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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시시각각] 대통령의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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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은 “구두 밑창이 닳도록 일하자”고 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민생 현장을 부지런히 다니고 있다. 하지만 국정 수행 지지율은 20%대를 맴돈다. 대통령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잦은 구설과 끝없는 정쟁에 휩싸여 그 노력이 부각되지 않고 있다.

이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돌파구는 무엇일까. 도깨비 방망이는 없다. 지금처럼 꾸준히 민생 현장을 챙기고 국민과의 소통에도 힘쓰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강렬한 화두(話頭)가 빠져선 안 된다. 맹숭맹숭해서는 어떤 어젠다를 내놓아도 정쟁의 소용돌이에 파묻혀 버리고 만다. 순방 후 첫 출근길에서 윤 대통령은 해외 자본에 대한 국내 투자유치 활동,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불이익 해소 노력을 설명했다. 하지만 강렬한 화두가 되지 못했다. 격랑이 몰아치는 경제위기에 대한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제 출근길 문답에서 “24시간 비상체제로 잘 운영해 나가겠다”고 했지만 덧붙이는 말에 그쳤다.

모든 국민이 대통령의 입 주목

메시지마다 신중하고 정교해야

지금은 경제 이슈에 집중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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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4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출근길 문답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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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경제는 풍전등화에 직면하고 있다. 급기야 글로벌 경제매체가 비상벨을 울렸다. 블룸버그는 한국의 원화와 태국 바트화가 아시아 외환위기에 가장 취약하다고 콕 집었다. 이 사이렌이 한국을 공격하라는 신호탄이라도 된 듯 최근 원-달러 환율은 1450원을 넘보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연내 최대 4.5%까지 올리면, 한국은행이 추격 인상에 나서 한·미 금리 격차가 좁혀져도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전직 금융위원장을 만나는 장면을 언론에 연출한 데 이어 지난 1일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과 콘퍼런스콜을 통해 금융 불안이 심화할 경우 유동성 공급 협력에 나서기로 했다. 요컨대 대비하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건데 안심이 안 된다. 경제 상황이 너무 나쁘고 정쟁이 격화하고 있어서다.

1997년 외환위기가 그랬다. 해외 언론과 외국계 금융사가 경보음을 울렸지만, 관료들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괜찮다”고 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국가부도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정작 펀더멘털이 탄탄한 편이다. 당시 500%가 넘던 주요 기업의 부채비율은 200% 아래로 낮아졌다. 더구나 대기업은 아예 판매수익을 외화로 보유하고 있다. 막상 외환위기가 닥치면 정부는 환란의 방패막이가 되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때의 학습효과다. 반도체·배터리·자동차 등 핵심 제조업 역량도 25년 전과는 비할 바 아니다.

하지만 환율 불안이 커지면 펀더멘털은 무용지물이다.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10월 4692억 달러를 정점으로 감소세다. 환율이 흔들리자 기업은 투자를 멈추고 현금 확보에 나섰다. 무역수지는 6개월 연속 적자다. 15대 수출 품목 중 10개 품목의 수출이 감소세다. 블룸버그의 비상벨이 양치기 소년이 아닐 수 있다. 주택담보대출은 7%를 돌파했다. 영끌족에겐 이미 경제위기가 현실이 됐다.

지금이야말로 대통령의 화두가 중요하다. 비상경제 체제가 말로만 그칠 게 아니라 매일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해야 한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정부와 장관을 움직이고 국회에 영향을 미친다. 대통령이 경제 이슈에 집중하면 여론의 판이 바뀔 수 있다. 혼잣말 ‘비속어’ 논란이 바로 그 방증이다. 객관적으로 MBC의 자막이 확인되지 않지만, 야당은 혼잣말을 빌미로 총공세를 퍼붓고 있다.

감사원의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조사로 신구 권력의 충돌은 더 격화하고 있다. 그래도 돌파구는 윤 대통령의 화두에서 열어야 한다. 야당에는 진솔하게 협조를 구해야 한다. 읍소와 감동 앞엔 강경한 목소리도 누그러들기 마련이다. 한 가지 덧붙이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처럼 화두를 꺼내기 전엔 항상 참모들과 논의해 정교한 메시지를 준비해야 한다. 대통령에겐 즉흥적 독백도, 카톡 문자도 정쟁의 빌미가 된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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