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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바이든, 美 기술 들어간 첨단 반도체도 中 수출 봉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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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상무부 허가 받아야 수출… 이르면 이번주 강력 제재 발표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수퍼컴퓨터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에 이용되는 첨단 반도체의 대중(對中) 수출을 광범위하게 통제하는 새로운 제재 조치를 이르면 이번 주에 발표할 것으로 3일(현지 시각) 알려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 짓는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오는 16일 시작)를 앞두고,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내세우는 시 주석을 강하게 견제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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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지난달 3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리셉션을 위해 참석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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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기술과 장비를 사용해 생산했다면 해외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해서도 미국 상무부가 수출 통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Foreign Direct Product Rules)’을 동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기술과 장비를 이용하지 않고 최첨단 반도체를 개발·생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제재 범위에 따라서는 전 세계 반도체의 대중 수출을 통제하는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한국 기업의 수출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거론된다. 미 정부는 이와 함께 중국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인 SMIC와 양쯔메모리(YMTC) 등 중국 기업에 14나노미터(㎚) 이하 반도체 생산용 장비를 수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도 함께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이번 조치는 중국 테크기업 화웨이(華爲)에 적용됐던 가혹한 수출 통제보다 더 폭이 넓을 것”이라면서 “FDPR의 적용으로 세계 어디에 있든 미국 기술을 이용하는 기업이라면 미국 정부의 허가 없이 특정한 최첨단 반도체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만약 시행되면 이 조치는 중국의 번성하는 수퍼컴퓨터와 데이터센터 시장을 치기 위해 지금까지 미국이 취한 조치 중 가장 강력한 것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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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전쟁 '핵심 무기' 들어보인 바이든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백악관에서 반도체 업계 대표들과 화상 회의를 하는 도중 실리콘 웨이퍼를 들어 보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수퍼컴퓨터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에 이용되는 첨단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광범위하게 통제하는 새로운 제재 조치를 이르면 이번 주 발표할 것으로 3일(현지 시각) 알려졌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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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전임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서서히 그물망을 좁혀가는 방법으로 중국의 반도체 확보를 차단하는 조치를 연달아 취해 왔다. 지난 2020년 8월 중국 인민해방군과 연계된 회사란 이유로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수출을 차단한 것이 ‘신호탄’이었다. 이때도 ‘FDPR’이 동원됐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등으로부터 반도체 공급을 받지 못하게 된 화웨이는 그 직후 매출이 급감하는 등 사업에 큰 타격을 받았다.

미국은 또 올해 8월에는 미국에 기반을 둔 글로벌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NVIDIA)와 AMD에 인공지능(AI)이나 수퍼컴퓨터에 쓰이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제품을 중국·러시아에 수출하지 말라는 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달 들어서는 KLA, 램 리서치,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등 미국 내 반도체 장비 업체에는 14나노미터 이하 공정이 있는 중국 기업들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한번 FDPR을 동원해 해외 업체들의 대중 수출을 단속하고 나서려는 것이다.

반도체 장비 수출 금지와 관련, 아시아소사이어티의 중국 학자인 오빌 셸은 뉴욕타임스에 “지난 두 달에 걸쳐 미국 당국자들은 최첨단 기술이 아니라 중간급의 반도체를 생산하는 중국 회사들에 대해서도 점점 우려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이런 구형 반도체들도 여전히 무기 체계에 핵심적 부품이기 때문에 당국자들은 중국 회사들이 이런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미국이나 파트너 국가의 기술을 이용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중국 회사들이 글로벌 공급자가 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취할 조치의 구체적 범위와 대상이 아직 발표되지 않아 이번 조치의 파급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불분명하다. 미국이 수퍼컴퓨터나 AI 등 첨단 중의 첨단 분야만을 겨냥한 레이저 제재를 취할 경우 당장 한국 기업들의 매출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낙관적 예상도 있다. 그러나 데이터센터가 제재 대상에 포함되면 국내 업체들도 타격을 피할 순 없다.

이번 조치로 인한 영향이 제한적이더라도, 미국이 중국 등 적성국을 겨냥한 신규 제재를 계속 모색·발표하며 촘촘한 견제망을 구축해 가는 상황 자체가 미·중 양국을 오가야 하는 한국 기업들에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워싱턴의 한국 기업 관련 소식통은 “미국과 중·러 간의 대립이 격화하면서 언제 어디서 어떤 조치가 나올지 예상하기 힘든 환경이 됐다”며 “미래 사업을 계획하는 데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야말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큰 시대가 된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 2월 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제재할 때도 FDPR 방식을 이용했다. 당시 미 상무부는 전자, 통신기기, 암호장치, 센서와 레이저, 항공전자, 우주비행체 등의 분야에서 대러 수출을 광범위하게 통제하는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이는 러시아의 국방 전력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대러 수출 제재에 적극 동참하지 않아 다른 동맹국들과 달리 수출 통제 면제 조치를 처음부터 받지 못했다. 뒤늦게 당시 문재인 정부가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미국과 긴급 협의한 끝에 3월 초에 수출 통제 면제국에 포함될 수 있었다.

☞해외 직접 생산품 규칙(FDPR)

미국 외 국가에서 생산한 제품이라도 미국의 소프트웨어나 원천 기술이 포함됐다면, 미국 정부가 제3국 수출을 통제할 수 있다는 규정. 이를 적용하면 한국 정부는 미국 기술을 사용한 제품을 수출할 때 미 상무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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