들 것"

최근 유명 작곡가들의 표절 시비로 인터넷이 시끄러웠다. 그 바람에 주목을 받은 곳이 작곡용 AI를 개발한 이색 신생기업(스타트업) 포자랩스다. AI가 그림, 문학, 영화 제작에 이어 작곡까지 진출한 것이다.

2018년 회사를 창업한 허원길(29) 포자랩스 대표는 표절이 없는 것을 AI 작곡의 장점으로 내세웠다. 서울 선릉역 인근에 위치한 포자랩스 사무실에서 허 대표를 만나 유명 작곡가들도 벗어나기 힘들다는 표절 시비에서 AI가 자유로울 수 있는 비결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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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길 포자랩스 대표가 서울 선릉역 인근 사무실에 마련한 방음 스튜디오에서 AI가 작곡한 곡을 확인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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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논란 없는 유튜브 배경음악 '비오디오' 제공


포자랩스는 한마디로 AI로 음악을 만드는 회사다. "음악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도 작곡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목표죠. 원하는 장르와 주제를 선택하면 AI가 작곡을 해줘요. 노래를 만들고 싶으면 가사를 써주면 되죠."

이를 위해 허 대표는 우선 유튜브 창작자들을 겨냥해 지난 6월 말 월 일정액을 내면 이용할 수 있는 AI 배경음악 구독 서비스 '비오디오'(viodio)를 선보였다. "AI가 유튜브 영상에 배경음악으로 사용할 만한 곡을 만들어줘요. 영상 편집 소프트웨어를 컴퓨터(PC)에서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우선 PC를 이용해 신청할 수 있도록 했어요. 나중에 스마트폰도 지원해야죠."

유튜브 배경음악 개발을 먼저 시작한 이유는 영상 제작자들을 저작권 문제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서다. BTS 등 유명 가수들의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면 좋지만 사용료가 너무 비싸다. "유튜브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이 배경음악입니다. 영상에 어울리는 저작권에서 자유로운 음악을 사용하려면 인터넷에서 수백 곡을 찾아 들어봐야 해요. 이런 고민에서 해방돼 누구나 저작권 걱정 없이 배경음악을 사용하도록 돕고 싶었죠."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홈페이지에 접속해 원하는 분야별 곡을 고르면 된다. "곡이 장르별로 나눠 저장돼 있죠. 또 여행, 브이로그 등 영상 주제별로도 저장돼 있어서 영상에 적합한 음악을 쉽게 고를 수 있어요."

비오디오에서 제공하는 음악은 약 500곡이다. "매주 10~20곡씩 AI가 작곡한 음악을 올려요. 시간이 갈수록 제공하는 음악이 늘어나죠."

이용료는 한 달 동안 몇 곡을 사용하든 상관없이 월 1만2,900원이다. 다만 악기를 빼거나 추가하는 등 음원 편집 기능이 필요하면 월 1만9,900원으로 요금이 올라간다. "회원 가입 후 두 달간 무료로 써본 뒤 이후에 돈을 내면 돼요. 이용 범위도 제한 없어요. 유튜브 영상의 배경음악은 물론이고 광고 등에도 쓸 수 있어요."

표절 없는 AI의 작곡 비결


포자랩스는 사무실도 독특하다. AI 개발자뿐 아니라 작곡가들이 직원으로 일한다. 작곡가를 뽑은 이유는 AI의 작곡을 돕기 위해서다. "전체 직원 35명 중 클래식과 실용음악을 전공한 작곡가 12명으로 구성된 작곡팀이 있어요."

허 대표가 작곡팀을 만든 이유는 AI의 표절을 없애기 위해서다. "이미 나와 있는 곡으로 AI를 학습시키면 빠르지만 문제가 생겨요. 기성곡들도 가르치면 AI가 비슷하게 작곡하면서 표절 문제가 발생할 수 있죠. 그래서 일체 기성곡들을 배제하고 작곡팀이 일일이 새로 가르쳐요."

작곡팀은 AI가 곡을 쓸 수 있도록 화성, 리듬, 멜로디, 박자 등을 입력해 가르치는 AI의 음악 스승들이다. 이들의 책상 위에는 다른 스타트업에서 볼 수 없는 건반이 놓여 있다. 각자 헤드폰을 낀 채 애플의 아이맥에 연결된 건반을 이용해 AI의 작곡을 돕는다. "작곡팀은 AI가 작곡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재료를 공급해요. 또 AI가 작곡한 음악이 문제없는지 확인도 하죠."

그래서 사무실이 하나의 커다란 녹음 스튜디오 같다. 사무실 출입문이 육중한 금속으로 돼 있고 천장에 커다란 스피커가 달려 있다. 한쪽에 오디오 시스템이 설치돼 있으며 음악 녹음을 위한 3개의 방음 스튜디오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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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자랩스는 특이하게 12명의 작곡가로 구성된 작곡팀이 있다. 작곡팀원들이 AI가 작곡할 수 있도록 재료를 제공하고 AI가 작곡한 곡들을 확인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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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드라마 영화 게임음악 등 3,500곡 작곡


포자랩스의 핵심은 작곡할 수 있는 AI 엔진 '디오AI'다. 허 대표는 2018년부터 5년에 걸쳐 작곡용 AI를 직접 주도해서 개발했다. "창업 전부터 AI를 개발했어요. 실패도 많이 겪었죠. 지금도 기능을 계속 개선하고 있어요."

디오AI는 기업들을 위한 별도 작곡도 해준다. "기업들에 따로 의뢰를 받아 AI가 영화와 드라마 배경음악이나 게임, 광고, 각종 영상콘텐츠에 필요한 음악을 만들어 줘요. 현재 대기업 등 10여 개 기업이 비오디오를 비롯해 AI 작곡 서비스를 이용하죠."

지난 1년간 디오AI가 기업들을 위해 작곡한 곡은 배우 소지섭이 출연한 MBC 드라마 '닥터 로이어' 등 무려 3,500곡에 이른다. "각 기업들과 비밀유지협약을 맺어서 일부를 제외하고 어떤 작품에 AI가 작곡한 곡이 쓰였는지 말할 수 없어요. TV나 유튜브를 보면 디오AI가 만들어준 음악들이 자주 나와요."

기업들은 곡당 작곡료를 따로 낸다. "기업들의 작곡료는 곡당 5만 원이지만 월간, 연간 등 계약 기간과 사용 목적에 따라 모두 달라요. 연간 수천만 원을 내는 기업도 있어요." 이 같은 실력을 인정받아 허 대표는 네이버, 본앤젤스, KB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수십억 원의 시리즈A의 전 단계인 프리 시리즈A 투자를 받았다.

AI 저작권은 풀어야 할 과제


그렇다면 AI 작곡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이를 위해 허 대표는 최근 무기명 시험을 했다. "20명의 음악 교수들과 평론가들이 평가자로 참여해 여러 AI 작곡 서비스를 놓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어요. 평가자들은 다른 AI 작곡 서비스의 곡들이 어색했는데 디오AI가 작곡한 곡은 사람이 만든 곡과 구별하기 힘들다는 반응이었죠."

AI 작곡에서 민감한 문제는 저작권이다. 아직까지 AI 저작권에 대해 정해진 것이 없다. 다만 법적으로 사람이 아닌 기계의 저작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허 대표는 AI가 만든 곡의 저작권을 포자랩스와 작곡 의뢰자 명의로 등록한다. "비오디오에 등록된 곡들은 회사 명의로 저작권을 등록했어요. 따로 작곡을 주문한 경우는 의뢰자 명의로 저작권을 등록했죠."

해외에서는 AI의 저작권을 인정한 경우도 있다. "프랑스는 AI 저작권을 인정해요. 그래서 프랑스에 가서 AI 저작권을 등록할 수도 있죠."

허 대표는 AI도 저작권을 등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금은 가상의 존재가 저작권을 등록할 수 없어요. 이러면 프랑스처럼 AI 저작권을 허용하는 해외로 다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AI의 저작권 등록을 인정해 줄 필요가 있어요."

AI 작곡이 늘어나면 작곡가들의 설 자리를 위협하지 않을까. 허 대표는 AI와 협업을 통해 작곡가들에게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으로 본다. "AI 작곡 덕분에 전 세계 8,000만 명의 유튜버를 겨냥한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겁니다. AI가 작곡가들의 작곡시간을 줄여주죠. 반대로 AI가 만든 음악의 품질을 높이는 일에 작곡가들이 필요해요. 이를 위해 작곡가들용 AI 도구를 개발하고 있어요. 작곡가와 AI가 협업하면 음악의 가치를 올려 시장을 넓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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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길 포자랩스 대표의 꿈은 누구나 AI로 작곡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좋은 곳에 가면 사진을 찍어 추억을 남기듯 즉석에서 AI로 음악을 만들어 추억을 만드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고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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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피아노 배워 직접 작곡


허 대표는 오랫동안 피아노를 연주하고 고교 시절과 대학생 때 밴드 생활을 할 만큼 음악과 인연이 깊다. 주말마다 카페에 나가 작곡을 해서 서너 곡의 창작곡도 갖고 있다. "5세 때부터 학원을 다니며 피아노를 배웠어요. 너무 재미있어서 전공까지 생각했죠. 어머니가 취미로만 하라고 말려서 연세대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어요. 공상과학 영화를 좋아해 AI에 관심이 많아 제대로 배우고 싶었죠."

그는 대학 시절부터 창업을 꿈꿨다. "구글의 알파고 이후 AI 바람이 불어서 AI와 관련 있는 창업을 하고 싶었어요. 처음에 신약과 음성합성 분야의 AI를 개발했는데 박사들이 경쟁하는 분야에서 학부생이 눈에 띄기 어렵고, 신약 전문가 확보 등 인맥의 한계에 부딪혔어요. 그래서 좋아하는 음악 사업으로 방향을 틀었죠."

좋아하는 일과 사업이 연결되자 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2017년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개최한 음악 주제의 소프트웨어 공모전에서 작곡 프로그램으로 상을 받으면서 사업 기회를 발견했어요. 이듬해 창업하고 작곡 AI를 본격적으로 개발했죠."

사업을 시작하면서 음악 이론도 따로 공부했다. "음악적 토대가 아주 중요해서 작곡가들에게 과외를 받았어요. AI 개발에 중요한 밑바탕이 됐죠."

허 대표의 경험은 사내에 특별한 교육 문화를 만들었다. 작곡팀과 AI 개발팀이 서로 음악과 AI를 가르치는 것이다. "작곡가들이 개발자들에게 매주 1회 음악 이론을 강의해요. 개발자들은 작곡가들에게 AI를 가르치죠. 개발자들도 힙합 동아리 활동을 하는 등 음악에 관심이 많아 음악 수업을 좋아해요."

앞으로 허 대표는 AI를 이용해 수면 음악을 개발하고 목소리가 들어간 노래까지 만들 예정이다. "수면 장애를 해결할 수 있는 음악을 개발하고 있어요. 또 AI가 노래까지 부른 서비스도 개발할 예정입니다."

내년에 해외 시장 진출 계획도 갖고 있다. "국내 사업이 성과를 보이면 내년에 북미와 유럽에 비오디오 서비스를 선보일 생각입니다."

개인적인 꿈은 사람들이 음악으로 추억을 남기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사진을 찍어 추억을 남기는 것처럼 여행이나 기념할 만한 곳에 들르면 AI를 이용해 현장 분위기를 반영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죠. 즉 작곡하는 놀이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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