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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단독] 온실가스 뿜어댄 기업들, 그 덕에 되레 5600억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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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우원식 의원실·기후환경단체 ‘플랜1.5’

배출권거래제 1·2기 산업부문 450여개 기업

할당량과 2015~2021 배출량 자료 공동분석


한겨레

지난해 기준 산업부문 451개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총 3억2645만톤인 것으로 나타났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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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557만톤(t), 삼성전자 99만톤 등 국내 산업부문 450개 안팎의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1·2차 계획기간(2015~2020년) 동안 정부에서 할당받은 배출권(배출 가능한 온실가스양) 중 2620만톤을 남겼고, 이를 팔아 약 5600억원의 수익(추정치)을 낸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기보다는 정부가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허용 규제를 느슨하게 적용한 결과다. 이 영향으로 2015년 배출권거래제 시행 이후 6년 동안 산업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기업에 배출권을 무상으로 할당하는 비율과 배출허용 총량을 줄이는 쪽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배출권거래제 시행 이후에도 산업부문 온실가스 12.3% 증가


3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기준 산업부문 451개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총 3억2645만톤이었다. 온실가스 배출량 1위 기업은 포스코였고, 현대제철과 삼성전자가 그 뒤를 이었다. 배출권거래제 1·2차 계획기간 동안 배출권거래제가 적용된 450여개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분석해보니, 이들 기업은 해당 기간 동안 2620만톤의 배출권을 남긴 것으로 파악됐다. 배출권 시장거래가격은 1차와 2차 계획기간 동안 톤당 평균 각각 2만279원, 2만5427원이었다. 이 가격을 적용하면 이들 기업이 배출권을 팔아 벌어들인 수익은 5643억여원에 이른다.

<한겨레>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환경부에서 제출받은 배출권거래제 대상 450개 안팎 기업의 배출권 정부 할당량과 2015~2021년 해당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 자료 등을 기후환경단체 ‘플랜1.5’와 함께 분석해 이런 사실을 파악했다. 2015~2020년 기업별 배출권 사용 실태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배출권을 팔아 가장 많은 수익을 남긴 기업은 포스코였다. 이 기업은 배출권거래제 1·2차 계획기간 동안 배출권을 사고팔아 1119억원의 수익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삼성디스플레이는 569억원, 삼성전자는 197억원의 이익을 챙겼을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배출권거래제 도입 취지에 맞춰 온실가스 감축 방안을 지속 추진하고 있으며, 이런 노력을 통해 남은 배출권을 제도에 따라 판매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쪽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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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출권거래제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을 목적으로 2015년 도입됐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지난해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은 6억7960만톤으로 2015년 배출량(6억9260만톤)에 견줘 1.9%(1300만톤)밖에 줄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같은 기간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오히려 증가했다는 점이다. 2015년 2억9079만톤에서 지난해 3억2645만톤으로 12.3%(3566만톤) 늘었다.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48%를 산업부문이 차지한다는 점에서 배출량 감소가 중요하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우원식 의원은 “대표적인 온실가스 저감 정책으로서 배출권거래제의 역할은 매우 미미했고, 제도 운용에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할당총량 자체도 높은데 무상할당도 97~100%


배출권거래제가 유명무실하게 운영된 배경으로는 지나치게 높은 온실가스 배출허용 총량과 배출권 무상할당 비율 등이 꼽힌다. 배출권거래제는 정부가 업종별 또는 부문별 배출허용 총량을 정한 뒤 이를 초과한 기업에는 초과한 양만큼의 배출권을 배출권거래시장에서 사도록 한 제도다. 반대로 할당량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기업은 남은 배출권을 팔아 수익을 낼 수 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할당량을 높게 설정하고 배출권의 97% 이상을 기업에 무상으로 나눠주면서 제도의 효과가 유명무실해졌다. 정부가 쓰레기종량제 봉투를 무료로 풍족하게 나눠준다면, 각 가정에서 종량제 봉투를 사지 않아도 되고 쓰레기를 줄일 유인이 사라져 쓰레기종량제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배출권 무상할당 비율은 배출권거래제 1차 계획기간(2015~2017년)에는 100%, 2차 때(2018~2020년)는 97%였다. 3차(2021~2025년)는 90%다. 이는 산업경쟁력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기업들의 요구를 정부가 반영한 결과다.

이처럼 무상할당 비율이 높다 보니 배출권거래시장에서 기업들의 배출권 수요는 적을 수밖에 없었다. 배출권 가격이 지난 9월말 기준으로 톤당 2만5천원 정도로 낮게 형성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업인들도 이와 관련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최태원(SK그룹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달 14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열린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에서 “탄소중립을 위해 기업들은 생산·운영 시스템을 저탄소배출 구조로 전환해야 하는데, 지금 배출권 제도가 그 정도의 유인책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어려움이 있다”며 “배출권 가격이 높아지면 (기업들이) 대책을 세우겠지만, 가격이 낮으면 내년에도 그 정도 가격에 구매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현재 방식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낮은 배출권 가격이 기업들에 탄소배출량을 줄일 ‘시그널’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산업부문 온실가스 감축 실패로 이어졌다.

정부의 ‘추가 할당’도 문제로 꼽힌다. 정부는 2016년 12월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을 발표하고, 이듬해 1월 온실가스 배출허용 총량을 재산정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에 1200만톤 등 총 1700만톤의 배출권을 추가로 할당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을 마련하고도 배출권을 줄인 것이 아니라 거꾸로 늘린 것이다.

배출 총량 낮추고 유상할당 비율 대폭 높여가야


이에 따라 배출허용 총량을 낮추고, 돈을 주고 탄소배출권을 사는 ‘유상할당’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배출권거래제 운영목표는 1차 계획기간에는 제도 안착이었고, 2차 때는 온실가스 감축 수준 상향이었다. 현재 진행 중인 3차 계획기간에는 탄소배출권 할당 방식을 고도화하고 온실가스의 실질적인 감축을 유도한다는 게 정부의 추진전략인데, 이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정부가 맡긴 연구용역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환경부 등의 의뢰로 지난 2월 ‘탄소가격 부과체계 개편방안 연구’ 보고서를 제출한 에너지경제연구원·산업연구원 등은 “유럽의 연구 결과를 보더라도 배출권거래제가 정착할수록 배출권거래제의 온실가스 감축 기능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며 제도 정착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을 강조했다.

다만, 정부는 배출허용 총량이나 탄소배출권 유상할당 비율 조정 여부를 현재로서는 판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지난해 상향된 엔디시(NDC·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근거해 현재 연도별·부문별 온실가스 감축 경로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이 로드맵이 마련돼야 2025년 배출량 목표가 나오고, 이에 근거해 3차 배출권 할당계획 조정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로드맵은 내년 3월 수립되는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 포함될 예정이다. 이 관계자는 이어 “탄소배출권거래제 3차 계획에 이미 유상할당 비율(10%)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비율을) 바꾸기 어렵고, 4차 할당계획(2026~2030년)에서 그 비율을 얼마만큼 늘릴지에 대한 안을 만들어가는 중”이라고 했다.

이런 정부 태도를 두고 지나치게 안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이 시급하다는 이유에서다. 윤세종 ‘플랜1.5’ 변호사는 “지난해에 엔디시가 상향됐기 때문에 기간이 아직 절반 이상 남은 탄소배출권거래제 3차 계획의 배출권 할당 조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상향된 엔디시에 따른 탄소배출권거래제 강화가 신속히 이뤄지지 않으면 감축 부담을 사실상 2026년 이후로 떠넘기게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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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의 유상할당 비율은 10%에 불과하지만, 유럽연합의 유상할당 비율은 발전업종은 100%이른다. 사진은 독일의 한 공장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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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탄소배출권 유상할당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유럽연합(EU) 등에 견줘 한국의 유상할당 비율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현재 한국의 유상할당 비율은 10%에 불과하지만, 유럽연합의 유상할당 비율은 발전업종은 100%, 유상할당 업종으로 지정된 산업부문은 70%에 이른다. 유럽연합은 산업부문 유상할당을 2032년까지 10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또한 2027년부터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전면 도입한다. 이 제도는 탄소배출 규제가 강한 나라가 상품을 수입할 때 해당 상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배출된 탄소량을 따져 관세를 물리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의 탄소배출권 가격이 톤당 10만원이고 한국이 2만5천원이라면, 유럽연합은 한국 물건을 수입할 때 탄소배출권 차액을 따져 관세를 부과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유럽에 수출되는 한국 제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우원식 의원은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해 무상할당의 근거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유상할당에 주목해야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라며 “글로벌 탄소국경 관세로 인해 국내 산업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환경부는 의지를 갖고 유상할당 비율을 대폭 높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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