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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브라질 대선 뒤흔든 ‘샤이 보우소나루’…결선투표도 일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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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좌·우를 대표하는 전·현직 브라질 대통령의 맞대결이 30일 결선투표에서 최종 판가름나게 됐다. 왼쪽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 오른쪽은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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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보수정치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67)이 2일(현지시각) 치러진 브라질 대선 1차투표에서 예상을 뒤엎고 ‘깜짝’ 선전을 한 것으로 나타나자,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브라질에서 1차 투표를 앞두고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는 진보진영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76)의 압승을 예상했다. 여론조사 기관 ‘다타폴랴’(Datafolha)은 1차 투표 하루 전 발표한 조사에서 룰라가 50%를 득표해 36%에 그친 보우소나루를 여유있게 제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실제 1차 투표결과는 룰라의 승리는 48.4%대 43.2%로 5% 남짓한 우세에 그쳤다.

상·하 양원 선거도 ‘보우소나루 동맹군’ 강세


보우소나루의 예상 밖 강세가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날 대선과 함께 치러진 상·하 양원 의회선거에서 확인된다. 보우소나루의 정당인 자유당(LP)은 하원(총 513석)에서 98석을 확보해 제1당에 오른 반면, 룰라의 노동자당(PT)은 68석에 그쳤다. 이번에 전체 의석 81석 중에서 3분의 1(27석)을 뽑는 상원에서도 14석이 보우소나루가 지지한 후보에게 돌아갔으며, 룰라를 지지한 후보쪽은 8석에 그쳤다.

보우소나루의 전직 각료도 8명이나 의원에 당선됐다. 특히 히카르두 살리스는 환경장관으로 전례없는 아마존 열대우림 훼손에 책임이 있다는 비판에도 무난히 의회의 문턱을 넘었고, 보건부 장관을 지냈던 에두아르두 파수에유는 코로나19 방역 실패 논란에도 뱃지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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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이 3일(현지시각) 상파울루에서 연설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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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여론조사가 잘못 예측한 것은 그만큼 여론조사에서 제대로 지지후보를 밝히지 않는 ‘샤이 보우소나루 지지자’가 많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관측이 나온다. 보우소나루가 각종 혐오 발언과 망언, 코로나19 방역 실패 등으로 언론의 호된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그의 지지자들이 여론조사기관에 속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보우소나루가 그동안 “투개표 조작 가능성이 많다”며 뜬금없이 선거제도에 대한 불신을 조장해온 것에 영향을 받아, 그의 지지자들이 여론조사 답변을 꺼렸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여론조사를 위한 기초 데이터의 부실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브라질은 인구센서스 조사를 2010년 이후 하지 않고 있다. 원래 10년마다 하도록 돼 있으나, 2020년 코로나19를 이유로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여론조사가 그동안 변화된 인구구성 등을 반영하지 못한 데이터에 기초해 이뤄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부패와 무능…뿌리 깊은 정치권 불신


어떻든 이번 1차투표 결과는 브라질에서 보우소나루의 지지세가 만만찮음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이는 각종 부패 스캔들과 무능으로 얼룩진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이 그만큼 광범하다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보우소나루가 대놓고 사법부 등 기존 체제를 불신하고 거침없는 망언으로 상궤를 벗어난 행동을 보여온 것이,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에 매인 답답하고 부패한 기성 정치와 다른 깨끗한 ‘도전자’ 이미지를 만들어 냈고,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환호한다는 분석이다. 미국 ‘트럼프 현상’의 브라질 판인 셈이다.

선거가 두 진영의 극단적인 대결구도로 치러진 것도 보우소나루에 도움이 됐을 것으로 풀이된다. 선거가 처음부터 룰라와 보우소나루 두 후보간 양자대결로 조명되면서, 유권자들의 사표 심리가 작동해 진보성향의 표는 룰라에게, 보수성향의 표는 보우소나루에게 몰리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실제 이번 1차 투표에서 두 후보를 뺀 나머지 중도 성향의 우파 후보를 포함한 군소후보 9명은 모두 합쳐 8% 득표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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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2일(현지시각) 브라질리아 알보라다 궁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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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 복음주의 개신교가 크게 교세를 확장하며 이념지형이 바뀌고 있는 현실은 보우소나루에 우호적인 정치환경을 조성했다. 브라질은 한때 국민 거의 대다수가 가톨릭 신도였지만, 1950년~1960년대 이후 복음주의가 늘어나기 시작해 현재는 2억1300만 브라질 인구의 31%가 복음주의 신도들로 추정된다. 아직 가톨릭이 51%로 더 많지만, 2032년이면 복음주의 개신교도와 가톨릭 신자의 수가 같아질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이들 복음주의 개신교는 보수적 가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보우소나루의 강력한 지지세력이다. 이번 선거를 앞둔 여론조사에서도 복음주의자들의 보우소나루 지지는 한때 70%에 이르던 2018년 대선 때만은 못했지만, 여전히 룰라를 10% 넘게 앞섰다.

30일 결선투표 “룰라 우세”…이변도 열려 있어


이제 눈길은 약 4주 뒤인 30일 결선투표로 쏠린다. 1차 투표에서 보우소나루가 예상 밖으로 많은 표를 얻었지만, 최종 승부의 추는 룰라 쪽으로 기울 것이란 예측이 많다.

룰라는 1차 투표에서 얻은 표에 185만표를 더하면 50%를 넘겨 무난히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지만, 보우소나루가 50% 이상 득표하려면 약 800만표가 더 필요하다. 1차 투표에서 3위~11위의 군소후보에게 간 표가 990만표인데, 이 가운데 3분의 1은 중도좌파 후보에, 나머지 3분의 2는 중도우파 후보에 갔다. 단순 계산해, 룰라가 중도좌파에 간 표만 흡수해도 무난히 50% 이상을 득표하는 상황이다.

룰라보다 보우소나루를 싫어하는 여론이 더 높은 상황도 룰라에게 유리하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보우소나루를 찍지 않겠다는 응답자가 50%를 넘는 반면, 어떤 상황에서도 룰라를 찍지 않겠다는 응답자는 40% 남짓하다.

그러나 이런 산술적 계산이 실제 결선투표에 그대로 적용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특히 보우소나루가 1차 투표에서 선전하며 몰고온 파장이 기존 선거구도를 뒤흔들 가능성이 남아 있다. 보우소나루를 지지하는 정치인들이 의원선거에서 대거 약진한 상황도 보우소나루 지지세에 새로운 동력이 될 가능성도 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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