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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송혁기의 책상물림] 섬기기 쉬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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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드라마에 나오는 권력자들은 날선 호통 한마디로 아랫사람을 어찌할 줄 모르게 만드는 능력을 보인다. 극적 설정을 위한 것이겠지만, 격한 감정이 실린 지적을 수시로 내리꽂는 사람을 섬기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주변 사람이 모두 리더의 기분이 어떤지, 어떻게 해야 지적받지 않을지 살피기만 하는 조직이 있다면 그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공자는 군자와 소인의 결정적인 차이 가운데 하나를 이렇게 제시했다. “군자는 섬기기는 쉬워도 기쁘게 하기는 어려우며, 소인은 섬기기는 어려워도 기쁘게 하기는 쉽다.” 말초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소인의 경우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욕망만 채워주면 되니 기쁘게 하기 쉽다. 하지만 작은 이익에도 그것이 정당한지 아닌지 따지는 군자를 기쁘게 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군자는 이상이 원대해서 눈높이도 높을 텐데 섬기기가 쉽다고 한 까닭은 무엇일까? 소인을 섬기기 어려운 이유는 아랫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갖추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무엇 하나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만 눈에 띄면 곧바로 지적하곤 하니, 아랫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이 맡은 일을 다 하고도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군자는 각 사람의 역량을 헤아려서 거기에 맞는 역할을 부여할 뿐 그것을 벗어나는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눈치를 볼 일이 없으니 섬기기 쉬운 것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면 참으로 군자답지 않은가!” <논어>의 첫 장으로 널리 알려진 구절이다. 초기의 일부 주석에서는 “군자는 섬기기 쉽다”는 대목과 연관하여 “역량이 부족해서 가르침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너그럽게 대한다”는 의미로 이 구절을 풀이했다.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이나 자신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내면이 지극히 충실해서 아무런 콤플렉스도 없는 사람이어야 자신의 마음도 평안하고 남들도 그를 대하기 편안한 것이다. 내적 결핍이 클수록 기쁘게 하기는 쉽지만 섬기기는 어려운 사람이 되어 간다. 주변 사람에게 나는, 기쁘게 하기 쉬운 사람인가, 섬기기 쉬운 사람인가?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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