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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투데이 窓]전통문화와 과학기술 융합, 다름에서 구하는 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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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현우 KIST 융합연구정책센터 소장]
머니투데이

김현우 KIST 융합연구정책센터 소장1


1916년 겨울, 미국의 유명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일본을 방문했다. 그는 조선에서 금융과 벌목 등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오쿠라 기하치로의 '데이고쿠호텔' 건축을 맡고 있었다. 다다미방에서 맞은 겨울은 혹독했다. 오쿠라는 추위에 떠는 라이트를 '코리안룸'으로 안내했다. '코리안룸'은 오쿠라가 강탈해 일본에 옮겨 놓은 경복궁의 자선당이었다.

"기온이 갑자기 바뀐 것 같았다. 난방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기후적 사건이었다." 온돌방을 경험한 프랭크의 소감이었다. 아픈 역사에서 세계에 전해진 우리의 전통 온돌은 온수 파이프 방식으로 재탄생했다. 한국의 온돌 난방법은 2008년 국제표준기구 기술위원회(ISO/TC)에서 국제표준으로 제정됐고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슬픔 속에서도 빛난 한국 문화는 21세기 들어 위세를 떨치고 있다. 2020년 한국의 영화 '기생충'은 오스카시상식에서 비영어권 영화 중 최초로 작품상을 수상했다. '오징어 게임'은 에미상 6관왕에 올랐다. BTS(방탄소년단)와 블랙핑크로 대표하는 한국의 음악은 빌보드 차트를 차례로 석권했다. 원초적 자극이 판치는 세계 음악시장에서 K팝은 올곧은 음악의 표상이 됐다.

대중문화 전문가는 한국의 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높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일부 국가에 국한된 것으로 여긴 한류가 세계로 확산할 수 있었던 경쟁력을 한국 전통문화에서 찾았다. 우리 영화, 드라마, 음악이 해외 문화를 흉내 내고 좇았다면 지금과 같은 경쟁력을 갖출 수 없었음이 자명하다.

'축적의 시간'으로 한국의 문제를 진단하고 '축적의 길'로 해결책을 제시한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는 '최초의 질문'으로 선도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을 제시했다. 지금껏 다른 나라가 던진 질문을 효율적으로 해결함으로써 발전했다면 이제는 우리가 새로운 질문을 제시하는 단계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무(無)에서 출발하는 창의로 새로운 질문을 만드는 일은 지극히 어렵다. 그렇기에 무(無)가 아닌 다름에서 창의를 구할 수 있는 우리 전통문화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전통문화의 가치를 온전히 평가하지 않았다. 최근 일련의 경사로 우리 전통문화가 세계인에게 신선한 매력을 선사하고 상업적인 경쟁력이 있음을 확인했다. 이제 전통문화를 국가발전의 한 축으로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

전통문화 기반의 국가전략이 새로운 것만은 아니다. 영국, 유럽, 일본 등은 새로운 산업창출의 원천으로 전통문화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전통문화 기술과 첨단 과학기술의 융합에는 두 유형이 있다. 첫째, 스핀인(Spin-In) 접근으로 전통문화 제품을 첨단 과학기술로 혁신한다. 세계 고급 도자기 시장을 석권한 영국 본차이나가 좋은 예다. 전통 도자기 기술에 대체소재를 발굴하고 단단함과 화려함을 더할 수 있는 유약성분을 개발해 적용했다.

둘째, 스핀아웃(Spin-Out)이다. 전통문화에 숨어 있는 슬기를 첨단 과학기술로 발전시켜 신산업을 창출하는 접근이다. 일본 기업 후쿠다금속박분공업은 병풍, 건축, 옷감 등 그들의 전통문화에 활용된 금박기술을 토대로 첨단 IT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핵심소재를 만들어냈다. 또 아사히글라스는 고급 식기류와 장식품에 활용된 고온산화물 유리화 기술을 첨단 디스플레이 기술로 재탄생시켰다.

2016년 우리 정부는 전통문화 산업을 혁신할 원천기술의 연구·개발사업을 시작했다. 올해부터 원천기술은 물론 연구성과 사업화까지 범위를 확대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다부처 융합연구 사업에 주목한다.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 소원하신 우리나라는 강국과 부국을 넘어 문화대국이었다. 일본의 식민지라는 상황에서 문화의 힘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는 목표는 불가능해만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끝내 이뤄나가고 있다.

김현우 KIST 융합연구정책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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