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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란 정권의 '반미' 구호, 약발 떨어져... 히잡 자율화로 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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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사망으로 촉발 이란 '히잡 시위'에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교수 "젊은 세대 불만 폭발"
"정권 유화책 쓸 것... 전복 가능성은 낮아"
한국일보

이란 당국이 3일 테헤란 대학에서 벌어진 항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최루가스를 뿌리자 행인들이 자리를 피하고 있다. 국제 사회와 연결이 단절된 이란에서 시위 현장을 촬영한 사진과 영상이 외부로 공유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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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20대 여성이 사망한 사건에 반발한 시위가 급격히 확산되면서 반정부 시위로 번지고 있다. 이란 정권은 "이 시위의 배후에 미국과 이스라엘이 있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강경 탄압 태세로 일관하고 있다. 국제인권단체에서는 과격한 진압으로 인해 이미 시위 참여자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한국의 중동 이슬람 연구 권위자인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4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이란의 현재 시위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래 최대 규모로 불어난 것으로 관측했다. 이란 정권도 위기감을 느끼고 '외세의 개입' 구호를 동원하는 것이 그 증거라고 했다.

이란에서 현재 진행 중인 시위는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에서 비롯된 사건이다. 머리카락이 느슨하게 보이는 히잡을 썼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붙잡혀 갔다가 사흘 만에 의문사하자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강제 히잡 착용에 거부하는 시위가 촉발됐다.

이 교수는 특히 이란의 젊은 세대가 시위의 선두에 나서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현재 미국과의 핵협상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청년 실업률이 급증하고, 작년에 연간 물가상승률이 50%가 넘어서는 등 한계치에 다다른 것"이라면서 시위를 "이란 정권이 가해 왔던 폭압에 대한 젊은 세대의 도발"이라고 규정했다.

대규모 시위의 도화선 역할을 했지만 '히잡 자율화'란 구호 자체가 지닌 의미도 분명하다. 청년과 여성이 히잡을 벗고 긴 머리카락을 자르는 등의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남성과 중장년층 역시 이를 적극 응원하는 모습도 나타난다. 이 교수는 "여성들이 앞장서서 히잡이라는 폭압을 중지하라, 그리고 매일 반미라는 구호로 우리를 옭아맸지만 그걸 뛰어넘어서 정말 진정한 자유와 삶의 기회를 달라 하는 것"이라면서 "이란이 굉장히 가부장적인 사회인데, 여성의 죽음에 남성들이 앞장서서 시위에 참여하거나 격려하고 있다는 것이 새로운 변화"라고 밝혔다.

"근본 해결책은 이란-미국 관계 완화지만... 적대적 공생 관계"

한국일보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3일 테헤란에서 열린 사관학교 합동 졸업식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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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시위를 계획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해 "40년 동안 바뀌지 않은 판에 박힌 선전용어"라면서 "폭압 속의 이란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유일한 구호는 반미인데, 이제는 약발이 다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히잡 시위를 계기로 이란 정부가 어떤 형태든지 유화 정책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면서 "금방 하기는 어렵겠지만, 히잡 (의무화) 해제를 위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에 따르면 이슬람교 국가 57개국 가운데 여성의 히잡 착용을 의무화한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탈레반 정권이 집권한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이란 등 3개국뿐이다.

다만 이 교수는 이번 시위가 정권 전복까지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이유로는 두 가지를 들었다. ①내부적으로 현재로서는 너무 강력한 폭압 정권이기 때문이다. ②외부적으로는 이란의 최대 적대 세력으로 규정되는 미국도 현 이란 정권의 붕괴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이 교수는 "미국과 화해가 가시적으로 있지 않은 한 이란 시위는 해결되기 어렵다"면서 미국과 현 이란 정권의 관계를 '적대적 공생 관계'로 묘사했다. 그는 "미국은 이란 폭압 정권을 계속 억압하면서도, 유지되기를 원하는 정책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면서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사우디나 이스라엘과 협력관계를 강화할 전략적 이득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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