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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view] 괌보다 멀리 쐈다, 북한 또 미사일 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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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북한이 4일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해 일본 열도를 넘어가자 공군 F-15K 전투기가 대북 경고 메시지로 공대지 합동직격탄 을 투하하는 정밀 폭격훈련을 벌이고 있다. [사진 합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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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4일 오전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한 발을 발사해 일본 열도를 넘겨 태평양에 떨어뜨린 것은 평양의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대한 도발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이날 발사된 IRBM이 북한이 지금까지 정상 각도(30~45도)로 쏜 탄도미사일 가운데 가장 먼 거리인 4500여㎞를 날아갔기 때문이다. 최고 고도는 970여㎞, 최고 속도는 약 마하 17로 탐지됐다. 이날 IRBM 발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유사시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沖縄)의 유엔군사령부 후방기지, 미국 전략자산이 있는 괌 기지를 얼마든지 타격할 수 있음을 과시하며, 한·미·일 동맹을 위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평양과 괌의 거리는 3400㎞ 정도다.

북한의 IRBM 발사는 지난 1월 30일 이후 약 8개월 만이며, 일본 열도 통과는 2017년 9월 15일 ‘화성-12형’이 홋카이도(北海道) 상공을 넘어간 이후 5년 만이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이 이날 오전 7시23분쯤 자강도 무평리 일대에서 쏜 IRBM은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의 아오모리(靑森)현 상공을 지나 오전 7시44분쯤 그 동쪽으로 3200㎞ 떨어진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밖 해상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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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대응에 나선 한·미군 당국이 F-15K와 F-16 전투기를 각각 동원해 공격편대군 비행을 하고 있다. [사진 합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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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북한의 IRBM 발사는 ‘한·미 연합훈련, 한·미·일 연합 대잠수함 훈련에 겁먹지 않는다. 우리 핵과 미사일로 충분히 제압한다. 핵보유국으로서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정치적 시위의 성격이 강해 보인다. 지난달 25일부터 최근 열흘 새 다섯 차례, 이틀에 한 번꼴로 ‘소나기 미사일 발사’를 하던 북한이 IRBM까지 쏘면서 도발 강도를 끌어올린 것은 향후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은밀한 타격이 가능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시험발사나 7차 핵실험을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계획된 수순에 따라 도발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국가정보원은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한다면 10월 16일(중국 공산당 제20차 당대회)부터 11월 7일(미국 중간선거) 사이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미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운영하는 북한 전문 매체인 ‘분단을 넘어(Beyond Parallel)’는 지난 3일 상업위성 ‘에어버스 네오’ 영상을 토대로 북한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지난달 활동이 증가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과 한국은 북한이 풍계리 3번 갱도에서 핵실험 준비를 이미 마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 열흘동안 다섯차례 도발…ICBM·핵실험만 남았다

북한이 이번 IRBM 발사를 신호탄으로 앞으로 본격적으로 도발 수위를 높일 경우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국제사회의 안보 위기가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핵 사용의 문턱을 지속해 낮춰 한·미·일 동맹에 대한 위협을 극대화하면서 핵·미사일 기술을 급속도로 발전시키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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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이번 IRBM 발사는 핵 능력 고도화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판단된다”며 “앞으로 ICBM·SLBM 발사와 7차 핵실험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2017년 잇따른 탄도미사일 발사로 한반도를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몰았던 북한이 이번엔 더욱 고도화한 미사일로 동북아시아와 국제사회까지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주목되는 것은 앞서 북한이 SRBM을 발사하면서 패트리엇(PAC-3 MSE) 등 한·미의 기존 미사일 방어체계로 탐지가 어려운 비행고도 30~50㎞ 사이의 구간을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한·미의 감시역량과 대비태세의 틈을 노릴 수 있는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나 에이태큼스(KN-24), 초대형 방사포(KN-25) 등 신형 무기 3종을 선보였다.

미사일 전문가인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는 “비행거리와 고도, 속도를 보면 북한이 2017년 처음 발사한 IRBM인 화성-12형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1월 30일에도 자강도 무평리 일대에서 화성-12형을 발사했다. 화성-12형은 북한이 지난 1월 30일 이른바 ‘검수사격시험’을 하면서 발사했던 것과 같은 종류다. 북한은 2017년 8월 네 발의 미사일로 괌을 포위 사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던 바로 그 기종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북한이 일본 상공을 통과하는 미사일을 쏜 것 자체가 한·미·일의 대북한 밀착 행보에 대한 반발과 대응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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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실제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8일 최고인민회의(제14기 7차) 시정연설에서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군사적 공갈이 가중될수록 그를 억제하기 위한 우리의 힘도 정비례해 계속 강화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미·일이 북한에 대한 대응수위를 높일수록 북한도 그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반발 수위를 높일 것임을 밝힌 셈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은 상대가 자신을 향해 어떤 공세나 훈련을 펼치느냐에 따라 맞춤형 대응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까지 가세해 한·미·일 훈련을 재개했다는 것에 대해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가 상당히 필요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한·미는 북한 IRBM 발사에 대응해 연합 공격편대군 비행과 정밀폭격 훈련을 했다고 밝혔다. 합참에 따르면 이번 훈련에는 공군의 F-15K 4대와 미 공군의 F-16 전투기 4대가 참가했으며, 공군의 F-15K가 서해 직도사격장의 가상 표적에 공대지 합동 직격탄(JDAM) 두 발을 발사하는 정밀폭격 훈련을 했다.

합참은 “한·미는 이번 연합 공격편대군 비행 및 정밀폭격 훈련을 통해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의지와 동맹의 압도적인 전력으로 도발 원점을 정밀타격할 수 있는 능력과 응징태세를 갖추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자평했다.

이날 북한 SRBM 발사와 관련해 미 백악관은 국가안보실(NSC) 대변인 성명을 내고 “무모한” “위험한” “노골적인” 등의 표현을 쓰며 북한 도발을 “강력히 규탄”했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북한의 탄도미사일과 관련한 백악관의 성명엔 “외교를 향한 문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북한은 협상 테이블로 나오라”는 메시지가 담겼지만 이날 성명엔 이런 유화적 수사가 사라졌다.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국무부 차관보는 이날 한 포럼에서 “북한에 조건 없이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해왔으나 탄도미사일 발사로 응답했다”고 말했다.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 ‘소나기 발사’에 이어 이날 중거리 미사일로 도발의 급을 높이면서 3국의 공동 대응책 마련도 한층 분주해졌다.

이날 북한의 IRBM 발사 직후 한·미·일은 국가안보실장·외교장관·북핵수석대표 등 각 급에서 서로 소통하며 “단호한 대응”을 약속했다.

이날 한·미, 한·일 외교장관이 긴급 유선 협의를 열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상과의 통화에서 유엔 안보리 차원의 공동 대응 방안을 비롯해 역내·외 안보 협력 강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들도 별도 연쇄 통화에서 “북한이 지난달 8일 핵무력 정책 법령을 발표한 이후 도발 수준을 계속 높이는 데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고 외교부가 전했다. 마침 4일은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동 서명한 10·4 남북 정상선언(남북 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15주년이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이철재·김상진·정영교·박현주 기자 park.hy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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