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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단독]갈 길 먼 영상재판…판사 5명 중 1명만 “지속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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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장비-홍보부족 등으로 시행건수 제자리걸음

동아일보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영상재판 모습. 법정과 서울구치소를 중계장치로 연결해 진행됐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지난해 11월 대법원의 영상재판 확대 실시로 올해 영상재판 실시 횟수가 늘어났지만 서울중앙지법 등 일부 법원을 제외하고는 참여가 여전히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상재판에 대한 홍보 부족과 법정 내 노후화된 시설 등이 영상재판 활성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일부 법원에 집중된 영상재판

4일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실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전국 법원의 영상재판 실시 건수는 총 3149건이다. 이 중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에서 실시된 영상재판이 628건으로 전체의 19.9%를 차지했다. 서울중앙지법의 경우 1월 영상재판 건수가 18건에 불과했지만 8월에는 172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서울중앙지법을 제외한 다른 법원들의 경우 영상재판이 증가세를 보이다가 다소 정체된 양상이다. 각급 법원의 영상재판 통계를 분석한 결과 전국 35개 법원(고등법원 포함) 중 올해 월 평균 20건 이상 영상재판이 실시된 곳은 7곳(서울중앙지법ㆍ의정부지법ㆍ수원지법ㆍ대구지법ㆍ부산지법ㆍ부산가정법원ㆍ전주지법)이다.

20곳 넘는 법원의 영상재판 월 평균 횟수는 한 자리 수에 머물렀다. 부산가정법원 등 일부 법원은 영상재판 횟수가 올 상반기 크게 늘었다가 7, 8월 들어 다시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코로나19 확산세로 상반기에 영상재판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건 사실”이라며 “관할지역 규모도 다르고 영상재판을 위한 인프라도 다른 만큼 법원마다 영상재판 여건은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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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사 5명 중 1명만 “영상재판, 지속 실시할 것”

법원 내에선 영상재판 시행이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주된 이유로는 재판 당사자들이 여전히 영상재판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과 법정 내 노후화된 장비로 안정적으로 재판을 하기 어려운 환경 등이 꼽힌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영상재판에 대한 판사들의 인식 조사를 위해 지난달 2~6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도 이 같은 인식이 그대로 담겼다. 설문조사에 응한 판사 443명 중 73.1%(324명)는 소송 관계자의 영상재판 확대 실시 인식과 관련해 “내용을 잘 모르고 있다”고 답했다. 영상재판 경험이 있는 응답자의 75.2%는 재판부 직권이 아닌 소송관계자의 영상재판 신청을 인용해 진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 재경지법 부장판사는 “판사들이나 소송 관계자 모두 여전히 영상재판을 생소하게 느끼고 있다”며 “법원 내에서도 주로 영상재판 경험이 있는 판사가 계속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대부분 전용법정 없이 일반법정에서 영상재판을 진행하다보니 노후화된 음향장비 등으로 재판 진행에 차질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영상재판의 단점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31.7%는 ‘시스템 불안정으로 재판 중단 우려’를 꼽았다.

영상재판에 대한 판사들의 인식도 대체로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영상재판을 지속적으로 여러 사건에서 진행할 생각이 있는지에 대해 응답자 22.1%만이 “지속 실시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49.7%는 “여러 사정을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하겠다”, 25.1%는 “여러 염려로 영상재판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했다.

대법원은 법정 내 음향장비 개선을 위해 전국 법원을 대상으로 3차 전수조사를 진행 중이며 지속적으로 노후 장비 교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영상재판 홍보를 위해 하반기 영상재판 홍보 동영상 제작을 추진하고 11월엔 영상재판 확대 시행 1주년 심포지엄, 백서 발간 추진 등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영상재판과 대면재판의 적절한 균형점을 모색해 시대 변화에 부응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영상재판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와 함께 노후화된 장비들을 교체하고, 법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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