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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손현덕 칼럼] 1998년, 不明과 迷惑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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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우리나라가 예상을 깨고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낸 적이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외환위기 와중, 1998년이다. 401억달러, 국내총생산(GDP)의 10.4%였다. 나중에 GDP 집계 방식이 바뀌어 분모가 커져서 그렇지 당시 기준으론 12% 정도였다. 사상 최고치다.

그해 3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경상수지를 259억달러 흑자로 전망한다. 발표가 나자 대부분 언론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응했다. 경제가 금방 무너질 것 같은데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는 톤으로 사설과 기사를 쏟아냈다. 결국 정신 나가고, 말 안 되는 소리를 한 건 KDI가 아니라 언론이었다.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단순하다. 환율 때문이었다. 외환위기 전 경상수지는 사실상 8년 연속 적자 행진을 한다. 위기가 엄습하자 정부는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을 붙들어 매고자 했다. 그러나 불가항력.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짓을 했다. 결국 둑이 터졌다. 달러당 800원대 환율이 한때 2000원대까지 치솟았다. 속된 말로 곡소리가 난 것이다.

외환위기가 나기 전, 그러니까 1996년 말 당시 김영삼 정부가 들고나온 카드는 '10% 경쟁력 향상'이었다. 이석채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은 경제위기의 신호를 읽고 이를 돌파하기 위해 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탈피를 주창했다. 환율이라는 가격의 자동 조절 기능에 맡기질 않았다. 환율을 올리면 수출기업에 유리하고 수출기업은 대부분 재벌이고 그들이 쉽게 돈을 벌게 놔둘 수 없다는 논리였다. 이 수석은 세월이 흐른 뒤 자신의 처방이 잘못됐음을 시인했다. 경쟁력 향상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그건 장기적 과제고 숨넘어가는 단기에선 소용없는 정책이었다. 환율은 하루에 10%도 오르지만 경쟁력은 그렇게 오르는 변수가 아니다.

결국 정부는 외환시장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스무딩 오퍼레이션'이란 미명하에 하루에 약 1원 정도씩 올리는 웃픈 사태까지 빚어진다. 당시 외환당국자는 사석에서 "하루 2~3원 오르는 꼴은 못 본다"고 말했다. 그래서 막을 수 있는 환율이 아니었다. 투기꾼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투기는 환율의 수위가 아니라 기대(expectation)에 의해 발생한다. 다들 환율이 오른다는 걸 아는데 그걸 정부가 붙들어 매고 있으니 투기꾼은 투기가 아니라 안정적 투자로 돈을 벌게 된 셈이다. 리스크 전혀 없이. 한국 외환시장은 최상의 놀이터였다.

더 나아가 환율 상승을 막는 게 바람직하지도 않았다는 점은 1998년 우리나라의 경상수지가 적자에서 대규모 흑자로 돌아선 사실이 입증한다. 환율이 올라 이변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변은 언론에나 이변이지 냉정하게 상황을 지켜본 경제학자들에게는 당연한 결과였다. 당시 경제수석을 지낸 고(故) 강봉균 씨는 환율이 오르면 수출이 느는 것만 신경 썼지 수입이 억제되는 건 간과했다. 그해 수입은 놀랍게도 511억달러나 급감했다. 강 수석은 본인의 오판을 변호하기 위해 '불황형 흑자'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이 당시 KDI의 거시팀장이 조동철 전 금융통화위원이다. 그는 정부 외환당국자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환율이 올라가면 무슨 문제가 생기죠?"

"그러면 신문 1면 톱에 기사가 나옵니다."

"그러면 또 무슨 문제가?"

"그걸 대통령이 봅니다. 그러면 우리한테 전화가 오고…."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정치인과 관료들. 사리에 어두운 불명(不明)과 헷갈려 갈팡질팡대는 미혹(迷惑)의 세월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외환위기를 맞았고 뒤늦게야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깨달았다.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환투기 세력이 공격할까 봐 걱정하면서 그들에게 판을 깔아주는 모순과 불합리. 24년 전 기억이 너무나도 생생하다. 나는 여전히 환율 걱정보다는 환율을 걱정하는 정치인과 관료들이 더 걱정된다.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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