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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학, 돈 남아 도는데…" 한국어 가르치는 캐나다 교수 한탄 [속엣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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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기자의 속엣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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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소개로 만나 속엣말을 들어봅니다. 그 인연을 통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인연 따라 무작정 만나보는 예측불허 릴레이 인터뷰를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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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전문가' 로스 킹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교 교수가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에서 대성전(大成殿)을 배경으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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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전공 박사생은 안 받습니다.”

캐나다에서 ‘한국어 가르치는 외국인’ 로스 킹(61)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아시아학·한국어문학과 교수는 이렇게 선언했다. 한국어를 전공한 언어학자인 그가 지난 20여년간 배출한 박사 6명은 모두 한국어 교육이 아닌 한국문학이나 한국사를 전공했다. 그중 ‘테뉴어’(종신 재직권)를 받은 제자는 아직 1명뿐이고, 마지막 제자는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안식년을 맞아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 그를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연구실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한국어로 진행됐다.

킹 교수는 “시장이 너무 안 좋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어 교육을 가장 잘한다는 UCLA에서 한국어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7명 중 6명이 교수가 아닌 강사(lecturer)”라며 “비싼 돈 내고 힘들게 공부했는데 교수 자리가 없으면 왜 하겠나. 그런 사람은 배출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박사생들을 받으려고 해도 장학금이 없고, 외부에서 장학금을 받아온다고 해도 ‘노 땡큐’ 할 것”이라면서다.



한국어 인기 늘었지만…



한국어에 대한 인기는 최근 급격히 늘었다. “북미에서 지난 10년간 모든 외국어 수강생 수가 10% 감소했는데, 유일하게 한국어 수강생만 70% 늘었을 정도”다. 그는 “그렇다고 한국어 전공자가 늘지는 않았다”고 했다. “장학금만 있으면 오겠다는 학생은 너무나 많은데 기초 인프라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일본학이나 중국학은 돈이 남아돌아요. 일본은 그 투자를 70년대 초부터 했거든요. (한국국제교류재단은 91년 출범했다) 일본은 도시바 센터, 소니 펠로우십 등 대기업 이름 붙은 인프라가 숱한데, 한국의 삼성 센터, SK 펠로우십 같은 건 왜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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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 킹 교수는 미국 미네소타주에 있는 한국어 마을 '숲속의 호수'를 설립해 14년간 초대 촌장을 지냈다.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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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교수는 미국 미네소타주에 있는 한국어 마을 ‘숲속의 호수’를 직접 설립해 1999년부터 14년간 초대 촌장을 지냈다. 그는 11살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매년 여름방학 때 이곳에서 독일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을 배웠다.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이민 온 영국인 부모님의 교육열 덕분에 이곳을 다니면서 언어에 대한 남다른 재능을 일찌감치 발견했다. 예일대 언어학과를 거쳐 하버드에서 한국어학으로 박사 학위를 땄다. 지금의 한국인 아내도 하버드에서 만났다.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대학교 2학년 때다. ‘아예 모르는 언어’를 언어학자로서 기록하는 방법을 배우는 수업에서 한국에서 온 유학생을 만나 연구하면서다. 어느 날 카페 옆자리에 앉은 한국인 학생이 한글로 편지 쓰는 모습을 우연히 보고 “펜 끝에서 흘러나오는 한글이 너무 매력적”이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그는 “한국어의 의성어, 의태어 체계와 특히 알파벳을 풀어서 쓰는 게 아닌, ‘모아쓰기’를 한다는 점이 너무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아주머니들과 수다로 배워



한국에는 교수의 권유로 81년 여름 처음 방문했다. 5·18 민주화 시위의 열기가 뜨거웠던, 반미 감정이 확산했을 때다. 반미 시위에 나선 대학생들 대신 미8군 내 이발소 한국인 아주머니들이 그의 친구가 됐다. 수영선수 자격으로 미8군 수영장에서 하루 2시간씩 훈련을 하면서 아주머니들과 수다를 떨면서 한국어를 배웠다. 어학당엔 다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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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 킹 교수는 "한국 기업이 접대 비용을 조금만 줄여도 한국학과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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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한국에 대한 지구촌의 관심은 당시와는 비교도 안 되게 커졌지만 킹 교수는 “달라진 건 없다”고 꼬집었다. 그가 고혈압을 얻으면서까지 에너지를 쏟았던 ‘숲속의 호수’도 마찬가지다. “한국어를 너무 잘 배워놓으면 대학 가서 배울 게 없다”는 이유다. 그는 “한국어 교육에서 가장 안타까운 건 비한국계인 18세 이하 학습자들이 갈 곳이 없다는 것”이라며 “그 아이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대학을 선택하지만, 한국어 수업이 있는 북미권 대학 140곳 중 4년 커리큘럼이 있는 곳은 극히 소수”라고 말했다.

정부 차원의 지원도 너무나 저조한 실정이다. 킹 교수는 그가 93년 영국 소아즈대학(SOAS) 재직 당시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옥스퍼드를 지원한 것을 보고 “너무 실망했다”고 했다. 그는 “50년대부터 한국학 프로그램을 갖추고 인프라도 훨씬 잘 돼 있던 SOAS가 아닌, 옥스퍼드 간판만 보고 지원하더라”라며 “그래서 영국을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한국학은 정부에만 의존하기엔 여전히 (관련 기관이) 돈도 없고 힘도 약해요. 이제는 바뀔 때가 됐죠. 리더십을 보여주는 곳이 꼭 나와주면 좋겠어요.”

[에필로그] 로스 킹 교수의 ‘제1호’ 제자는 다푸나 주르(49ㆍ한국명 주다희) 미국 스탠퍼드대 동아시아언어문화학부 교수(스탠퍼드대 동아시아연구센터장)입니다. 킹 교수가 ‘숲속의 호수’를 설립할 때 대학원생이던 주르 교수는 태권도 사범으로 함께해 2014년부터 촌장을 맡고 있습니다. 주르 교수는 킹 교수를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 남편도 태권도 사범…美 '한국어 마을' 촌장, 스탠퍼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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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푸나 주르(49ㆍ한국명 주다희) 미국 스탠퍼드대 동아시아언어문화학부 교수(스탠퍼드대 동아시아연구센터장)는 미국 미네소타주에 있는 한국어 마을 ‘숲속의 호수’ 촌장이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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